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수)

  • 맑음동두천 17.5℃
  • 맑음강릉 18.8℃
  • 맑음서울 18.6℃
  • 맑음대전 16.7℃
  • 맑음대구 19.3℃
  • 맑음울산 19.2℃
  • 맑음광주 18.2℃
  • 맑음부산 20.8℃
  • 맑음고창 17.9℃
  • 맑음제주 20.7℃
  • 맑음강화 17.7℃
  • 맑음보은 16.9℃
  • 맑음금산 17.3℃
  • 맑음강진군 18.7℃
  • 맑음경주시 19.0℃
  • 맑음거제 16.8℃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스물여덟 해 만에 다시 부르는 이름들

여러분의 이름을 외우던 그 봄이 내 선생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계절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1998년에 찍은 특별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998년 봄, 연세대학교 교양 국어 〈글과 삶〉을 맡았다. 시간강사로서 한 학기 내가 강의하는 학생 수는 평균 200여 명이었다. 제자 이름을 모르면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겼기에 이름을 외우기 위해 야외 수업 겸 모둠별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귀퉁이에 찍힌 날짜는 3월 12일이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은 연세대 캠퍼스 뒤 안산 기슭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앙상한 나무와 시멘트 담장 앞이었다. 학생들은 둘둘 만 수업자료와 책을 들고 조금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만으로는 이름이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옆에 두고 공책에 한 사람씩 옮겨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림 잘 그리는 임운하 제자가 도와주었다. 얼굴 위에 말풍선을 달고 그 안에 이름을, 풍선 꼭대기에는 성을 적었다. 장지훈, 장종철, 전소정, 이지현, 이지혜, 전진용, 전석인, 임운하, 전대홍. 한가운데 내 이름은 ‘스롱’이라고 장난스레 적었다.

 

 

그림을 다시 보니 웃음이 난다. 브이를 그리며 앉아 있던 운하는 제 얼굴에만 까만 선글라스를 씌워 놓았다. 말풍선도 구름 모양, 톱니 모양, 네모 모양으로 제각각이다. 얼굴이 비슷비슷한 스무 살 청춘들을 어떻게든 구별해 보려고 붙인 표시였다. 200명의 이름을 외우는 일도 그렇게 틀리고 고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절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고전을 묻던 지훈이

 

내친김에 그 학기에 학생들이 낸 보고서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는 과제를 종이로도 받고 아래한글 파일로도 받아 모두 남아 있다. 이과대학 자연과학부 장지훈 보고서. 그림 맨 왼쪽, 성 ‘장’을 이고 있는 ‘지훈’의 말풍선 속 주인공이다. 긴 외투를 입고 난간을 짚은 채 종이 한 장을 쥐고 서 있던 그 학생이다. 사진 속 얼굴과 보고서의 글씨가 스물여덟 해를 건너 한 사람으로 다시 이어졌다.

 

보고서의 글감은 “고전이란 무엇인가? 고전은 읽을 만한 것인가? 어떻게 읽어야 하나?”였다. 지훈이는 고전을 “예전에 쓰여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으면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글”이라고 정의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전을 읽을 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글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라고 했다. 실학자들의 글이 지금은 당연하게 들려도 그 시대에는 획기적인 생각이었다는 예도 들었다. 맞춤법은 여기저기 삐끗했지만, 옛글을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읽으라는 생각만큼은 스무 살 자연과학도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했다.

 

보고서 끝에는 나에게 쓴 짧은 편지가 붙어 있었다.

 

“대학 와서 선생님의 수업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과학부라 자칫 잃기 쉬운 여러 가지에 대해서 선생님의 수업은 저에게 다시 그런 의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던 소정이

 

다음 묶음에서 또 하나의 이름이 나왔다. 자연과학부 5반 전소정. 그림 속 톱니 모양 말풍선 꼭대기에 ‘전’ 자를 얹은 ‘소정’이다. 사진에서는 청재킷을 입고 긴 머리를 내린 채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바로 내 옆자리였다.

 

소정이가 고른 글감은 영화 〈일 포스티노〉의 언어 분석이었다. 이 영화를 고른 까닭부터 솔직했다. 목록 가운데 “유일하게 내가 접해보지 않았던 영화”였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감정이 조금 메마른 나라서 그런지 나는 그다지 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괄호를 열고 느낌표를 찍었다. 영화 속 시적 언어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느꼈다며, “이것은 나로서는 커다란 변화다!”라고 적었다.

 

채점하던 1998년의 나도 이 괄호 앞에서 웃었을 것이다. 자연과학부 새내기가 시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스스로 놀라며 고백하는 순간이다. 교양 국어 선생에게 이만한 보람이 또 있을까.

 

소정이는 우체부 마리오가 시인 네루다를 만나 은유를 배워 가는 이야기를 꼼꼼히 따라갔다. 그 가운데 내 눈길을 오래 붙잡은 대목이 있다.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책에 사인을 받으려고 전날 밤 거울 앞에서 연습하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 사인을 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다가, 이튿날 실제로는 “이 책을 소중한 책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소정이는 조심스럽게 “나의 과장된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뒤의 말이 더 듣기 좋고 느낌이 좋다고 썼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시적 언어는 일상 언어보다 분명 비경제적이지만, 그것이 전해 주는 느낌과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고.

 

마리오가 떠난 네루다에게 보내려고 섬의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도 옮겨 적었다. 칼라디 소토의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의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교회의 종소리,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 파블리토의 심장 소리. 마리오는 자기가 사랑한 것들에 번호를 매겨 하나하나 불렀다.

 

그 대목을 읽다가 내 공책 속 그림이 떠올랐다. 우리도 그해 봄 학생들의 얼굴에 말풍선을 달아 하나씩 이름을 붙였다. 1번 지훈, 2번 종철, 3번 소정……. 마리오의 녹음기가 섬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면, 운하가 그려 준 연필그림은 200명을 잊지 않으려는 내 몸부림을 거든 선물이었다.

 

소정이는 네루다의 말을 빌려 보고서를 맺었다.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겪어 보는 것이라고. 그러고는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시적 언어의 가치는 인정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학생이 시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짚을 수 있을까?

 

다시 읽으니 고전이 되었다

 

〈글과 삶〉이라는 이름을 내건 수업에서 내가 정말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 기술이 아니었다. 글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붙잡는 일이었다. 그 뜻이 적어도 두 학생에게는 닿았던 것이다. 지훈이는 옛글이 오늘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소정이는 메말랐다고 여긴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훈이의 말을 빌리면, 고전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다시 읽을 때 새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고전이다. 그렇다면 이 누렇게 바랜 보고서 묶음과 운하의 연필그림 한 장은 나에게 가장 사적인 고전이다. 1998년에는 학생의 숙제였고 채점할 원고였다. 2026년의 나에게는 한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교단에 섰는지 되비춰 주는 기록이 되었다. 소정이의 말을 빌리면, 너희들이 이 종이 뭉치를 “소중한 책”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그때의 스무 살들은 이제 마흔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어떤 이는 연구실에서, 어떤 이는 회사에서, 또 어떤 이는 누군가의 부모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외우려 애썼던 것처럼, 그들도 어느 봄날 캠퍼스 담장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쯤은 기억하고 있을까?

 

지훈, 종철, 소정, 지현, 지혜, 진용, 석인, 운하, 대홍. 스물여덟 해 만에 다시 불러 본다. 여러분의 이름을 외우던 그 봄이 내 선생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계절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