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 음악의 박연 세종 시대에는 주위에 인물이 많았는데 유독 그 시대에 인물이 많았던 것인가 아니면 세종이 인물들의 능력을 북돋아 키웠는가는 논의해 볼 일이다. 즉 인물이 자랐느냐 인물을 키웠는가는 의문인데 유독 그 시대에만 인물이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유학(儒學)을 신념으로 세운 조선에서 중시한 것은 예와 악이다. 주희의 신유학에서는 예법을 법에 의한 사법(司法)보다 위에 두었다. 예법에는 국가나 개인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의 길례, 손님을 맞는 빈례, 혼인의 가례, 흉사 때의 흉례, 군사 행렬 시의 군례다. 이 중요한 개인, 나라에서의 행사에 수반되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국가를 마음으로 잇는 길이고 수단인 것이다. 세종 시대에 음악에 있어서는 박연이 눈에 띤다. 향악 음악을 정리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음악에서의 독창성 혹은 자주적인 음악세계를 찾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발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세종 12년 세종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즉 전통이며 그때까지는 정통이라 할 중국음악 즉 아악에 이의를 제기하는 혁신을 제안한다. (아악 연주의 타당함 등에 대해 의논하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다. 세종 때는 작은 전쟁이라 할 이민족과의 전투로는 대마도 정벌과 파저강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는 영웅 내지 관심받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하나로 대마도 정벌의 이종무가 있다. 이종무는 고려, 태종 때부터의 인재라 할 수 있다. 대마도 정벌은 태종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나 세종대에 이루어진 일이라 세종의 치적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는 일본과의 마찰 연장 선상에서 왜구정벌이라는 상징적 공적 때문으로 대마도가 자주 논의되기도 한다. 이종무(李從茂, 1360년~1425년)는 공민왕 때 태어났고 기록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조선 건국 뒤에도 태조에서 세종에 걸쳐 조선 초기 4대 임금을 모셨다. 2차 왕자의 난 때에는 이방원의 편에 가담하여 이방간의 군사를 전멸시켰다. 대마도정벌 일본 왜구는 고려 말부터 자주 조선반도를 침입하고 있었다. 세종 1년 5월에 충청도 비인현(서천)에 수백 척의 왜인 배가 침입해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과 교역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이에 세종 1년 마침내 태종이 주관하여 6월 19일 그들이 비어 있을 대마도 정벌이 이루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생각하는 정치가다. 그렇다면 세종의 일상 정치를 통해 세종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황희 정승의 사의 파동에 대한 대응이다. 황희(1363~1452, 호 방촌-厖村)는 개성 출생으로 우왕 시절 1383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뒤 이후 태조 이성계의 요청으로 태조 3년 성균관학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사직 파동 이후 황희의 사직 파동은 여러 번 있었다. 1415년 송사문제, 1418년 양녕 옹호, 1427년 서달 사건, 1430년 제주 말에 연관한 태석균 등의 사건이다. 그는 모질지 않은 성품 탓에 청탁 뇌물 수수 등의 비리사건에 자주 연루되었다. 세종 10년에 황희가 박용 등의 문제로 사직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자 사퇴파동이 있었다. 그러나 복직되고는 했다. 영의정 재직 중 파주 반구정(伴鷗亭)에 은거하다가 1431년 복직되었다. 69살 되던 1431년(세종 13년) 9월에는 영의정부사 자리에 올랐다. 14년에는 황희가 1363년생이니 70살이고 세종은 36살이다. 당시는 ‘인생 70 고래희’라고 하여 70살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 때다. 이제는 고령인 까닭으로 사직서를 올린다. "엎드려 생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생각하는 정치가다. 그렇다면 세종의 일상 정치를 통해 세종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황희 정승의 사의 파동이 있다. 황희의 사직파동 - ① 세종은 스스로 학문이 탄탄한 면이 있어 여러 가지 제도 개혁부터 과학적인 창제에 이르기까지 좋은 업적을 쌓았지만, 그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일은 훌륭한 인재를 옆에 두고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세종과 후대의 정조 임금을 조선왕조에서 높이 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종의 인재 가운데 행정 분야에서는 황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황희(黃喜, 1363~1452, 호 방촌-厖村)는 개성 태생으로 우왕 말기 진사시에 합격, 창왕 때 문과에 급제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했으나, 태조 이성계의 요청으로 성균관학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태종 2년(1402) 부친상을 당해 잠시 사직하였다. 태종 8년 민무휼 등의 횡포를 제거하였다. 18년에는 양녕대군의 세자 폐출(충녕대군 세자 책봉)을 적극 반대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교하(交河)로 유배되었다. 그때도 유배라기보다 일선에서의 후퇴였다. 이어 세종 4년(1422)에 상왕(태종)의 진노가 풀려 의정부 좌참찬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상호 교류하며 얻으려는 목표가 있다. 바로 몸과 마음이 도달해야 하는 곳은 하늘의 이치를 아는 도심과 천심의 세계다. 천심이란 사람이 지키려는 하늘의 도리다. 일찍 중국 철학사에서 인심도심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요순시대라고 본다. 《서경》의 기록에 근거한 이후 12세기 송나라의 주희(朱熹)에 이르러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말하자면 우리 마음의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서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道心)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人心)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심은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은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성선설(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리하여 도심은 인간에게 있는 측은하게 여기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서로 교류하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몸이 먼저 나가는가 아니면 마음이 동하여 움직이게 되는가, 분명치 않다. 