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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왜 무거운가?

이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저자 서면 대담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노을은 대개 가볍다. 하루의 끝을 붉게 물들이고 곧 사라지는, 그래서 낭만이나 쇠락의 비유로 쓰이던 풍경이다. 그런데 이하 시인은 그 노을을 “무겁다”라고 썼다. 시인의 노을은 “저녁 끼니”고, “일 가는 아버지를 떠미는 바람”이며, “오 남매 바랜 소맷귀”를 꿰매던 어머니의 밤이다. 시집 제목이자 표제작인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그렇게 한 가족의 생활 무게를 여섯 줄 시조에 얹어 놓는다.

 

이하 시인(본명 이만식)은 1995년 《오늘의문학》시* 신인상, 1996년《월간문학》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시ㆍ시조ㆍ조각시를 넘나들며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짧은 시형인 ‘조각시’ 장르를 새로 열었고, 세종문화예술상을 받았다. 경동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하다 2026년 8월, 40년 교단생활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 시조집을 냈다. 4부 90여 편은 ‘꽃 쓰기’, ‘낙서’, ‘속초 바다’, ‘내성천’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꽃과 바다와 강, 그리고 낙서처럼 던지는 시대 풍자까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그대로 차례가 되었다.

 

한글학을 공부해 온 필자로서 이 시조집에 눈길이 오래 머문 까닭이 하나 더 있다. 「꽃 쓰기」는 ‘꽃’이라는 글자 하나를 꽃잎(ㄲ)ㆍ꽃받침(ㅗ)ㆍ뿌리(ㅊ)로 그려 낸 시이고, 「훈민정음」은 창제 원리를 세 수의 시조로 풀어낸 시다. 글자를 쓰는 일과 꽃을 피우는 일이 한 몸이라는 발견은, 700년 시조 전통과 580년 한글 역사가 한 시인 안에서 만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년을 맞은 시인에게 서면으로 다섯 가지를 물었다.

 

 

- 표제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노을을 “저녁 끼니”와 “일 가는 아버지를 떠미는 바람”으로 바꿔 놓습니다. 노을이 무겁다는 발상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리고 이 시를 시집 맨 끝, 4부 마지막 자리에 둔 까닭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 우리 집 노을은 감상할 겨를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해가 기울면 어머니는 다섯 아이 저녁을 걱정해야 했고, 아버지는 그 시간에 다시 일터로 나가셨습니다. 노을은 하늘의 색이 아니라 어머니 등에 얹힌 물동이의 무게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물동이 무게만큼 출렁인 눈물방울”이라 썼습니다. 그 눈물이 발등을 적시고, 수액이 되어 숲이 되고, 남은 것은 샘물이 되어 세상으로 흘렀다고 마무리한 것은, 어머니의 고단함이 소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이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맨 끝에 둔 것은 시집 전체가 결국 여기로 흘러 들어오도록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꽃도, 바다도, 강도, 시대에 대한 낙서도 결국은 나를 길러낸 사람의 노을로 돌아옵니다.“

 

- ‘시인의 말’에서 “7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의 정형시형인 시조”에 성찰을 담는 일이 매우 뜻깊다고 하셨습니다. 시와 시조를 함께 써 오셨고 ‘조각시’라는 짧은 시형을 따로 창시하기도 하셨는데, 이번에 굳이 시조라는 그릇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형이 시인에게 구속입니까, 자유입니까?

 

  “정형은 저에게 오히려 자유입니다. 자유시는 어디서 멈출지를 시인이 매번 결정해야 하지만, 시조는 3장 6구의 호흡이 이미 멈출 자리를 알려 줍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덜어 낼지 고민하는 과정이 곧 성찰입니다. 「봄비」처럼 “하늘 춘신 구망이 하늘 창을 바르다가 / … / 봄비가 토도독토도독 매화꽃을 지우네”로 단시조 한 수에 담아야 할 때, 저는 말을 줄이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봅니다. 조각시는 시조보다 더 짧게 부수어 본 실험이었고, 이번 시조집은 그 실험을 거쳐 다시 전통의 호흡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정년을 앞두고 가장 오래된 우리 시형에 제 삶을 맡겨 보고 싶었습니다.“

 

