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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 그대에 견주면 나는 어린아이

‘씨앗’을 미국서 ‘씨드(seed)’, ‘배’를 미국서 ‘페어(pear)’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95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다음은 1884년 11월 10일,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이루어진 포크와 김성근 감사와의 대화다.

 

포크:

"(왜 조선에 왔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데 이어)

여기 오면서 보니까 놀고 있는 땅들이 많더군요. 잘 개간하여 농작물을 생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라감사 김성근:

"우리 조선은 수백 년 동안 쌀을 자급자족해 왔습니다.

지금 농토로도 충분합니다."

 

포크:

"생산을 많이 하여 무역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역은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 잘 사는 나라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성근: (갑자기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여태껏 우리 조선은 그런 걸 몰랐습니다.

조선도 서서히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포크:(여권, 통행증, 민명익 소개편지 등을 보여 주며)

"나주에 갈 참인데 잘 도와주십시오."

 

김성근:

"아이쿠, 거긴 가지 마십시오. 갈 곳이 못 됩니다. 거기 가면 고생만 하실 겁니다."

 

포크:

"이미 계획된 일정입니다. 갈 생각입니다. 나주에 가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조선 증기선의 취항을 위하여 수로와 포구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지요. 나의 나라 미국에 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면적, 상품, 유럽과의 무역 상황 등에 대해 설명)"

 

김성근:

"조선 음식이 귀국 음식보다 풍부하지 않나요? 미국이 조선만큼 좋은 나라입니까?"

 

포크:

"미국엔 여기 차려 놓은 음식이 모두 있고 더 많은 것도 있답니다.

그런데 조선인들이 부르는 물건 이름 가운데는 영어와 닮은 것들이 있더군요. 여러분의 ‘씨앗’을 우리는 ‘씨드(seed)’, 여러분의 ‘배’를 우리는 ‘페어(pear)’, 여러분의 ‘보리죽’을 우리는 ‘포리지(porridge)’라고 한답니다."(둘러싼 사람들이 우와! 탄성을 터뜨린다.)

나는 내일 고을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사진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사람들이 사진기를 보면 화를 낼지 모르겠군요.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김성근:

"내일 마을 가실 때 집사(Chipsa) 한 명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사진기는 정말 신기한 물건 같습니다. 내 사진도 찍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사진 몇 장을 가지고 있다오. 이걸 보세요."

 

포크: (무척 놀라며)

"아니, 이건 우리 군함 앨러트Alert호의 사진인데요? 그리고 그 군함의 허웰(Howell) 사관 사진도 있군요. 아니, 감사께서는 이런 걸 어떻게 가지고 계시죠?"

 

김성근:

"아, 이건 어떤 독일인에게서 얻은 것이랍니다."

 

포크:

"???!!!"

 

 

다음 날 포크 여행일기의 일부다.

 

낮에 감영의 선화당 안에서 기생들의 무희를 감상하는 중 내 곁의 김성근이 말한다.

“나는 나이가 오십인데 바깥세상을 아무것도 모른다. 그대는 스물여덟 살이다. 그대에 견주면 나는 오히려 어린아이고 학생일 뿐이다.”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 기녀들이 이따금 큰 소리를 외치며 술시중을 든다. 주위에는 관아의 수많은 남자가 비켜서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식사가 끝나자, 술상이 치워진다. 기생이 높은 목소리로 길게 외친다. “다 잡쉈소! Ta-chop-susso!” 이 소리를 관아의 남자들이 높은 음조로 복창한다.

 

이런 광경은 내가 중국에서 본 어떤 모습보다 월등히 품격이 있고 세련된 것이다. 세상천지 어디에서도 이런 장관은 보지 못할 것 같다. 봉건 왕조의 위엄과 품격을 보여주기 위해 이보다 더 정교하고도 자연스러운 연출을 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오늘 이곳에서의 경험한 것을 훗날 풀어내려면 내 창의력을 총동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감사와 헤어지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가 멈칫한다. 나는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곳의 관리들과도 악수했노라고 일러주었다.

 

작별은 따뜻했다. 그가 선물로 인삼, 두 종류의 부채, 빗, 병풍을 주었다. 그는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는 오페라 안경과 농작물 씨앗을 받고 싶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밥이 들어온다. 자정 무렵이 되자 유일환이 직접 술상을 들고 들어온다. 그는 민참판(민영익) 댁의 가신이다. 그는 자신이 전라 감사 아래에서 아전으로 일할 수 있도록 민참판에게 부탁해 달라고 내게 청한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민참판에게 긴 편지를 썼다. 눈이 빠질 듯이 아프다.

 

오늘은 정말 멋진 하루였다. 음식과 선물은 전양묵, 정수일과 나누었다. 감사에게서 5,000푼을 차입하고 영수증을 써 주었다.

 

 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