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할머니와 손녀딸’로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도 살아온 젊은 가객, 김윤서를 통해, 월하 여사의 일상(日常)과 근검절약 정신, 사회 이바지, 곧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장학금 지원, 원불교 기도원 신축 기금, 특히 <월하문화재단>의 설립을 위해, 전 재산을 쾌척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의 신문 방송들이 “바느질, 공연 수입으로 모은 재산, 사재 털어 문화재단 설립”, “인간문화재 김월하 씨, 후진양성 50억 희사”, ”평생 모은 전 재산, 후학 위해 내놓아“, ”바느질삯, 강사료 아껴 수십억 원 전 재산” 등등으로 대서특필했다는 이야기, 등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 어린 시절,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노래나 흉내 내기 등, 재롱잔치를 펼쳤던 경험이나 일화가 있다면?
“낙원동에서 살 때인데, 아래층에 국악학원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민요창, 대금소리, 또는 춤 반주 음악 등등이 다양하게 들려왔지요. 어느 날, 그 학원에서 버린 소품들을 가지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할머니 앞에서 부채춤도 선보이고, 할머니 흉내도 내면서 재롱부려 할머니가 매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에겐 저처럼 키운 언니들이 몇 명 있었는데, 모두 다른 일을 하거나, 결혼해서 독립해 나가고, 저처럼 할머니 옆에서 정가를 듣고, 배우며 전공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일 거예요. 할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 정가를 공부하게 된 배경은 당연히 할머니, 월하 여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또 다른 계기가 있는지?”
“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 그런지, 노래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할머니께서는 가끔 연수원이나 또 다른 기관의 초청으로 강의를 가셨다가 늦게 귀가하실 때가 종종 있었지요. 어떤 때는 밤 10시 가까이 귀가하셨지요. 그때까지 저는 집 앞에 나가 배운 노래들을 부르며 할머니를 기다렸어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안성에 있는 어느 기업 연수원 같은 곳에 갔었는데, 어렸을 때 저의 마음에도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멋이 있었어요. 꽉 찬 강의실 분위기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몰입하게 하시고, 시조창을 하실 때의 그 멋진 모습은 잊을 수가 없지요. 그 후, 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그때 할머니의 그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지요.
할머니가 집에서 큰 제자들을 지도해 주실 때에도, 저는 옆에서 악보를 펼쳐놓고 따라 부르곤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 가락들이 익혀지고 암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생각한 대로,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어서 <이화여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요.”
- 이름 있는 전국 국악경연대회에 참여할 때, 할머니의 특별지도를 받고 임하는지?”
“네, <동아국악콩쿨>에 출전했을 때인데요. 객석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제가 무대에 오르니까, 얼른 자취를 감추시는 거예요. 뒤에 할머니 말씀이 저와 눈이 마주치면, 제가 실수할 것 같은 생각에 안 보이게 숨으셨다는 거예요. 그 깊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 또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제 앞에서 절대로 저를 칭찬해 주지 않으시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저 아이가 혼자서도 알아서 잘한다’라는 말씀으로 격려해 주시곤 했지요.”
- 할머니, 월하 여사는 언제 어디서 뵙는다 해도, 항상 그 모습이 우아하고 정갈하신데, 도와 드리는 비법이라도?
“공연이 있으시거나, 방송하실 때, 항상 집에서 혼자 준비를 다 하셨어요. 평소에도 머리에 쪽을 지고 계셨는데, 공연하실 때는 긴 가채를 머리에 묶어 붙여 한없이 길게 땋으셨던 모습이 기억나요. 또한 참빗으로 한 가운데 가르마를 바르게 가르시던 모습은 할머니의 곧은 마음을 보여주셨던 것 같았어요. 한복치마도 항상 정갈하게 곱게 접어서 보자기에 준비해 가시거나, 또는 입고 가실 때도 정말 단정하고 구김이 없으셨지요. 저에게도 항상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할머니는 큰 제자들을 지도해 주실 때도 아주 엄격하셨어요, ‘악보에서 눈을 떼고, 내 입모양을 보면서 손으로 이어가는 박자의 한배를 잘 보라’고 하셨지요. 저도 가끔 그 옆에서 악보를 보며 노래를 따라 하곤 했는데, 특히, 방울목 시김새를 속으로 열심히 따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해요. 생활 속에서 익히 들었던 소리들이라 저는 자연스럽게 가곡의 창법이나 다양한 시김새들을 흉내 내며 익혀 나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