- 1부 첫머리 「꽃 쓰기」는 ‘꽃’이라는 글자를 꽃잎 ㄲ, 꽃받침 ㅗ, 뿌리 ㅊ으로 나누어 “종이 밭에 피었다”라고 합니다. 2부의 「훈민정음」은 “ㄱㄴ는 혀, ㅁ은 입술, ㅅ는 이, ㅇ은 목”이라며 창제 원리를 시조로 풀어냅니다. 한글 연구자로서 특히 반가운 작품들인데, 글자와 꽃, 글자와 소리를 한 몸으로 보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어느 날 원고지에 ‘꽃’이라고 쓰고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글자가 정말 꽃처럼 생겼더군요. ㄲ은 겹으로 피는 꽃잎이고, ㅗ는 꽃받침이고, 받침 ㅊ은 땅속으로 뻗은 뿌리였습니다. 한글은 그림글자가 아닌데도 그런 형상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것은 세종이 글자를 발음 기관과 하늘ㆍ땅ㆍ사람의 모습에서 따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그 감탄을 그대로 적은 시조입니다. 홀소리는 철학이고 닿소리는 과학이라는 생각, 스물여덟 글자로 삼백구십구억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놀라움을 시조 세 수에 담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상 시의 어휘와 공기(共起)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낱말이 어떤 말과 함께 놓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것을 숫자로 확인하는 일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글자 하나, 소리 하나가 생명처럼 보였습니다. 글자를 쓰는 일이 곧 씨를 심는 일이라는 「꽃 쓰기」의 발상은 거기서 왔습니다.”

 

- 2부 ‘낙서’는 결이 다릅니다. 「새-공중변소 낙서」는 “새-누리 새-민주 신-한국”이라는 이름들을 뒤집어 “언제나 헌 것인 우리”라고 하고, 「진영 싸움」은 “서로가 비정상이라니 그 말만은 정상이네”라고 비틉니다. 「북한 이탈 주민」처럼 남쪽 담에 기댄 사람의 온기를 짚은 시도 있습니다. 서정 시인이 시대를 향해 이런 ‘낙서’를 남기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시조는 원래 세상을 향해 한마디 던지는 노래였습니다. 조선의 선비들도 시조로 임금을 그리워하고 세상을 꾸짖었지요. ‘낙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거창한 논평이 아니라 공중변소 벽에 누군가 슬쩍 적어 둔 한 줄처럼 읽히기를 바라서입니다. 정치를 직접 말하기보다 ‘새’라는 접두어가 얼마나 헐어 버렸는지, 말이 어떻게 낡은 지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북한 이탈 주민」은 조금 다릅니다. 그이가 남쪽 담에 기댄 것은 벽이 밝아서가 아니라 “추위에 볕이 먼저지 밝다 한들 대수겠소”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시대를 꾸짖는 일과 사람을 껴안는 일이 저에게는 같은 일입니다. 풍자도 결국은 연민에서 나옵니다.“

 

- 3부는 ‘속초 바다’ 사계절, 4부는 ‘내성천’과 경주ㆍ부석사 같은 고향 땅으로 채워졌습니다. 「속초 바다, 여름」에서 섬은 “절벽처럼 곧추선다”라고 했고, 발문을 쓴 이성철 평론가는 이 시집의 바다를 ‘생명의 에너지원’으로 읽었습니다. 40년 교단을 떠나는 지금, 바다와 강은 시인에게 어떤 곳입니까.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십니까?

 

  “속초 바다는 제가 오래 강의하러 오가며 날마다 본 바다입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네 편으로 나눈 것은 같은 바다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은 제 어린 시절의 강이고, 어머니의 물동이가 채워지던 물입니다. 바다는 저를 밖으로 밀어내고, 강은 저를 안으로 데려갑니다. 정년이란 그 사이에서 이제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게 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더 짧고 더 느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인의 말’에 적었듯 시는 세상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정년 뒤에 비로소 침묵을 들을 시간이 생겼으니, 이제부터가 제 시조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대담 답변을 받아 읽으며 다시 시집 첫 장으로 돌아갔다. 「벚꽃」은 이렇게 끝난다. “내 미처 / 고백하기 전에 / 요절했네! 몹쓸 봄”. 채 말하기도 전에 져 버리는 꽃 앞에서 시인은 탄식하지만, 그 탄식이 여섯 줄 시조 안에 온전히 담긴 순간 봄은 요절하지 않는다. 이하 시인이 시조라는 700년 그릇을 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시조집은 자연 예찬도, 회고록도 아니다. 꽃을 글자로 쓰고, 글자를 꽃으로 피우고, 시대의 벽에 낙서를 남기고, 끝내 어머니의 노을로 돌아오는 한 사람의 궤적이다. 발문을 쓴 이성철 평론가의 말처럼, 이 시집의 시어들은 ‘바다-물-눈물-어머니-생명’, ‘꽃-뿌리-낙화-노을-어머니’로 서로 이어져 시집 전체가 한 편의 긴 시처럼 읽힌다. 그 긴 시의 마지막 낱말이 ‘어머니’라는 사실이, 노을이 왜 무거운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 준다. 정년을 맞은 시인에게 40년의 교단은 끝났지만, 시조의 호흡은 이제 막 제 속도를 찾은 듯하다. 노을이 무거워서 오래 지지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