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제 더 이상 물러갈 곳이 없는, 한해의 끝이다. 한해 끝자락에 서면 마음이 허(虛)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올해는 더없이 상쾌하고 즐거워야겠지만 복잡다단한 나라 안팎 여건 속에서 불황의 그림자까지 드리운 상황이다 보니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더욱 처진 느낌이다. 생기(生氣)를 잃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무엇인가 이들에게 기(氣)를 채워줄만한 것은 없을까 싶을 때에 눈에 확 띄는 전시회가 있어 다녀왔다.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길상 에너지 전>이란 이름의 전시회가 그것인데 작품을 그린 분은 능허 김성종 스님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붓으로 터치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놀라고, 언뜻 자수로 한올 한올 수놓은 것인가 싶어 바짝 다가서서 보면 그것도 아니라 놀란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 그림들을 그린 것일까? 그런 의아함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 하나하나에 쏟은 작가의 공력에 다시 한번 놀란다. 한올 한올,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자아내듯 수많은 선과 선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왁자지껄 잔치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꼬치감(串枾, 쿠시가키)축제다. 꼬치감은 말 그대로 가느다란 대나무 꼬챙이에 깎은 단감을 끼워 말리는 것으로 이것은 곶감으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초에 가가미모찌(鏡甁)에 장식하려는 것이다. 가가미모찌란 정월 초하루에 찹쌀떡을 눈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집안의 신성한 곳에 두는 의식으로 여기에 꼬치감을 얹어 놓는다. 이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풍습으로 신사(神社) 등에서 전해오는 3종의 신기(神器) 곧 거울과 칼, 곡옥을 대신하여 떡, 꼬치감, 귤을 포개어 진설하여 나쁜 액운을 막기 위한 민간신앙에서 유래한다. 칼 대신에 뾰족한 대나무 창에 곶감을 꿰어 말린 꼬치감은 우리가 흔히 먹는 곶감이긴 하지만 특별히 제례용 감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꼬치감으로 유명한 와카야마현 시고마을(四鄕)은 표고(標高) 400m~ 550m에 자리 잡아 겨울은 춥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꼬치감을 만들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진 지역이다. 이곳 말고도 기후현, 나가노현, 히로시마 같은 곳에서도 꼬치감을 생산하지만 시고(四鄕)산을 으뜸으로 친다. 시고마을의 꼬치감은 4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지금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님(오희옥 애국지사)은 3주 전, CT촬영시 팔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긴급히 깁스를 해야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호전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오희옥 지사님의 아들 김흥태 선생은 이렇게 최근 어머님의 근황을 전했다. 노환에 그러잖아도 기력이 쇠해가는 판에 골절까지 생겨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님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존해 계시는 유일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께서 병원 생활을 한 지 올해로 어언 만 5년을 넘기고 이제 다시 새해를 앞둔 지금, 어제(11일)는 모처럼 병원을 찾은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다.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 중인 서울중앙보훈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경기도 용인의 영문중학교 강연수 교사와 학생들이다. 이들은 손수 오희옥 지사께 드릴 목공예품 선물 ‘뒤주’와 아름다운 꽃 그리고 호두과자와 정성스런 편지를 써 가지고 와서 오희옥 지사의 쾌유를 빌었다. 코로나19가 해제되긴 했어도 병실 면회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는 가운데, 병문안 온 학생들은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해 있는 병실에는 들어가지 못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평생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부부 독립운동가 문일민(1962년 독립장), 안혜순(2019년 건국포장) 선생을 〈2023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삶의 동반자이자 부부 모두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고난을 함께하며,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운동을 지속해서 펼친 부부독립운동가들의 굳센 의지와 헌신은 조국 광복을 이뤄낸 귀중한 토대였다. 또한, 부부 가운데 여성독립운동가는 남편과 함께 의열투쟁에 가담하거나 광복군 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임시정부에서는 지도자와 독립운동가들을 살피는 한편, 때로는 남성들과 함께 총을 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평안남도 출생의 문일민(1894년) 선생은 1919년 3ㆍ1만세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가한 뒤 그해 7월, 남만주 서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남만주 독립운동 단체인 한족회에 가입, 평양에 잠입하여 애국청년회의 연락기능과 조직을 강화하고 만주로 복귀했다. 선생은 1919년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여 별동대 회원으로 활동했다. 아울러 당시 광복군총영에서 서울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일남 애국지사가 30일(목), 향년 98세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이일남 지사는 1942년 6월, 전주사범학교 재학 시에 비밀결사 단체인 「우리회」를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1945년 1월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하고 있다가 들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는 이일남 지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이일남 지사는 30일(목) 저녁 7시, 지병으로 대전성모병원에 입원 중 병세가 악화되어 임종을 맞았으며, 대전성모병원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2일(토) 아침 9시 발인한 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일남 지사가 세상을 떠서 생존 애국지사는 7명(국내 6명, 나라 밖 1명)만 남게 되었다. 국가보훈부는 고 이일남 지사와 그 유족에게 국민적 예우와 추모를 위해 안장식이 거행되는 오는 2일(토), 세종 본부는 물론 전국 지방보훈관서와 국립묘지, 소속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할 예정이다. 