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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가 건네는 비움의 미학

옹기장이는 진흙이 감싸안은 텅 빈 공간을 빚는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324]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의 손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옹기장이는 찰흙을 정성껏 쌓아 올려 둥근 외형을 만들지만,

정작 그 그릇을 그릇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만진 진흙이 아니라,

그 진흙이 감싸안은 텅 빈 공간입니다.

 

 

노자는 일찍이 이 고요한 빈칸의 값어치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릇을 쓰는 까닭은 그 단단한 흙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안의 비어 있는 공간에 물건을 담기 위함이며,

방에 머무는 까닭은 벽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벽과 벽 사이의 빈 곳에 우리 몸을 뉘기 위함입니다.

존재(有)가 우리에게 이로움을 준다면, 비어 있음(無)은 우리에게 쓸모를 선물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하나의 그릇과 같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 그릇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남보다 더 다양한 지식과 명예, 소유물로 가득 채우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릇이 가득 차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고,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릇은 결국 금이 가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그릇에 나라는 아집과 욕망이라는 집착이 꽉 들어차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진심도, 삶의 새로운 경이로움도 담아낼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비움은 결코 상실이나 결핍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가능성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숲이 아름다운 까닭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으로 햇살과 바람이 드나들기 때문이듯,

사람의 매력 또한 완벽한 채움이 아니라 삶의 여백에서 나옵니다.

 

말을 줄여 침묵의 공간을 만들 때 비로소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내 생각을 비워낼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물은 앞에 놓인 돌을 치우려 애쓰지 않고

그저 비어 있는 틈을 찾아 아래로 흘러갈 뿐입니다.

그 낮은 곳으로의 흐름이 결국 거대한 바다를 이루지요.

 

삶의 팽팽한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의 한 귀퉁이를 비워둘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