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채식주의자》의 '제4의 시선'과 《흰》의 '흰걷는나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문장은 더 많이 읽혔다. 그러나 열 명의 독자는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장이 태어난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출판사 〈구름의시간〉 기획으로 2025년 여름 이어진 개별 문학 기행의 기록이 《한강 문학 기행》(구름의시간, '잇다' 시리즈 01)으로 묶였다. 《여수의 사랑》』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아홉 작품, 그리고 여수와 소제마을ㆍ돌산대교, 제주 송악산과 비자림, 강원도 산간, 미시령 옛길, 화계사, 광주,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수유리 옛집, 책방 '오늘'까지. 공동 저자이자 이 책의 기획과 발행ㆍ편집을 맡은 김원자 작가를 만나 여덟 가지를 물었다.
- 이 책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 독서모임에서 장편 소설을 중심으로 한강 전작 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참여하게 된 것이 출발이었어요. 2025년 4월, '한강 읽기'의 마지막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마치고 제주로 문학 기행을 떠났지요. 그다음 출판사 〈구름의시간〉 기획으로 2025년 여름 개별 기행이 이어졌고, 열 명의 저자가 참여해 한강 작품에 나오는 장소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문학 기행은 확장된 읽기였습니다. 중심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만이 아니라, 주변부의 배경이라도 내가 닿을 수 있고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의미가 있었어요. 소설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지요."
- 《채식주의자》 작품 소개의 제목을 「폭력과 아름다움 사이에서」로 잡으셨습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이 거기에 있다고 봤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이 작품을 두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라고 평했고, 부커 인터내셔널상 심사위원단은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이라 했습니다. 작가 자신도 수상 소감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에 대한 자신의 끝없는 질문에 답을 완성하고자 했으며 그 질문 속에 머무는 일이 종종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고백했지요.
소설은 가족과 사회가 드러내는 폭력, 예술이 내세운 욕망, 일상의 무관심까지 폭력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불안한 질문들을 남깁니다. 그래서 저는 답 대신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요."
- 리뷰 제목 「제4의 시선」이 눈에 띕니다. '제4의 시선'이란 무엇입니까.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ㆍ「몽고반점」ㆍ「나무 불꽃」 세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입니다. 흥미롭게도 독자는 영혜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편, 형부, 언니라는 세 개의 시선을 통해서만 영혜를 만납니다. 남편의 무관심과 이기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형부의 욕망, 언니 인혜의 억울함과 죄책감 — 이 모든 시선이 영혜를 해석하려 하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작가는 원래 아들 지우의 시선으로 4부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저는 쓰이지 않은 그 4부를 상상해 봤습니다. 이모가 가족에게서 당한 폭력을 어린 눈으로 목격했을 지우가, 아빠나 이모부와는 달리 이모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이모, 얼마나 아팠어요?" 하고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건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상 속에서 그려본 지우의 시선을, 남편이나 형부, 언니와는 다른 '제4의 시선'이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 그 시선이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제 변화가 그 증거였습니다. 처음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는 영혜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기보다 불편함이 앞섰어요.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자 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거듭 읽는 동안 제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그 시간이 바로 '제4의 시선'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작품 속 폭력에 대해 방관자로 머무르게 될지, 자신이 벌인 가해의 흔적을 자각하게 될지, 영혜와 함께 저항하는 방식을 택하게 될지, 혹은 제4의 시선이 될지 - 책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께 굳이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 《흰》에 대해서는 작품 소개와 평을 여러 편 쓰셨습니다. 유독 마음을 많이 두신 작품 같습니다.
"《흰》은 65편의 단상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로, 삶과 죽음, 상실과 애도, 회복과 재생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자전적 요소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 실험적 에세이와 시적 산문에 가까운 작품으로 평가받지요. 2018년 부커 인터내셔널상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작가는 '흰 것'에 대해 쓰기로 하고 처음 흰색을 띤 사물의 목록을 적었지만, 곧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에 부딪혀 시작을 미뤘다고 합니다. 그러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1945년 미군이 촬영한 그 도시의 영상을 봅니다. 흰 눈에 덮인 풍경 같았지만 실은 나치의 공습으로 파괴된 잿빛 잔해였지요. 파괴되었으나 재건된 그 '흰' 도시를 통해,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를 자신의 삶과 몸을 빌려줌으로써만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면, 《흰》에서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자 합니다. 간절한 마음, 그 하나로요. 저는 그 흰 것의 목록에 '흰걷는나무' 하나를 덧붙여 봤습니다. 인디언식으로 지어본 제 이름입니다. 자작나무 숲을 고향처럼 좋아하는 마음도, 책을 만들어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도 어쩌면 거기에서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 《흰》 평 가운데 「얼굴을 감싸주었던 흰 새처럼」은 책방 이야기더군요.
