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음식 가운데 추어탕이 있다. 미꾸라지를 한자로 추어(鰍魚)라고 한다. ‘鰍’라는 글자를 가만히 보면 재미있다. 물고기 어(魚)에 가을 추(秋)가 붙어 있다. 그래서 흔히 가을에 살이 올라 가장 맛있는 물고기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자의 기원을 따져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鰍’는 ‘鰌’라고도 썼으므로 ‘秋’는 본래 ‘가을’이라는 뜻보다는 ‘추’라는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우연치고는 참 절묘하다. 글자의 유래와는 별개로 미꾸라지는 실제로 우리에게 가을을 대표하는 물고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물고기
나는 낚시를 좋아하다 보니 미꾸라지의 생명력을 직접 볼 기회가 많다.
바다 생미끼 낚시에서 흔히 사용하는 미끼가 새우와 미꾸라지다. 그런데 낚시점에서 사는 미꾸라지는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가 아니다. 민물에서 기른 미꾸라지다. 그런 미꾸라지를 바늘에 꿰어 바닷물 속에 넣어도 상당 시간 살아 움직인다. 수심 100m가 넘는 곳까지 내렸다가 다시 끌어올리는 일을 반복하고도 살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물론 미꾸라지는 본래 담수어임에도 불구하고 낚시 현장에서 보면 급격한 환경 변화에 견디는 능력이 놀랍다. 곧 바닷물과 민물의 염분 차이, 수심 변화에 따른 수압 변화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더 신기한 능력은 따로 있다. 미꾸라지는 물속의 산소가 부족하면 수면으로 올라와 공기를 삼킨다. 그리고 소화를 담당하는 장의 뒷부분을 이용해 산소를 흡수한다. 실제 연구에서도 20℃의 안정된 상태에서 장을 통한 산소 섭취가 전체 산소 섭취량의 약 20%에 이르고, 물속 산소가 부족할수록 장호흡의 비중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환경에서만 잘 사는 생물이 아니라 "환경이 나빠졌을 때 살아남을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인 셈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던 서민의 물고기
미꾸라지는 얕은 개울이나 논, 진흙 속에서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문헌으로는 12세기 서긍의 《고려도경》에 이미 고려의 서민들이 먹던 수산물 가운데 ‘추(鰍)’가 등장한다.
조선 후기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더욱 친근한 모습이 나온다. 미꾸라지를 ‘이추(泥鰍)’라고 하면서, 시골 사람들이 잡은 미꾸라지를 맑은 물에 넣어 진흙을 토하게 한 뒤 죽을 끓여 먹는데 별미라고 기록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지금처럼 전문 음식점에서 파는 추어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논에서 일하다 잡은 미꾸라지를 집으로 가져와 솥에 넣고 끓여 먹었던 농촌의 생활음식이 먼저였을 것이다.
서울의 '추탕'과 남원의 '추어탕'
그런데 추어탕은 지역에 따라 꽤 다른 음식으로 발전했다.
서울의 옛 추탕은 우리가 요즘 흔히 만나는 남원식 추어탕과 다르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통추’가 서울식의 중요한 특징이다.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미꾸라지를 해감한 뒤 업진(소의 가슴에 붙은 고기)이나 사태를 푹 끓인 쇠고기 국물에 넣어 끓이는 방법이 나온다. 서울식은 쇠고기나 내장으로 국물을 내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으며 두부나 유부, 여러 채소까지 더 해 비교적 화려한 음식으로 발전했다.
남원추어탕은 뿌리가 다르다.
지리산을 끼고 논농사가 발달한 남원에서는 논과 수로에서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농촌에서는 잡은 미꾸라지를 삶아 뼈를 추리고 된장을 푼 국물에 넣고 푸성귀(채소)와 함께 끓였다. 이런 농경지역의 음식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남원추어탕이 되었다. 남원에서는 특히 미꾸라지보다 몸통이 둥글고 부드러운 토종 ‘미꾸리’도 즐겨 사용했다. 오늘날에는 삶은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시래기나 우거지와 함께 끓이고 마지막에 제피나 산초 계열의 향신료를 넣어 먹는 방식이 남원추어탕의 대표적인 모습이 되었다.
내가 먹었던 추어탕은 ‘갈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의 추어탕은 지금 식당에서 먹는 추어탕과 조금 다르다.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 먹었던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믹서에 넣어 곱게 갈아 끓인 것이 아니었다. 큰 솥에 미꾸라지를 넣고 오랫동안 푹 고았다. 한참을 끓이다 보면 살이 저절로 풀어지고 국물 속으로 흩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꾸라지는 ‘갈은 음식’이라기보다 ‘고운 음식’이었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이런 기억과 이어지는 조리법도 있다. 오래전부터 지방에서는 미꾸라지를 삶아 뼈를 추리거나 체에 내려 탕을 끓였고, 통째로 끓이는 방법도 함께 존재했다. 오늘날처럼 분쇄기로 아주 곱게 갈아내는 방식은 옛 조리법을 현대의 도구로 훨씬 편리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의 믹서가 미꾸라지를 잘게 부순다면, 옛날의 추어탕은 시간과 불이 미꾸라지를 풀어냈다." 내게는 그 차이가 단순한 조리법의 차이만은 아니다. 큰 솥에서 오랫동안 보글보글 끓던 추어탕에는 가을걷이를 끝낸 농촌의 풍경과 한 솥의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던 기억까지 함께 들어 있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먹는 보양식
추어탕이 오랫동안 보양식으로 사랑받은 데에는 영양학적인 이유도 있다. 미꾸라지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A 등이 풍부하고,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살만 발라 먹는 것이 아니라 뼈까지 삶아 먹기 때문에 칼슘을 섭취하는 데도 유리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미꾸라지를 영양식품으로 설명한다.
한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미꾸라지를 음식 이상의 재료로 바라보았다. 《동의보감》에는 추어(鰍魚)가 ‘보중(補中)’하고 ‘지설(止泄, 설사를 멈추게 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중이란 말 그대로 몸의 가운데를 보한다는 뜻이다. 기운이 떨어지고 소화기가 허약한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음식이라는 전통적 인식이다. 그래서 추어탕은 특별히 귀한 재료로 만든 보양식이라기보다 "흔한 것을 가장 충실하게 먹었던 서민의 보양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가을 한 그릇에 담긴 생명력
나는 음식을 영양성분만으로 설명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백질이 몇 그램이고 칼슘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제철 음식을 먹어온 까닭을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미꾸라지는 진흙 속에서 살아간다. 물속 산소가 부족하면 공기를 삼켜 장으로 숨을 쉬고, 불리한 환경에서도 쉽게 생명을 놓지 않는다. 미꾸라지는 좋은 환경만 찾아 살아가는 물고기라기보다, 나쁜 환경이 닥쳤을 때 살아남을 방법을 가진 물고기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추어탕 한 그릇에 들어 있는 것은 미꾸라지의 살과 뼈만이 아니다.
"가을 추어탕을 먹는다는 것은 한 계절을 견디며 몸을 채운 작은 생명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제철 음식은 그 계절을 가장 잘 견뎌낸 생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생명의 힘을 음식으로 받아들여 왔다. 추어탕이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까닭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