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글을 만나는 방법은 오랫동안 두 가지뿐이었다. 눈으로 읽거나, 종이에 쓰거나. 여기에 하나를 더한 이가 있다. 돌리고, 뒤집고, 붙이고, 꾸미는 것. '한글만다라'를 개발한 오순덕 님(한글마루 창작소 공동대표)이다. 요즘은 한글만다라를 활용한 장애인 한글교육 봉사로 더 바쁘다고 한다.
한글만다라는 기존의 만다라 예술(아트)에 한글 자음ㆍ모음 조각을 접목한 놀이형 창작 프로그램이다. 울산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 축제 '외솔 한글한마당'의 어린이 마당 프로그램으로 처음 선을 보인 뒤, 지금은 국내 유아 교육 현장을 넘어 미국 한글학교 교실까지 건너갔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100돌을 함께 맞는 '한글580ㆍ100'의 해에, 한글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즐겁게 전하고 있는 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글 놀이 하나 만들어 보자"라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 한글만다라는 언제, 어떻게 개발하게 되셨나요?
"울산에서 한글날을 기려 사흘 동안 도시 전역에서 문화예술 축제가 열렸어요. 한글 한마당이지요. 그 행사에 어린이들이 오는데, 한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 김슬옹 교수님(세종국어문화원 원장)께서 부스 행사에 필요한 한글 놀이 프로그램을 하나 준비해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와서 재미있게 한글을 접하고 놀이로 체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원래 있던 만다라 예술 안에 한글을 접목해 봤어요. 그렇게 갑자기 탄생한 프로그램입니다."
- 만들어 보니 무엇이 가장 좋던가요.
"아이들이 '한글' 하면 글씨 공부, 국어 공부, 익히기 위한 학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자음 조각을 가지고 놀이로 접근해요. 돌려 보고, 뒤집어 보고, 붙여 보고, 꾸며 보고. 한글을 문화예술 창작 작품으로 만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글도 익히게 되고, 정서적인 면이나 심미성 같은 다양한 효과들이 따라오더라고요."
자석판 위에서 벌어지는 일
- 지금 어린이집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계시지요.
"네, 유아들과 주로 놀이를 합니다. 학습보다는요.“
- 아이들과 직접 한글만다라를 해 보셨겠습니다. 반응이 어떻던가요?
"자음ㆍ모음 조각을 자석으로 만들었어요. 그전까지 아이들에게 한글 공부라는 건 종이에 글씨를 쓰거나, 눈으로 읽거나, 색칠하거나, 그 정도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ㄱ, ㄴ, ㄷ, ㄹ 자음을 조각으로 만들어서 자석판 안에서 돌려 가고 붙여 가며 조합하니까,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이 한 시간씩 앉아서 집중하며 그 놀이를 즐기더라고요.“
네 살 아이의 한 시간. 유아 교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미국 한글학교 교사들이 "오아시스를 만났다"라고 했다.
- 지난해 미국 한글학교 학술대회에 다녀오셨습니다.
"제43회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 학술대회에 다녀왔어요. 그곳 선생님들 말씀이, 우리 2세들이 한글을 배우는 데 학습 자료나 교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구하기도 쉽지 않고, 구해도 지금 한국에서 쓰는 교재보다 시대 흐름에 좀 못 미치는 것들을 쓰고 계셨어요.
그런데 한글만다라를 가지고 갔더니, 이 자음ㆍ모음 조각 하나만 있어도 문화예술 영역으로 폭넓게 활용해서 다양한 콘텐츠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미술로도 할 수 있고 쓰기, 만들기, 꾸미기, 말하기, 창작 활동까지 다양하게요. 선생님들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정말 좋아하셨어요.“
- 반응이 이어졌나요.
"저는 한 시간 강의밖에 안 했는데, 선생님들이 그걸 활용해서 수업한 내용을 보내오셨어요. 저보다 훨씬 더 잘 활용하시더라고요. 첫 수업 작품인데도 작품성이 너무 뛰어나서 바로 전시회를 열어도 될 정도였어요. 곧바로 응용하시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 보람이 크셨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제가 이걸 개발하게 된 계기가, 한글을 사랑하시는 한글 학자님들과 한글학회에서 한글을 지키고 보전하고 알리는 분들을 통해서였어요. 거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처음 접하는 어린아이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까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요. 그리고 이번에 나가서 보니 재외동포와 그 후손들, 나라 밖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있더라고요. 한글이 필요하고, 한글을 알고자 하고, 한글을 찾는 이들에게 더 쉽고 재미있게, 또 아름답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형태가 이미 아름다운 글자“
- 마지막으로, 한글만다라를 하시면서 한글의 무엇이 가장 아름다웠나요?
"일단 형태가 너무 아름다워요. 저도 요즘 멋글씨(캘리그래피), 예쁜 글씨 쓰기를 하는데요, 영어 철자(스펠링) 같은 것으로는 예쁜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한글은 그 형태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한글만다라를 할 때는 색종이의 수천 가지 색상을 접목합니다. 형태도 아름다운데, 거기에 전 세계의 다양한 색감까지 합쳐서 협업하니까, 이 글자가 정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되는 거예요. 여기에 우리말, 특히 예쁜 우리말은 말 자체가 또 예쁘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예요.“
- 아름다움의 극치, 좋은 말씀입니다.
한글을 지키는 일은 흔히 학문과 제도의 언어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네 살 아이가 자석판 위에서 ㄱ을 뒤집어 ㄴ을 만들며 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 또한 한글을 지키는 일이다. 오순덕 님의 자음 조각들은 지금 울산의 축제 마당에서, 어린이집 교실에서, 그리고 미국 한글학교 교실에서 계속 돌아가고 뒤집히고 붙고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형태와 색과 말이 함께 만드는 극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한, 한글580·100의 해는 기림의 해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