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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11월 14일, 장성주막에서 일어난 일

마치 유령을 본 듯, 주춤주춤 뒷걸음을 하는 여자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100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주막 비용을 치렀다. 나는 안방(anpang)에 들었다. 방안에는 항아리들, 상자들, 온갖 세간살이, 잡동사니가 놓여 있다. 양묵과 수일은 주인 방을 차지하였다. 내 방은 상당히 나쁘게 보이는데 수일은 말한다. 이 집은 일반 백성보다 높은 사람의 집인데 내 거처는 beppin(배필, 여기에서는 첩)이 사는 방인 것 같다고. 수일은 작은 요강(toilet box), 비단 옷가지, 서랍장 등등을 가리킨다.

 

그러더니 수일과 양묵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여자는 부인이 아니고 첩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좋은 물건들이 너무 많다는 것. 반 다스(여섯개) 정도의 허접한 것들인데 시골 여자에게는 아주 좋은 물건인 모양이다.

 

내 방 뒤로는 마구간 같은 것들이 있다. 마부가 내 방에 불쑥불쑥 들어온다. 이제 그런 일에는 이력이 났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좀 있으니, 소리가 들린다. Beppin(배필)이 주안상을 양묵과 수일에게 가져오고 있다. 나는 방문 너머로 양묵에게 그녀에게 전해 달라고 말한다. “당신의 방을 차지해 미안합니다.” 양묵이 그녀를 만나 보겠느냐고 하면서 문을 연다. 그녀는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 어디쯤으로 보인다. 곰보 자국이 나 있다. 첩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차림새는 깔끔하다. 크고 흰 치마에 보라색 저고리를 입고 있다. 그녀는 자기 방에 든 양반(nyangpan)이 외국인임을 몰랐던 것 같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굳어 버린다. 입을 반쯤 연 채 멍하니 바라본다. 양묵이 그녀에게 나의 술상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녀가 술을 가져온다. 나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나는 술을 한 잔 마시며 “고맙소(komapso”라고 말한다. 조선어로 말하면 놀랄 줄 알았는데 무반응이다. 나는 그녀에게 외국인을 처음 보느냐고 말을 붙인다.

 

그녀를 편하게 해 주려고 수작을 걸어 본다. 효과가 없다. 그녀는 마치 유령을 본 듯, 주춤주춤 양묵과 수일 쪽으로 뒷걸음을 한다. 나는 얼른 사진을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 준다. 귀신이 아님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그녀는 사진에 대하여 아무 소감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코 평온을 회복하지 못한다. 나를 본 뒤로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수일이 말한 대로 그녀는 첩이다. 부인은 아마도 어디 떨어진 곳의 오두막 흙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첩이 가지고 있는 이런 가재도구 같은 건 하나도 없이.

 

나는 이 고을에서 오늘 이런 사실을 알았다. 곧 역참(Chalpang-do) 앞길에서부터는 물길이 제방을 뚫고 범람하는 통에 그 좋은 땅을 경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골짜기 대부분의 경사면을 살펴보면, 물길을 끌어들여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장성까지는 약 20리(ri) 길이 남아 있다.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