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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왕대비 정순왕후 김씨, 한글 교서 내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9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왕대비가 또다시 언서(諺書)로 잇따라 엄한 분부를 내렸는데, 교서의 말미에 조정 신하들이 두 마음을 품고서 나라의 역적을 잡아 벌하지 않는다고 호되게 나무랐다. 이에 대신 등이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궐문을 밀치고 들어가려 하였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는 《정조실록》 28권, 정조 13년(1789년) 9월 26일 기록으로 왕대비가 한글로 쓴 교서를 내려, 대신 등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 조선시대 내내 ‘언문’이라 하여 푸대접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 《정조실록》 기록을 보면 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교서를 한글로 내리고 대신 등이 이를 받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곧 왕대비 등 궁중의 어른들이 한글로 교서를 쓰고 이를 대신들이 읽는 등 한글이 푸대접이 아니라 한자를 넘어 공식 주류문자가 되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이는 세종이 죽은 왕비 소헌왕후를 기리는 《월인천강지곡》를 써서 창제 당시 훈민정음 창제를 극렬히 반대하는 대신들을 넘어 훈민정음이 공식 주류문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세종대왕의 염원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월인천강지곡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월인천강지곡》에 쓰인 한글과 한자 크기를 견줘, 한글이 한자보다 더 크게 표기함으로써 공식 주류문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