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생강나무의 꽃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고 겨우내 잠들었던 진달래도 두툼한 꽃망울을 살찌우고 있습니다. 어느 꽃이든 피어있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이지요. 동물은 생식 기관을 감추고 있지만, 식물은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유전인자를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감추어둔 것이라면 식물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후손을 남길 수 있기에 겉으로,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식물은 왜 꽃을 피울까요? 그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고 후세에 형질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벌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도록 향기나 색, 꿀이나 꽃가루를 쓰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꽃을 보며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벌도 나비도 아닌 사람입니다. 꽃은 사람을 위하여 봉오리를 피워 올린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꽃은 그냥 꽃이고 하나의 사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으므로 아름답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봄은 훈풍으로 다가와 꽃으로 환생하여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봄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곳은 아마도 섬진강일 겁니다. 그곳엔 매화가 지천으로 있거든요. 섬진강의 섬(蟾)은 두꺼비 섬자 입니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섬진강에는 매화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 방문에 꽃봉오리만 맺혀있어 화려한 꽃은 볼 수 없었지만 매화로를 중심으로 잘 가꾸어진 10만 그루가 넘는 매실나무의 군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굳이 매화마을이 아니어도 섬진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길을 따라 흐드러진 매화의 향연이 일주일의 환상적인 한정판 전시회여서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도 좋지만, 6월 초 청매실로 농가의 수입원이 되는 매화나무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참 좋은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조금 더 가면 화개장터가 나옵니다. 작은 장터지만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곳인데 그 경쾌한 리듬도 좋지만, 골이 깊은 전라도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 전한 시대에 유안(劉安)이 펴낸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지식이 총망라되어있는 책입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乞火 不若取燧 (걸화 불약취수)> "불을 구걸하는 것은 부싯돌을 취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 속담의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은 방법을 가르쳐라."란 말씀과 상통하는 말이지요.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밥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금전적으로 부유한 집의 자녀 가운데 제대로 된 자녀가 드믑니다. 의존적 상속인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재벌들은 2세를 혹독하게 교육하기도 합니다. 한때 대우기업을 이끌었던 김우중 회장의 아들은 미국 유학 시절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때 김우중 회장이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좀 더 좋은 차를 사 줄걸…." 요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일자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청년의 꿈을 실현해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는 향년 87살까지 가난한 자의 친구로 평생을 몸 바쳤던 테레사 수녀의 본명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다친 아이들의 상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 마을 주민이 묻지요.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말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사람의 눈은 앞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아래보다는 위를 쳐다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가지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 못해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머리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 "만족함을 알아 늘 만족하면 평생토록 욕됨이 없고 그침을 알아 늘 알맞게 그치면 평생 치욕이 없을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행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농사는 사람이 준비하지만, 하늘이 짓습니다. 물론 스마트팜을 비롯한 인공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식물의 특성에 맞게 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비와 은혜로운 햇살의 영향을 받습니다. 곧 농사는 혼자 짓는 것 같지만 모든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하였을 때 풍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논어》의 옹야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해석하면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소통이란 기술과 기교가 아니라 진실과 진정성입니다. 살아가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안에 낀 티끌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감추고 남의 잘못과 허물은 들추어내기를 좋아합니다. 남을 평가하는 데 앞장서지만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바른 논조로 바르게 써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그 중심에는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홀로서기도 중요하지만, 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의 제자는 3,000명을 헤아리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안회였습니다. 그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지요. 하루는 안회가 시장에 들렀는데 포목점 앞에서 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손님은 3x8은 23인데 당신이 왜 24전(錢)을 요구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안회는 이 말을 듣고 “3x8은 24입니다. 당신이 잘못 계산한 겁니다.”라고 말했지요. 손님은 주변에서 가장 똑똑한 공자님께 판단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기를 걸지요. 손님이 지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고 안회가 지면 관(冠)을 내놓으라고 말이지요. 공자는 말을 다 듣고 나서 안회에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주거라" 안회는 스승인 공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뒤에 공자는 이야기하지요.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 내가 ‘3x8=23’이 맞는다고 하면 너는 그저 관하나 내어주면 그뿐이지만 만약에 ‘3x8=24’가 맞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관이 중요하냐, 사람 목숨이 중요하냐?“ 공자의 인본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학자ㆍ정치가ㆍ웅변가로서 뛰어난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재화만사성(財貨萬事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비틀린 표현이긴 한데 “돈이 있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지요.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도 비슷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값어치로 알고, 신(神)처럼 숭배하기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값어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꼭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돈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요. 돈을 한자로 전(錢)이라고 씁니다. 글자를 파자하면 ‘金(쇠 금)’과 ‘戈(창 과)’가 두 개 나옵니다. 곧 쇠붙이로 만들어진 것(돈)인데 이것을 두고 서로 창을 맞대고 싸우는 형국의 글자지요. 돈에는 선악이나 미추의 개념이 들어있지 않지만, 그것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다툼과 전쟁으로 비화하는 예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불이익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은 돈으로 보상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권위와 존엄성이 돈으로 측정되는 세상이 되면서 배금주의(拜金主義, 돈을 숭배하는 사상)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첫 금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호인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로서 외로운 방랑의 삶을 의미하고 또 다른 호인 청한자(淸寒子)는 맑고도 추운 사내, 벽산청은(碧山淸隱)은 푸른 산에 맑게 숨어 산다, 췌세옹(贅世翁)은 세상에 혹 덩어리일 뿐인 늙은이라는 뜻이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거기에 실린 5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남염부주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덕망 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모두 세조를 두고 비판한 내용이라고 여겨지기에 금서로 된 것이지요. 원주에 가면 치악산 자락에 운곡(耘谷) 원천석의 무덤이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은 이성계의 편에 서지 않고 멸망해버린 고려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친히 치악산 자락까지 와서 출사를 권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은 그였지요. 그는 고려 신하의 시각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미국 역사에서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이 된 콜린 파월이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뉴욕 빈민가 출신으로 몹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어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다른 인부들과 함께 도랑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지요. 그 옆에서 한 사람은 묵묵히 열심히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그 공장을 찾았을 때 불평했던 사람은 여전히 삽에 몸을 기댄 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삽에 기댄 채 불평만 하던 사람은 원인을 모르는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태도는 상황을 이깁니다. 우리가 운명을 고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안팎의 사건에 대한 반응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이고 감사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틀(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린 스스로 믿는 대로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태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래전에 인적이 드문 섬 장고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걸어서 남북으로 10분 동서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작은 섬이었지요. 섬엔 분교 하나, 우물 하나, 해수욕장 하나, 갯벌 하나, 염전 하나, 교회 하나….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으로 바다는 늘 생소했고, 염전을 가까이 본다는 것도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염전은 바닷물을 그냥 퍼 올려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일기를 보아 눈비를 걱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증발 정도에 따라서 물꼬를 관리하고 소금 결정체가 생기면 넉가래로 거둬들여야 하는 땀과의 교환법칙이 성립되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금은 모든 맛의 근원입니다. 뜨거운 햇볕과 해풍을 견디며 굵은 소금으로 익어가는 것이 향기롭지요.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영롱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염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수렵 위주의 생활을 하던 때는 소금은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동물 고기에는 염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금을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