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1월 14일 여행 일기 뒷부분이다.
6시 5분 군령다리 마을(오늘날 장성에 속함)에 도착했다. 앞쪽엔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산맥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을 그린 조선지도(대동여지도일 것임)는 정확하다. 지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군령( 軍令) 다리(Kunyong-tari)’ 마을이다. ‘군대명령 다리’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40리 거리에 있는 읍내인 장성은 “긴 성벽의 요새”라는 의미다.
벼 노적가리가 마을 근처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것이 흥미롭다. 탈곡할 때까지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타작은 당장 사용할 만큼만 한다. 인공적인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특이하다. 이제야 나는 쌀 벼를 이렇게 보관하는 까닭을 알았다. 그만큼의 양을 저장해 둘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 농가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행 동안 내내, 허물어진 돌무더기를 목격했다. 예전에 좋은 다리를 이루고 있었던 것들이다. 이는 옛날의 조선이 더 나았음을 보여준다. 서낭당(Sonangtang)이 수없이 많다. 주로 고갯마루에 있지만 낮은 쪽에도 있다.
여기 군령다리 주막촌은 곧 무너져 내일 듯한, 가축우리 같은 오두막들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는 크지만 끔찍하게 지저분하다. 사람들이 감히 좋은 집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집을 지으면 관아에서 돈을 뜯어낸다는 것이다. 날강도들이다.
오늘 밤 내 몸에서 거대한 이들을 발견했다. 장성까지는 40리 길이다.
옛 지도가 포크의 이날 여로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