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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 중심에서 탈중심의 파동으로

[BTS와 그래미, 전도된 세계 POP 음악질서] (2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1.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진 경계

 

레코딩 아카데미는 2026년 6월 16일, 제69회 그래미부터 새로운 부문인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 부문은 K팝ㆍJ팝ㆍC팝 등을 포함하여 아시아 시장에서 형성되거나 널리 인정되는 현대 대중음악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한 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작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다만 공식 규정은 연주자의 인종이나 국적이 아니라 음악적 양식과 작품의 특성이 자격 판단의 중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점은 비판할 때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이 제도를 단순히 「아시아인을 따로 격리한 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의도는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 음악의 규모와 예술성, 세계적 영향력을 인정하기 위한 새로운 조명에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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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더 깊은 철학적 문제가 시작된다. ’선의의 포용이 언제 새로운 경계가 되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음악의 성격과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지역성을 하나의 분류 기준으로 설정한 것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따라서 과거 ‘얼반(Urban)‘ 분류가 낳았던 논쟁처럼, ‘아시아‘라는 이름 역시 의도와 달리 중심과 주변을 다시 나누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는 하나의 단일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서울의 K팝, 도쿄의 J팝, 중국어권의 다양한 팝 음악, 동남아시아의 대중음악,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음악산업은 각각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 리듬과 산업구조를 지닌다.

 

물론 현대 대중음악에서는 ‘아시안 팝‘이라는 산업적ㆍ문화적 흐름을 하나의 범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범주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인가, 아니면 보편 부문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복도인가에 있다.

 

포용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진정한 다원주의는 차이를 별도의 방에만 수용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음악이 공통의 광장에서 대등하게 만나고, 서로 다른 언어가 보편적 예술의 가능성을 공유하며, 지역성 자체가 주변성으로 바뀌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 역시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언어는 음악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언어 사용이 곧바로 음악의 세계적 위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도 세계의 팝이 될 수 있고, 영어로 부르는 아시아 출신 음악가의 작품도 아시아 문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음악은 국적표나 언어표를 붙인 행정적 제도의 물건이 아니다. 음악은 만들어지는 순간 하나의 물(物)이지만, 들리는 순간 수많은 마음(心)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존재이다. 이 점에서 ‘아시안 팝‘ 논쟁의 본질은 아시아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세계 음악의 다양성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2. BTS 일곱 멤버가 보낸 가장 점잖은 거절

 

2026년 7월 29일, BTS 일곱 멤버는 다음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각자 알렸다. 이 결정의 가장 중요한 점은 거부의 방식에 있다. 그들은 그래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 음악을 적으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과거 성취를 내세우며 특별대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음악이 지역과 언어의 구분보다 더 자유롭게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것은 매우 절제된 문화적 거부이다. 고함은 상대를 밀어내지만, 절제된 말은 상대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BTS의 거부는 「우리에게 상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리는 어떤 상이든 그 상의 철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위의 방향이 바뀐다. 과거에는 그래미가 BTS를 후보로 선택할 것인가가 관심의 중심이었다. 이제는 BTS가 그래미의 분류와 제도적 철학을 인정하여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가수가 시상기관보다 더 강해졌다는 식의 권력 역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BTS의 힘은 일곱 명의 유명인에게만 있지 않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번역하고, 공유하고, 해석하며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적 관계를 만들어 온 팬덤의 존재가 그 힘의 중요한 바탕에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그래미 대 BTS‘라는 이분법보다 더 큰 구조를 보여 준다. 제도와 창작자, 그리고 감응하는 대중이 서로 권위를 평가하는 새로운 문화질서의 등장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시대의 문화적 조류가 바뀌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3. 해명과 재검토 ― 선의와 제도의 간극

 

그래미 측은 곧바로 새 부문의 취지가 아시아 음악을 분리하거나 본상 진입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음악가와 작품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그래미의 공식 규정은 해당 부문을 ‘아시아계 혈통의 가수‘만을 위한 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적절한 부문에 대한 출품 가능성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도와 결과가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물철학은 마음(心)과 물(物)을 따로 떼어 보지 않는다. 포용하려는 마음이 제도라는 물적 형식을 만들었더라도, 그 제도가 실제로 어떤 감정과 관계를 만들어 내는가는 별도의 문제이다. 선한 마음으로 만든 제도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계로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차별할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만으로 논쟁이 끝나지는 않는다.

심물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순환이다.

마음 → 제도 → 사회적 감응 → 새로운 마음 → 제도의 수정.

처음의 마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영향을 받은 마음은 다시 사회적 반응을 만들며, 그 반응은 제도를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이것은 심물철학이 말하는 감응의 순환 구조이다.

 

제도는 한 번 만들어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제도라면 시대의 감응을 들어야 한다. 바람직한 제안일 때 수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BTS의 출품 거부와 세계 팬덤의 반응은 바로 그러한 감응의 파동이었다. 그 파동이 크다고 해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도는 그 파동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