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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선생님의 성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데...

김윤서 가객이 전하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4>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9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으로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앞에서 부채춤도 추고, 할머니의 흉내도 내면서 재롱을 부려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렸다는 이야기, 교육 연수원에서 청중들에게 시조창을 지도하실 때 할머니의 멋진 모습은 잊을 수가 없으며, 할머니는 항상‘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이야기, 제자들을 지도하실 때도“ 악보에서 눈을 떼고, 내 입모양을 보면서 손으로 이어가는 박자의 한배를 잘 보라”고 하시던 모습들이 기억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이어서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하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4>로 이어간다.

 

윤서 가객이 전하는 말이다.

 

  “제가 대학 2학년 말, 겨울이었어요. 외부 행사를 마치고 귀가해 보니,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는 거예요. 이유는 혼자서 팥죽을 드시다가 팥죽 속에 옹심이가 목에 걸려 주위의 도움으로, 급히 응급실로 가셨는데, 다행히 위급사항은 면했지만,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회복이 바로 안 되셨다고 합니다. 그 뒤, 1년여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1996년 1월 1월 익산 원불교에서 작고하셨습니다. ”

 

손녀, 김윤서가 월하 명인을 만난 때가 5살이었고, 대학 3학년 때 세상을 뜨셨으니 약 16~7년 함께 지낸 시간이 꿈만 같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선생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할머니의 모습과 임종까지 지켜보면서 김윤서는 삶의 허무함이라든가, 명인의 그 노래까지도 마주하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할머니로부터 배운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정가(正歌)를 부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노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글쓴이가 그에게 물었다.

 

- 김윤서 가객은 평소,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월하 선생께 인정받은 가객이라고 생각되는데, 언제 이수증을 받았는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받았어요. 선생님들이나, 선배 언니들이 공부하러 오는 날은 저도 함께 지도받는 날이어서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지요. 할머니는 제가 선생님의 손녀가 되었고, 그래서 특히 가곡 부르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신 듯, 자연스럽게 사제지간(師弟之間)이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 3학년 때, 이수증을 받게 되었어요. 제 인생에서 할머니의 손녀딸로 살게 된 것이 첫 번째 축복이고, 선생님의 이수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 두 번째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정가를 배우던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자라온 노래들이 시조창, 가곡, 가사 등 정가 분야의 노래들이었지요. 공부하러 온 제자들에게 선생님은 다정다감하셨지만, 막상 노래를 지도하실 때는 매우 엄격하셨어요. 저에게도 별다름이 없으셨지요. 특히, 시작 전에 항상 표정이나, 노래 부르는 자세를 바르게 잡고 시작하셨어요. 노래를 배우기 전, 자세나 태도는 물론이고 마음의 준비, 흐트러짐 없는 모습, 등등은 인상 깊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 <월하문화재단>, <정가악회(正歌樂會)> 등과 인연이 되어 관련 활동을 해 왔고, 한국의 전통가곡 음반으로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재단에서 주관하는 ‘산(山)공부’라든가, ‘강습회’를 다니며 몇 년 동안 수련하듯 노래 공부를 해 오던 중, 우연하게도 <정가악회(正歌樂會)>로부터 활동 제안을 받고, 한 20여 년 함께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가곡과 풍류를 바탕으로 국악의 모범적인 현대화를 추구하는 단체에서 여창가곡 한바탕을 준비해서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에스토니아, 등등 유럽 순회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음반은 2011년 낸 <정가악회> 풍류 3집으로 여창가곡 음반인데, 이 음반이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어요. 악회의 활동과 함께 개인 독창회도 열고 비교적 열심히 활동해 온 결과물로 운 좋게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KBS 국악대상’을 받기도 했지요.”

 

 

- 지금도 무대에 설 때, 평소 선생의 가르침을 지켜 가고자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선생님의 성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그 멋진 노래를 들려주지 못할 때 못내 아쉽지요.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 속에서 한 음, 한 음에 숨결을 담아 마음을 울리라’는 그 가르침이 어렵기만 합니다. 또 하나, 머리와 의상, 몸가짐이 구김 없이 바르게 되었는지? 과거 선생님이 크고 작은 무대에서 보여주셨던 당당하고도 인상 깊었던 모습들을 상기하며 저도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어렵네요.”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