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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한글은 세계문자가 될 수 있을까?

[한글을 세계문자로 만들자] 2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카이스트 교수]  지난 글에서 로마자는 여러 나라의 공식문자로 쓰이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국제적 소통을 위해 로마자 표기법을 마련해 사용하므로 사실상 세계문자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글자도 언어에 따라 읽는 법이 달라, 말소리를 일관되게 전달하는 세계 공통문자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자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여 온전한 세계문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글은 또 어떨까요?

 

2.1 로마자는 왜 온전한 세계문자가 되기 어려운가?

 

로마자는 라틴 알파벳이라고도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라틴어를 적는 데 사용되었고, 로마제국과 서구 문명의 확장에 따라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영어·프랑스어 등 서구권 언어뿐 아니라 베트남어ㆍ인도네시아어 등에도 사용되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체계가 되었습니다.

 

각 언어는 로마자를 받아들이면서 자기 언어에 맞도록 조금씩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 알파벳은 26자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알파벳에는 여러 부호를 붙여 사용하며 독일어는 이에 더해 ß와 같은 별도의 글자를 도입했습니다. 글자의 발음도 문제입니다. 같은 글자라도 언어에 따라 발음이 다르고, 한 언어 안에서도 단어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른 점은 각 나라가 자기 언어를 적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로마자를 세계 공통 발음문자로 사용하려 할 때에는 문제가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로운 표음체계가 몇 차례 시도되었습니다. 영국의 음성학자 알렉산더 멜빌 벨은 1867년 발음기관의 움직임을 기호로 나타낸 ‘보이는 말소리(Visible Speech)’를 발표하고 전화기를 발명한 그의 아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물려받아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는 영어의 복잡한 철자법을 개선할 새로운 문자를 만들도록 유언했고, 그 결과 킹즐리 리드가 설계한 ‘쇼 알파벳(Shavian Alphabet)’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문자 모두 기존 로마자를 대신하는 생활문자로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1886년에 출범한 국제음성학협회는 세계 여러 언어의 발음을 기록하기 위한 국제음성기호(IPA)를 발전시켰습니다. IPA는 사전ㆍ·언어학ㆍ외국어교육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기호가 많고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새로운 문자가 발음을 정확히 적는 능력만으로 널리 보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해야 하며, 기존 문자체계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2 현행 한글은 왜 아직 세계문자가 아닌가?

 

한글은 세계 공통문자가 되기에 유리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자음 글자의 모양이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고, 글자와 소리의 대응이 비교적 규칙적이어서 배워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행 한글은 한국어를 위한 문자체계이지 외국어의 말소리까지 표기하도록 마련된 것은 아닙니다. 외래어는 ‘외래어표기법’으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래어란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에 정착한 말을 뜻합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에서는 영어의 f와 p를 모두 ‘ㅍ’으로, v와 b를 모두 ‘ㅂ’으로, r과 l을 모두 ‘ㄹ’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fan과 pan은 ‘팬’으로, river와 liver는 ‘리버’로 적습니다.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미 우리말이 된 단어이므로 우리말의 발음 방식에 따라 적는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표기 원칙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시작되어, 1940년 조선어학회의 「외래어표기법 통일안」을 거치고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주된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고 시대도 바뀌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인공지능이 수많은 언어를 처리합니다. 이제 1930년대에 잡힌 외래어표기법의 개념과 내용을 새로운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되었습니다.

 

먼저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이 된다는 ‘외래어’의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fashion이라는 영어 어휘가 들어와 ‘패션’으로 정착되어 우리말처럼 쓰이게 되었다면 이제 과연 우리말이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 결정 과정이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이 정해진 과정에서 ‘패션’이라고 확정되면 국어사전에 등재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외래어표기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둘째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별해야 합니다. 외래어는 이미 우리말이 된 것이므로 우리말의 음운체계와 발음 습관에 따라 표기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외국어는 우리말로 정착되기 전의 모든 외국어 어휘와 외국인의 이름, 지명 등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음운체계와 상관없이 발음을 되도록 정확히 표기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우리식으로 적으면 서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령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호날두(Ronaldo)를 ‘로날드’로 부르거나 표기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외국어의 경우 언어의 특성을 살펴 주는 표기체계, 곧 언어별 표기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어도 외래어표기법에 준해서 표기하라’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이에 필자는 아래와 같이 주장하며 이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기를 제안합니다.

 

첫째 주장: 외래어표기법을 폐지하고 언어별 외국어 표기법을 만들자

둘째 주장: 외국어 어휘가 처음 소개될 때 ‘해당하는 언어의 ’외국어 표기법‘으로 표기하고

우리말로 정착하였다고 판단되면 ’규격화된 과정‘을 거쳐 최종 판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사전에 등재하되 이 과정을 일반에 공개하자.

셋째 주장: 언어별 외국어 표기법 개발을 위한 전문 연구를 시작하자

 

외국어 표기법은 현행 한글 맞춤법과 분리된 별도의 체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외국어의 말소리를 적는 목적과 내용이 한국어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제로 하면 우리말 맞춤법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외국어 표기에만 훈민정음의 합용병서 원리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별 표기법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체계화시키면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글 기반의 새로운 말소리 표기체계’, 곧 세계문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