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는 돌이 아니외다 내 앞에서 그리고 내 뒤에서 “자넨 돌이야” 하는 이들이 두루 있어도 나는 정말 돌이 아니외다 길가에서 돌, 돌, 돌 구른다고 다 그저 돌이라고 하지 마시우다 들판에 널려있는 이름 없는 것들 중의 하나이라고 어찌 다 돌이겠수 더군다나 정과 마치를 손에 쥐고서 “모난 돌이야”라고는 더욱 마시우다 돌이 아닌 것을 자꾸 돌이라 해서 돌이 되겠수마는 그래서인지 나도 돌이 되고 싶을 때도 정말 있수다 그러나 나는 돌이 아니외다 풀이나 귀뚜라미나 바람일지는 몰라도 진정 돌만은 아니외다 《한국서예》, 1991년 제4호 < 해 설 > 이 작품에서 시인은 소박한 언어와 평이한 이미지로 자신의 시적주제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석화시에서 보면 몽롱시의 의식들이 그의 작품에서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들을 보면 상기의 시와 “나의 장례식”, “나는 나입니다” 등과 같은 시들이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기적소리 바람소리 – 연변ㆍ2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鳴)”---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분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 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장백산》, 2004년 4호 < 해 설 > 이 작품은 아무래도 경계의 공간과 숙명적인 공존의 주제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석화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디아스포라는 지역적 공간이나 정신적 공간에 있어서 아주 미묘한 중간상태에 처해 있고 경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보다 넓은 영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컴퓨터시대란다 컴퓨터시대란다 안방에 컴퓨터를 들여놨다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모니터에 그물이 펼쳐진다 먼저 큰 애가 걸리었다 작은 애도 곧 걸려들 것이다 12년 전 37원짜리 선풍기가 들어와서 종이부채, 향나무부채, 파초부채 싹 쓸어가듯이 텔레비전, 오디오, 세탁기, 청소기, 랭동기……. 하나씩 둘씩 들어올 때마다 그 대신 하나씩 둘씩 밀려나간 집식구들 컴퓨터시대란다 어느 프로그램을 설정하면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와 아이들을 하나씩 둘씩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안방에 컴퓨터를 들여왔다. - 《천지》, 1997년 제8호 < 해 설 > 석화시인은 개혁개방시대가 낳은 나젊은 훌륭한 시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대의식에 민감하고 남다른 개성적인 풍격으로 뚝 삐어져 나온 보기 드문 재능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지용시문학상 당선시집 《세월의 귀》에 이렇게 썼다. “거송처럼 멀리 내다보고 맹금처럼 깊이 굽어보면서 시의 의경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발음문제 - 작품 25 병아리가 엄마를 찾고 있다 삐아— 삐아— 아무리 고쳐 들어봐도 그 발음이 틀린다 구개음동화 아니 자음탈락이다 그럴 수밖에 찬찬히 볼수록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것 알루미늄 냄새가 난다 병원의 소독수냄새도 나는 같다 무정란—체외수정—인공배태—실험관아기 엊저녁 TV화면에서 펼쳐지던 새 아침이 로보트의 손가락에 베일처럼 벗겨지고 어마—어마— 자음이 탈락된 발음이 어데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 섬뜩 몸서리 쳐진다 —≪도라지≫, 1993년 제2호 < 해 설 > 시인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발전에 따라 인간이 점점 왜소해지고 소외되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외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앓고 있는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시집 ≪세월의 귀≫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의 하나이며 “작품 25 – 발음문제”와 같은 시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에게서는 알루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배를 타고(渡江) 물위엔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 너머 대안에선 조승상 같은 뱃고동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장강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버스 안에 허리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 중인 대교가 반공중에 신기루처럼 떠 있고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여 대의 관광버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가 시간 전 만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석철석 뱃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2004. 04. 15. * 뚜룬(渡輪) : 버스 등 큰 차량을 싣고 다니는 배 < 해설 > 석화시인의 시에서 중국의 고전에서 인용한 전고들이 적지 않다. 당시(唐詩), 송사(宋詞)나 《삼국연의》 같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모택동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누나! 우리의 달은 마을 뒤 재 너머 할아버지산소로 가는 휘우듬한 언덕마루에서 고무뽈처럼 튕겨 올랐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빌딩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조잘거리는 도랑물소리와 벌끝 논두렁위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단소소리에 둥둥 떠있었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가로등불빛이 희미한 네거리에서 목메게 흐느끼는 색소폰의 부르스와 비발치듯(빗발치듯) 커피색 창유리를 두드리는 나이트클럽의 디스코에 박자를 맞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고래등 같이 덩실한 기와집 추녀 끝에 보름달로 걸터앉아서 토끼와 계수나무의 꿈이 되고 옛 구리거울의 그리움이 되고 은쟁반에 흘러넘치는 서러움이 되고 하였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색 바래고 구겨진 광고종이 한 조각처럼 깜박거리는 네온등의 오색불빛에 파리해져버린 밤하늘 저켠에 겨우 붙어있습니다 누나! 