"한강 작품에는 유독 새가 자주 등장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앵무새, 《희랍어 시간》에서 지하 계단으로 날아든 새, 《채식주의자》의 꿈속 흰 엄마새, 《소년이 온다》의 새들까지. 인물들의 영혼처럼 보이지요. 《흰》 2장 「흰 새들」에서 '흰 도시'에서 그녀의 머리에 잠시 내려앉아 얼굴을 감싸주었다는 흰 새 역시 그렇습니다.
한강 작가가 운영했던 독립책방 '책방오늘'의 로고에도 책과 함께 흰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2018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약 4년 반 뒤 종로구 통의동 2026년 7월에 만 8년 여의 여정을 일단 멈추게 되었는데, 양재동 시절 저는 그 근처에 살았습니다. 육아를 마치고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오랜만에 얻은 심적ㆍ물적 여유 덕분에 독립책방을 찾다가 그곳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 책방지기가 「새가 되고 싶은 날」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눈빛과 말투와 몸짓이 평소와 달랐어요. 아주 작은 새의 몸짓 같은 미세한 표현이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온몸의 언어였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고서야 그 주인장이 바로 한강 작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방은 곧 '성지순례'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는 운영에서 손을 뗐다고 하지요. '한강 읽기'를 하면서 서촌으로 옮긴 책방에도 가보았습니다. 무명천으로 만든 간판, 유리창에 붙은 책과 새의 로고, 안쪽의 피아노와 공중전화 부스가 그대로였어요. 책방이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나의 책방일 테니까요."
- 작품마다 기행지 안내를 함께 실었습니다. 왜 굳이 '장소'였습니까.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갈 때, 그곳은 한강 소설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가 깃든 장소가 됩니다. 익숙하게 알던 장소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장소는 더 이상 예전의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제가 맡은 곳은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그리고 '책방오늘'이었습니다. 원대리 숲은 해발 800~1,200미터 고지대에 1974년부터 1995년까지 조림으로 심어진 자작나무 69만 그루가 약 138헥타르의 숲을 이룬 곳입니다. 인공 조림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자연림 같은 장관을 보여주지요. 겨울 설경 속 흰빛은 애도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도 생명의 호흡처럼 반짝입니다.
연세대 신촌 캠퍼스는 한강이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며 실제로 강의를 들었던 곳입니다. 지금의 외솔관, 옛 인문관이지요. 《흰》에 나오는 백목련이 있는 언덕도 이곳에 있습니다. 「백목련이 있는 언덕에서」는 《흰》의 서른세 번째 이야기 「백목련」에서 출발한 글인데, 스물다섯, 스물넷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화자의 대학 동기 둘을 위해 같은 학번 졸업생들이 어린 백목련 두 그루를 심었던 그 언덕과 그날 밤 언덕을 내려오는데 보름달이 유난히 크고 밝았어요. 내년 봄에 백목련이 어김없이 흰 꽃을 피울 것처럼, 나에게도 뭔가 새롭게 피어나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 기획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강 읽기'를 하는 동안 공허했던 마음이 회복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고, 제가 발행과 편집을 맡고 있는 출판사 <구름의시간>에서 펴내게 되었습니다. 출판사 〈구름의시간〉에서 발행과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이 책을 쓴 우리에게는 그 반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멀리 떠났다가 돌아와, 결국은 다시 한강이라는 강가에 앉게 되는 일. 이 책은 한강의 작품에 대한 해석인 동시에, 그 문학이 촉발한 열 명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고 각자의 경험이 변화한 기록입니다.
《흰》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한강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독자인 당신이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문장을 눈으로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장이 태어난 자리로 걸어 들어간 열 명의 여정은, 결국 저마다의 삶을 보듬고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었음이 책 곳곳에 묻어나 있다.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 속에서, 이제 당신이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눈부신 흰 것'을 찾아 함께 걸어볼 차례이다. 한강 작가와 몇 마디 나누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