애국지사 추모 조기 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화도진도서관과 관동갤러리 도움 덕에 올여름 사진 전시회를 마치고 다시 사진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아내에게 아버지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고, 옛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6남매 단톡방은 옛 사진을 소환해 가며 추억여행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런 좋은 경험을 더 많은 분이 갖게 되시길 바라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좋은 추억, 예쁜 사진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수강생 김웅재- “‘한일(韓日) 어머니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나의 슬픔도 기쁨도 다 아는 인천과의 만남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을 다시 돌아보면서 제대로 정리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화도진도서관 관계자분들, 류은규 교수님과 도다 관장님을 비롯하여 함께해 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강생 야마다 다까꼬-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지난 1년을 회상하며 ‘즐겁고, 행복했다’라고 했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강좌는 지난 4월 14일부터 주 1회 모여, 사진 복원과 촬영 및 기억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27일) 낮 3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는 광복회(회장 이종찬)와 국립인천대학교(총장 박종태)간의 뜻깊은 업무협약식이 있었다. 이날 협약식은 발전적인 사업 부분의 협력자로서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굴ㆍ포상신청 및 독립운동사적지 발굴ㆍ연구사업’ 분야에 서로 이바지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협약을 맺기에 앞서 박종태 국립인천대 총장은 인사말에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받들어 후손들의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애국 선양에 힘쓰고 있는 광복회야말로 민족대통합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있는 애국과 독립의 상징적인 단체입니다. 한편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2023년 11월 현재 4,377명의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부에 서훈 신청을 해온 국내 유일의 연구소입니다. 앞으로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과 독립운동사적지 발굴사업에 관한 학술적 자료와 연구 등 상호 긴밀한 교류를 통해 발전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번에 광복회와 국립인천대가 업무협약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다년간에 걸쳐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에 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1945년 11월 23일) 78주년을 맞아 나라 밖에서는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임시정부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훈부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오는 11월 24일(금)부터 2024년 3월 6일까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주제로 첫 나라 밖 순회전시회를 연다”라고 밝혔다. 주중한국문화원과 함께 여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3월 1일 개관한 임시정부기념관의 개관특별전과 대통령기록관(세종시)에서 열린 국내 순회전시를 발전시킨 것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 과정, 그리고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전국 환영대회 등과 관련한 유물 63점을 전시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는 ‘승리하고 돌아가리라’라는 내용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수반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특히 1940년대 임시정부의 외교와 군사 활동을 전시한다. 주요 전시물로는 2대 국무령 홍진 선생을 소개한 독립신문 192호(1926), 김구 주석의 취임 선서(1944)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對日)선전성명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하였습니다. 화학공업 회사였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있는 압록강에, 당시 제일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댐(수풍댐)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일본 효고현 아시야(芦屋)에서 살았고, 아버지 혼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윤택하게 살았습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자, 아버지는 실직했고, 9인 가족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1941년 태어나 일곱 형제의 막내였던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한국 사람을 지배하고 그 덕분에 집이 부유하다는 게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씨다. 나는 지난해(2022) 10월 하라다 교코 씨로부터 일본어로 쓴 책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을 한 권 받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이라는 책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들의 모임'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의 이사장을 지냈던 분(재임기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워싱턴 회의’를 앞두고 만세 시위를 이끈 양일석 선생(애족장),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일본의 천황제와 식민 통치를 정면 비판한 민병구 선생(건국포장),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 옥중 순국한 최인규 선생(애족장) 등 67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 양일석 선생은 1921년 11월, 전남 목포에서 사립 영흥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축소 관련 국제회의인 ‘워싱턴 회의’가 열리자, 한국 독립 문제의 상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10월을 선고받았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은 평소 소신’이라고 당당히 밝혀 한인 청년의 넘치는 기개와 독립운동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민병구 선생은 1933년 부산에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총독부의 민족 차별적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다 무기정학을 받았고, 1939년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여우회’) 활동으로 체포되는 등 식민지하의 억압적 교육 환경 속에서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최인규 선생은 1940년, 강원 삼척군에서 천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