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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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BTS는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것은 상을 주는 기관이 가수를 선택하고, 가수와 대중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구조를 깨는 조용한 전도(轉倒)가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손병철 박사는 그 현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를 몇 차례로 나눠 싣는다.(편집자말) |
오랫동안 그래미는 세계 대중음악의 정상에 가까운 권위를 지녀 왔다.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회원과 그 제도는 작품을 분류하고, 후보를 정하고, 수상자를 골랐다. 음악인들은 그 제도의 문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했고, 수상자는 그래미라는 상징적 권위를 통하여 자신의 음악적 지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 질서는 기본적으로 수직적이었다. 상을 주는 기관이 가수를 선택하고, 가수와 대중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구조였다. 물론 가수에게 출품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고 팬에게 비판할 자유가 있었지만, 세계 대중음악의 오랜 상징질서 속에서 그래미는 오랫동안 ‘선택하는 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2026년 여름, 이 오래된 방향에 하나의 조용한 전도(轉倒)가 일어났다. 제69회 그래미를 앞두고 방탄소년단(BTS)은 다음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에 따라 구획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뜻을 전했다. 이는 수상 실패에 대한 불만이나 미국 음악시장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 음악을 분류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단순하지만 깊다. 누가 세계 음악을 분류할 권리를 갖는가. 음악의 보편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지역과 언어를 인정하는 것과 지역과 언어로 음악을 다시 구획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오늘날 시상제도의 권위는 과연 제도 자체에서만 나오는가.
BTS의 선택은 그래미라는 하나의 시상식을 넘어, 세계 POP 음악의 중심과 주변, 제도와 창작자, 가수와 팬덤, 권위와 감응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과거에는 「그래미가 BTS를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의 새로운 질문이 등장했다.
「BTS는 그래미의 어떤 철학을 선택할 것인가?」
이 변화는 한 가수와 한 시상기관 사이의 권력 역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위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시대에서, 창작자와 대중과 팬덤이 함께 제도의 정당성을 묻는 시대로의 이동을 뜻한다.
상을 받는 자가 상의 권위를 선택하고, 팬덤이 가수만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응답하며, 하나의 음악이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해석을 만나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 내는 시대.
이 글은 바로 이 새로운 음악질서를 탈중심의 시대, 심물철학의 감응, 그리고 물파미학의 파동과 공명이라는 관점에서 읽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