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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이 받은 빈 도시락과 자결

순욱은 그릇에 신념을, 조조는 권력을 담으려 했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323]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순욱은 조조가 아꼈던 최고의 전략가이자 정치적 동반자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죠.

순욱은 한나라의 신하로서 조조를 도와 도탄에 빠진 한나라를 재건하려고 했고

조조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천하를 통일한 뒤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순욱은 조조의 창업을 결사반대합니다.

"조공께서 군사를 일으킨 것은 본래 한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땅히 충절을 지키고 겸양해야지, 결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 발언으로 조조는 순욱이 더 이상 자신의 야망에 동행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조조는 전장에 있던 순욱에게 도시락 하나를 보냅니다. 순욱이 떨리는 손으로 그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네게 줄 녹봉은 없다."

곧 너와 나의 인연은 끝났고, 너를 신하로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너는 이제 필요 없는 존재다."

곧 빈 그릇처럼 너의 쓰임새는 다했으니 알아서 거취를 결정하라는 압박이었죠.

순욱은 조조의 의중을 즉각 파악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보좌했던 주군이 자신에게 절교를 명했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결국 순욱은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의 나이 50살이었습니다.

 

 

순욱이 떠난 자리에는 그를 따르던 몇 명의 무리와 주군이 보낸 텅 빈 그릇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가장 화려한 지략으로 시대를 수놓았던 남자의 마지막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비어 있음으로써 오히려 모든 메시지를 전했던 그 찬합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평생을 바쳐 채우려 하는 그릇 속에는 지금 무엇이 담겨 있느냐고 말입니다.

 

순욱은 한나라 재건이라는 목적을 위해, 조조라는 강력한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수단이 목적보다 커지는 순간, 주객은 전도됩니다.

우리가 대의나 목표를 위해 선택한 도구가 목표가 되어

나를 집어삼키고 있지는 않은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조조와 순욱은 천하 평정까지는 완벽한 파트너였지만,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는 동상이몽을 꾸었습니다.

한때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은 악이기 때문이라기보다,

각자가 바라보는 지향점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순욱은 그릇에 신념을 담으려 했고, 조조는 그릇에 권력을 담으려 했으며,

결국 역사는 그 그릇을 비움으로써 마감하였습니다.

내가 믿고 따랐던 가치가 변했을 때,

나는 나를 지킬 것인가 신념을 지킬 것인가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