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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 실린 삶, 조선시대 한글편지 150여 건 읽다

《조선의 한글편지》(다운샘, 2017) 지은이 박정숙과의 오문오답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무덤에서 편지가 나온다. 죽은 남편의 가슴 위에 덮인 아내의 글, 딸이 차마 태우지 못하고 품고 간 어머니의 하소연, 변방의 군관이 아내에게 부친 분과 바늘. 서예가이자 동양미학 박사인 산내 박정숙 씨는 조선시대 한글편지 150여 건을 4년에 걸쳐 《월간서예》에 연재한 끝에 《조선의 한글편지》로 묶어냈다. 글씨의 아름다움을 좇다가 사람의 일생과 마주쳤다는 그에게 다섯 가지를 물었다.

 

 

하나. 한문 서예가 주류인 서단에서 왜 하필 한글편지에 눈을 두셨습니까?

 

  “시작은 붓끝이었습니다. 2003년 봄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전에서 호연재 안동 김씨의 편지글을 임서(臨書)하게 되었지요. 글씨를 따라 쓰다 보니 자연히 이 글씨를 쓴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편지를 썼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내력과 생애를 찾아 읽는데, 어릴 적 역사소설에서 만났던 주인공들을 눈앞에서 직접 만나는 듯한 감동이 오더군요. 그 뒤 2008년부터 3년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조선시대 한글서체 자전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료를 폭넓게 접하게 되어 본격적인 연구로 들어갔습니다. 2012년부터 4년 동안 《월간서예》에 '조선시대 한글 명필 열전'으로 연재한 것을 다듬어 이 책이 되었습니다.

 

한글편지는 조선시대 자료 가운데 유례가 드문 것입니다. 위로는 임금과 왕비, 아래로는 한글을 아는 서민까지, 남녀 구분 없이 두루 썼습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시기별로 고르게 남아 있고, 계층에 따라 서체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이만한 자료가 서예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둘. 편지가 실록이나 행장 같은 공식 기록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공적으로 펴낸 역사서나 행장에는 좀처럼 담기지 않는 진솔한 얼굴이 편지에는 있습니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를 남긴 군관 나신걸을 보십시오. 1490년 무렵, 변방에 나가 있으면서 아내에게 분과 바늘을 사서 보냅니다. 한 남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그 짧은 문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선조가 정숙옹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임금이라는 지위와 아무 상관 없이 딸을 걱정하고 달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고요.

 

반대편도 있습니다. 신천 강씨가 시집간 딸에게 보낸 편지 107건이 순천 김씨의 무덤에서 나왔는데, 늙은 남편이 첩을 들인 뒤의 원망과 질투, 병들고 외로운 노년의 심회가 '아이고', '놈', '년' 같은 말투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어머니는 편지마다 '보고 불에 넣어라' 했지만, 착한 셋째 딸은 태우지 않고 간직하다 저세상까지 품고 갔습니다. 여자의 투기가 금기이던 450여 년 전 사회에서 감춰졌던 목소리가 그렇게 살아남은 겁니다.

 

그러니 한글편지는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심미의식과 생생한 정보가 저장된,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셋. 그 많은 편지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을 꼽으신다면?

 

  “아무래도 '원이 엄마' 편지겠지요. 1998년 안동 정상동에서 묘를 옮기다가 서른한 살에 세상을 뜬 이응태의 관이 열렸는데, 시신의 가슴을 덮고 있던 것이 한글편지였습니다. 병술년, 그러니까 1586년 유월 초하루에 아내가 쓴 것입니다.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여보,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말해 주세요.'

 

종이가 모자라자, 편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며 여백까지 채워 썼습니다. '한도 없고 끝이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로 맺지요. 함께 나온 미투리는 병든 남편이 낫기를 빌며 아내가 제 머리카락을 삼에 섞어 삼은 것이었습니다. 뒷날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에까지 소개되어 세계인을 울렸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자내'라 부릅니다. 오늘날 남편이 아내에게 쓰는 '자네'의 옛말인데, 당시에는 아내가 남편을 그렇게 불렀지요. 편지 한 장이 국어사의 한 대목을 증언하는 셈입니다.”

 

넷. 서예가로서 이 편지들의 글씨는 어떻게 보십니까?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필체에 그 사람의 인생사가 투영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문과 성장 배경, 가족사가 글씨에 나타나는데 그것이 고정불변이 아니에요. 기쁨과 슬픔, 그리움, 기개와 고뇌가 붓과 먹을 따라 한 편의 짧은 편지에 담깁니다.

 

서체사로 보면 궁중에서는 인목왕후ㆍ인선왕후ㆍ명성왕후ㆍ인현왕후의 언간을 따라가며 궁체가 형성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후 가운데 으뜸 명필은 순조 비 순원왕후라 하겠고, 서사(書寫) 상궁들의 글씨는 한글 서체가 다다른 조형미의 한 극점이라고 봅니다. 그분들의 지난한 삶이 그대로 결정(結晶)된 글씨지요.

 

사대부가에서는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추사의 어머니 기계 유씨의 글씨는 궁체의 단아함과 사대부가의 활달한 기상이 어우러져 역동성과 품격이 일품입니다. 추사의 한글서예 품격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게 하지요. 나신걸의 편지는 자음은 흘려 쓰되 모음은 정자로 쓰는데, 30년 앞선 「상원사중창권선문」(1464)의 자형을 잇고 있습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서간 서체의 특징입니다.”

 

다섯. 이 책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무엇일까요?

 

  “한글의 힘을 다시 보게 됩니다. 나신걸의 편지는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채 오십 년이 지나지 않은 때, 그것도 서울이 아닌 변방에 있던 무관이 쓴 것입니다. 정인지는 해례본 서문에서 '슬기로운 이는 아침나절이 다 가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고 했는데, 편지가 그 말을 증명합니다. 남녀도 상하도 가리지 않고 물 흐르듯 마음을 적을 수 있었으니, 훈민정음의 실용적 값어치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겠습니까?

 

수록된 편지의 작성 시기는 460여 년에 걸쳐 있고, 언급되거나 관련된 인물만 1,000여 명에 이릅니다. 유교적 엄숙주의의 굴레 밖에 있던 개인의 정감과 일상이 담백한 어조로 남아 있습니다.

 

탈고하고 나니 한장석의 「분고지(焚稿識)」가 떠오르더군요. 자기 글을 하나하나 점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불태우며 쓴 글이지요. 지식의 홍수 속에 간요치 않은 정보 하나를 보태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아낌없는 질정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편지들이 어딘가 더 있을 겁니다. 제2, 제3의 《조선의 한글편지》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임금과 왕족, 왕비, 사대부, 사대부가 여성, 서사 상궁과 공주에 이르기까지 83명이 쓴 150여 건의 편지와 상언(上言, 백성이 임금에게 올린 글)ㆍ조리서ㆍ소설 등의 한글 필적을 수록했다. 네 부로 나뉘어 ①사대부 여성의 한글편지 ②사대부의 한글편지 ③왕비의 한글편지 ④임금과 왕족의 한글편지 순으로 엮었으며, 편마다 인물의 생애ㆍ가족관계ㆍ시대 배경과 함께 서체를 미학적으로 분석했다. 현대문 해석과 도판을 함께 실었으며 원문에 대한 판독문은 부록으로 실었다. 추천사는 박병천 경인교육대 명예교수가 썼다.

 

지은이 산내 박정숙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로, 2011년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해 「추사 김정희 서간의 서예미학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협회 고양지부장(2008~2010)을 지냈고 2016년 (사)갈물한글서회 회장에 뽑혔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한글서예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 서화아카데미에서 한글서예 실기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