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올여름에 우리나라는 무척 더웠다. 2026년 8월 2일 경남 양산의 최고 기온이 42.5도까지 올라가 기상 관측 사상 최고로 더웠던 날로 기록되었다. 질병관리청은 2026년 8월 26일 기준으로 올해 응급실을 찾은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3,859명, 사망자 수는 34명이라고 발표하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뜨거운 여름은 해마다 계속될 것으로 염려된다. 유럽 역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 독일에서는 올해 여름 불볕더위 관련 사망자가 약 1만 4천 명으로 추정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불볕더위가 반복되면서 7,300명 이상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되었다. (초과 사망이란 통상 일어난다고 기대되는 사망을 훨씬 넘어서 발생하는 사망을 말한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습도가 낮은 유럽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고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더위가 아니고 북대서양 난류와 편서풍 덕분에 한낮에도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견딜만하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금방 선선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열대야는 밤의 최저 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을 말한다. 유럽의 열대야 기준은 우리나라처럼 25도가 아니라 20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밤 기온이 20도라면 에어컨 없이도 잘 수 있는 온도이다. 그러나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 사람들은 밤 기온이 20도가 넘으면 ‘더워서 잠자기 힘든 밤’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에서 1993년에 에어컨 보급율은 불과 6%였다. 1994년 7월 24일 서울의 최고 기온이 38.4도까지 올라가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그 해를 기점으로 국내 에어컨 보급률이 크게 늘었다. 에어컨 보급률은 1998년에 24%, 2012년에 74%로 높아지다가 2023년 조사로는 98%에 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과 사무실에 에어컨이 보급되어서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실내에 머물면 견딜만하다.
그런데 일찍이 산업혁명을 시작하고 선진국 소리를 듣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흥미롭게도 에어컨 보급률이 그리 높지가 않다. 2025년 현재 에어컨 보급률을 나라별로 살펴보자. 이탈리아 63%, 스페인 58%, 프랑스 30%, 폴란드 23%, 독일 16%, 영국 11% 순이다. 유럽 외 나라들의 에어컨 보급률은 미국 93%, 일본 95%, 중국 60%인데 한국은 98%로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도되었다.
왜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그렇게 낮을까? 첫째, 유럽은 오랫동안 여름이 비교적 온화하여 에어컨 수요가 낮았다. 둘째, 전기 요금이 비싸서 에어컨을 설치한 뒤에 운영비 부담이 크다. 셋째,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배관과 실외기 설치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넷째, 외벽과 도시 미관 규제가 강해서 역사적 건물이나 문화재 주변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동주택에서는 주민 동의와 관리조합의 승인까지 요구된다. 다섯째, 친환경적인 시민들은 에어컨으로 인한 전력 사용과 탄소 배출이 기후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염려한다.
유럽에서 에어컨 보급율이 낮은 가장 현실적인 요인은 비용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벽걸이형 에어컨 제품 가격은 50만~80만 원 정도고 설치비는 10만~15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에어컨 규제가 까다로운 프랑스의 경우, 에어컨 기기 자체는 200만 원 정도지만 관청의 승인을 받고 배관 및 설치 공사를 마치는 총비용이 무려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각국에서 극우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모든 가정에 에어컨 보급 및 설치 지원”을 핵심공약으로 들고나왔다. 불볕더위로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선거 전략이다. 그러나 녹색당 같은 친환경 정당들은 “에어컨을 늘리면 전력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 폭염을 더 악화시킨다.”라는 논리를 들어 반발하였다.
그렇다면 해마다 극심해지는 불볕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녹색당은 폭염을 막기 위한 해법으로 에어컨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도시를 덜 뜨겁게 만드는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안의 예를 들면, 도시에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서 녹지를 확대하는 방안, 건물의 단열을 개선하는 방안, 지붕을 밝은색으로 처리하여 열을 반사하는 방안, 가림막과 통풍을 활용한 자연 냉방 등을 강조한다.
녹색당의 제안들은 환경적 관점에서는 타당한 정책일 수 있으나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우파 정당에서는 “에어컨은 생존에 필요한 장비”라는 현실론을 강조하면서 에어컨 보급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WP)는 유럽의 에어컨 규제 정책이 “미래 세대를 구하겠다며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을 치명적인 고온에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에서 역대 최고의 뜨거운 여름이 계속되자 시민들의 반응도 변화를 보였다. 영국의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런던에 있는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올해 여름에 유럽 6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온실가스 감축보다 에어컨 도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6개국 모두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국의 경우 “에어컨의 폭넓은 보급이 중요하다”라는 응답(48%)이 “기후 대응이 중요하다”라는 응답(23%)의 두 배를 넘었다.
환경 선진국인 유럽 나라들의 에어컨 규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효과적인 환경운동은 단순히 ‘환경을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시민들이 무리 없이 참여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불볕더위를 피하려고 에어컨 설치를 장려하되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경우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달면 좋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