마치 리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냐 리기이원론이야 하는 논쟁 같은데 여기서는 간략히 리(理)와 기(氣)가 함께 움직이는데 발하는 순서가 경우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해두자. 조선 신유학(新儒學)의 자연철학은 존재론인 리기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주자(朱子)는 만물은 있어야 할 모습으로 반드시 그래야만 할 법칙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을 '리'라고 설명했다. 유교의 존재론인 이 리기설은 심성론과 연결되어 사람의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고, 이때 성은 ‘리'이고 정은 ‘기'라고 생각했다. 대개 사람에서는 ‘리’와 ‘기’가 합해서 ‘마음’이 되는 것이니, 리가 주인이 되어 기를 거느리면 마음이 고요하고 생각이 한결같아서 스스로 쓸데없는 생각이 없어지지만, 리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기가 이기게 되면 마음은 어지럽기 그지없어서 사특하고 망령된 생각이 뒤섞여 일어나 마치 물방울바퀴가 둘러 도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경향이 심해졌다. 이럴때 일수록 돌파구를 찾아서 살던 방향을 고쳐서라도 새로운 일상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항심(恒心)이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게 되는 자기 독려다. 삶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하고 못한 일을 마음에 새기며 내일을 향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는데 이것이 개심(改心)이다. 다음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몸이 움직여야 할 텐데 바로 용심(用心)이다. 다음 단계는 이어 항심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마음이 약해서이겠지만 달리 보면 그보다는 계획을 너무 크게 잡아서일 수도 있다. ‘내일부터 매일 만보를 걸어야지.’ 하고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는 것이 일반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걸어야지, 그리고 그것이 되면 세번으로 늘려가는 방식을 택하고 먼저 5천보라도 걷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항심과 연관한 심리학에 다음 예가 있다. 사람은 큰 컵에든 적은 양의 얼음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즉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사람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했거나 잘못한 일을 늘 마음에 새기며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바로 개심(改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을 할 때에는 최종으로 몸이 먼저 움직이게 훈련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바로 용심(用心)이다. 지난 회의 개심에 이어 용심을 살펴본다. 새로운 일 시작하기 어려움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작하면 되는 일인데 쉽게 손을 못 대고 미루면서 머무적거린다. 늘 하던 일이 아니면 일에 앞서 다시 생각을 하며 전체 틀을 잡아야 한다. 소위 틀거리를 잡고 다음에 세부사항인 줄거리를 잡아가야 한다. 그 틀거리를 잡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캔버스 앞에 앉아 한참 생각하고 있는 경우다. 전체 윤곽이 잡혀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나, 여행 등이 줄어들고 있다. 집안에 있던 사람은 시간 여유가 더 생겨 새로운 자기 능력을 찾아내는 일을 할 수 있을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런데 쉽게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간절히 소망하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코로나 19’ 상태에서 사회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보니 방송에 비치는 뉴스도 단조로워지고 있다. 코로나 관련 뉴스가 중심이고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해치는 범죄 뉴스가 눈에 잘 띈다. 코로나처럼 인명을 해치는 사건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근간의 사회 범죄를 보면 유아원 선생의 어린이 학대, 아이를 죽인 어머니, 아이를 낳고 유기하는 어머니, n방번 성관련 범죄, 어린아이를 범하는 여러 성에 관한 범죄, 아침에 술이 깨지 않은 채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음주교통, 산업재해 등 사회적 불안까지 유발하는 뉴스가 더욱 극성이다. 예년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기보다는 사회활동이 위축된 데다 집안에서 텔레비전 등 영상, 인터넷 매체에 접하는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두드러지는 인상을 받을지 모른다. 성관련 n번방에는 30여 개 방이 있는데 관련된 사람이 2만5천여 명, 동시 접촉자는 25만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이번 주 12일 금요일은 유아성범죄를 저지른 조 아무개 씨가 석방되는 날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피해를 본 집에서는 거꾸로 시민의 도움을 받아 이사 갈 정도다. 이런 현상을 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코로나 19’ 상태에서 사람의 직접 접촉이나 외출이 줄어들고 집에 있는 일이 많아지며 상대방과 전화나 인터넷 접촉을 하는 일이 늘어나니 사람 사이의 주고받는 말과 마음 나누기가 한 과제가 되어간다. 공감(共感)이 필요한 사회 ‘코로나19' 돌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며, 인류가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그 이후의 삶인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물론 각종 사회 시스템과 산업도 동시에 변하고 있다. 비대면 사회를 위한 대안이 그 예다. 나라 밖으로 가는 길은 막히고, 출근이나 등교 등 반복적인 일상마저 바뀌어 원격 교육이나 원격근무가 떠오른 것이다. 사람 사이의 직접적 접촉을 피하며 간접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대안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집에서 업무를 보고, 화상 회의를 열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수준이 새로운 일상이지만, 확장현실(XR) 기술이 합쳐지면 비대면 사회는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또 인공지능(AI) 기술이 고도화ㆍ보편화하면 비대면 대안은 '평등 사회' 구축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비용 및 시간, 정보 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