도시의 달은 이젠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멀건 흔적 한 점을 남길까 말까하며 밤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우리의 그리움과 우리의 서러움도 정말 아무런 흔적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 “연변ㆍ5찰떡”은 자칫 연변의 교육열과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시편이지만 보다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시편이다. 이 시에서 “머리 허연 어른”이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작시 “연변”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역마살이 낀 것처럼 떠돌아다니지만 말고 찰떡같이 진득이 붙어서 천년만년 살아보자는. 또한 민초들의 원초적인 생의 욕구에 대한 긍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는. 다른 한편 “아무데나”, “아무데라도” 붙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활태도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도 읽힌다. 시대와 인간의 아픔을 남 먼저 아파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고 사랑의 방식이며 영원한 숙제라면 연작시 “연변”은 시인이 고향 연변에 바치는 또 하나의 사랑이며 완성된 숙제이다. 새로운 충전을 목적으로 한 시인의 “한국나들이”는 연변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며 이 작품도 그러한 결과물의 하나다. 시의 묘미는 여운에 있다. 좋은 시란 말은 끝났어도 여운이 남아있는 시다. 그렇다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을 제한된 언어로써 번역해내는 시평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꽃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하늘하늘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고운 모양과 울긋불긋 꽃잎마다 물드는 예쁜 색깔, 바람에 실려 주변에 은은하게 퍼지는 그윽한 꽃향기까지 꽃은 아름다움이란 어휘 그 자체이다. 그런데 어느 노랫말에서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읊조린다. 어떤 사람이면 꽃보다 아름다울까? 고운 얼굴, 고운 몸매, 고운 자태를 지니면 고운 꽃에 견줄 수 있을까? 그보다도 보드라운 꽃잎처럼 고운 마음과 넘치는 꽃 향기처럼 넉넉한 인간미를 지닌 이를 이르러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 부르리라.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류금화 님을 만났다. 그리고 꽃잎 같은, 꽃 향기 같은 대화를 나눴다. - 많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좋은 분으로 칭찬을 받고 본인들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 그처럼 살고 싶은 사람 일 순위로 뽑혔다고 들었다. “과찬이다. 오히려 연길에서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아줌마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대약진 전해(1956년) 도문 석현진의 한 보통 노동자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나서 60년대의 어려운 세월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문화대혁명기간 소학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맑은 물결이 조약돌 사이로 굴러가는 소리, 부리 고운 산새 서로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 얄포롬한 꽃잎이 파르르 입술을 여는 소리… 이것이 자연이 만드는 소리라면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다듬어 더욱 곱고 귀하게 들려주는 것이 음악이다. 그 소리가 우리의 전통민족악기의 울림으로 이루어진다면 또한 얼마나 황홀할까. 연길에는 이처럼 귀하고 고운 소리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다섯 젊은 음악인들이 묶인 전통민악그룹, 불러보면 그 이름도 맑고 밝은 “여울”이다. 그들을 만나보았다. - 요즘 우리의 본래의 것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전통민족악기로 우리의 고운 소리를 들려주어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여울”은 언제 어떻게 결성되었는가? “우리 <여울>은 2015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출신인 선후배로 구성된 전통민악그룹이다. 가야금ㆍ소해금ㆍ전통해금 등 악기들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편식 없이 소화하고 다양한 색깔로 연주하여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였다. 다소 생소하고 소외당하는 우리 민족음악을 더욱 빛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람으로 묶인 그룹이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2019년 새해의 벽두, 중국조선족사회는 위쳇을 달구는 훈훈한 소식 한편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1월 2일 아침 10시, 북경의 주중한국대사관에서 노영민(卢英敏) 대사가 “제12회 세계 한인의 날”을 기하여 유명한 조선족 기업가이며 사회활동가인 김의진(金毅振, 63세) 선생에게 한국 ‘대통령상’을 전달했다는 기별이었다. 노영민 대사를 비롯한 한국대사관 관계자, 재중한국단체 임원, 중국조선족사회 지성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김의진선생이 받은 《대통령표창장》에는 2018년 10월 5일자로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쓴 사인과 함께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명예회장 김의진: 귀하는 재외동포 권익신장을 통하여 국가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라는 글자가 씌어있었다. 김의진선생과의 일문일답을 적는다. - 중국조선족으로 유일하게 한국대통령의 “표창장”을 받았다. 축하한다. “이 표창장은 중국 땅에서 분투하고 있는 전체 조선족사회에 대한 한국대통령의 칭찬으로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오늘 내가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백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개척하고 정착하고 학교를 세워 자녀들에게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