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철 생선 따져보자. 사주팔자 짚어 보자.
참돔 숭어 웅어 농어 흑산도라 홍어 날 선 칼로 회를 떠라
초장 찍어라. 취향이 다르구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라.
간재민 무치고 참조기 부세 이면수는 굽고 볼락은 튀겨라.
주꾸미가 서운하구나. 오냐 고추장 듬뿍 처발라 솥뚜껑에 궈서 먹자. 너 이놈.
털게 꽃게 새우 대게는 펄펄 김 나게 쪄서 먹고
양념장에 무치고 간장은 따로 부서라 밥도둑이 나가신다!
뿔소라는 데치고 가리비, 피조개, 모시조개, 새조개, 대왕조개
숯불에 구워 뚜껑 열리면 따서 먹고 소주 한잔 찌크르고
위 내용은 창극 ‘토끼의 팔란’ <귀토>에 나오는 ‘제철 생선 따져보자’ 사설이다. 동살풀이 장단에 맞춰 생선에도 제철이 있듯 토끼의 간에도 제철이 있어 지금 토자의 간은 용왕에게 효험이 없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제 9월 5일 낮 3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의 ‘토끼의 팔란’ <귀토> 공연이 열렸다. <귀토>는 국립창극단 대표 흥행작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고선웅ㆍ한승석 단짝이 각각 극본ㆍ연출, 공동작창ㆍ작곡ㆍ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2021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하고, 이듬해 재연까지 이어지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국립창극단 대표 공연으로 4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것이다.
창극 <귀토>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인 ‘수궁가’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라에게 속아 수궁에 갔으나 꾀를 내 탈출한 토끼의 아들 ‘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번외작이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을 묘사한 ‘삼재팔란’(三災八難) 대목에 착안해 동시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냈다.
“저것이 무엇이냐 저것이 무엇이냐 / 처음 보는 저것이 무엇이냐 망망한 저 푸른 물살 / 내 혼백을 잡아끈다 내 멱살을 잡아끈다 / 창졸간에 부모 잃고 산중팔란 못 살 테니 / 살 데라곤 저기로구나 / 너 반갑다 그 물살로 날 끌어라 / 나를 멍석 말아라 나를 데려가라 / 둘둘 말아 밀쳤다가 쫙 펴주고 자자진다”
토자는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을 피해 자라를 따라 수궁으로 향한다. 토자는 아버지가 수궁에서 죽을 뻔했던 것도 모르고, 망망한 저 푸른 물살에 끌려서 수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이라 믿었던 수궁에서도 또 다른 욕망과 갈등을 마주하고, 결국 삶의 터전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토끼 간을 빼내 먹으려 했던 용왕이 “수국의 백성들은 들어라. 내 영덕전 짓는다고 너희를 괴롭힌 것이 내 병의 근원이 되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또 그 병을 고쳐 기어이 살겠다고 뭍의 백성을 탐한 것도 옳지 않았다. 토끼들아 이리 오너라.”라면서 토녀를 일으켜 세우고 무릎을 꿇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토자는 사는 것이 고달파도 내 터전이 제일임을 깨닫고, 용왕도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로 창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곤 토자와 토녀가 월국 곧 달나라로 떠났음을 달항아리을 통해 상상하면서 청중에게 감동을 주었다.
극본ㆍ연출 고선웅 특유의 재기 넘치는 대사와 해학적인 장면 속,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시선을 녹여내 초연 당시 ‘고전의 기발하고도 뭉클한 변주’는 물론 ‘이야기와 음악, 무대 삼박자를 맞춘 명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곡과 음악감독을 담당한 한승석은 공동작창을 맡은 유수정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과 함께 판소리 ‘수궁가’의 주요 곡조를 바탕으로 극의 전개에 어울리는 음악과 소리를 새롭게 빚어냈다. 원전의 음악적 짜임을 살리면서도 각색된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에 맞춰 소리를 배치하고 다양한 장단을 활용하면서 판소리의 말맛과 리듬감을 살린 대사가 이야기의 생동감을 더했다.
또한 출연진들 특히 토자 역의 김수인, 자라 역의 최용석, 토녀 역의 김우정은 익숙한 기존 판소리 사설이 아니라 새롭게 작창된 사설을 맛깔스럽게 소리해 청중들을 극에 몰입하게 한 것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했다.
한 가지 더 칭찬할 것은 장태평 지휘의 15인조 실황 연주가 빚어내는 긴밀한 호흡이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국악 공연에서 잘 볼 수 없는 생황과 철현금이 극의 흐름을 매끄럽고 신비스럽게 이끌어 주었다.
우리 문화 특히 국악을 현대에 새롭게 펼쳐내기 위해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잊으면 안 된다. 옛것을 바탕으로 분명히 하면서도 현대에 맞게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립창극단의 창극 <귀토>는 법고창신 정신을 잘 살려냄으로써 극의 완성도는 물론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을 뽐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