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동해시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입구에는 계곡 옆으로 데크길이 놓여있어 물소리를 들으며 삼화사로 갈 수 있다. 무릉계곡으로 잘 알려진 삼화사 입구의 계곡에는 '무릉계곡 캠핑장'도 있는데 이곳의 데크길을 이용하다보면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데크길을 만들며 보호한 소나무들의 모습이다. 소나무가 먼저 있었고 데크길을 나중에 만든 것이므로 공사의 편리성을 고려한다면 그깟(?) 소나무쯤 베어버리고 데크길을 만들었을 법도 한데 이곳은 다르다. 데크길 가운데 그대로 살려둔 소나무 모습을 보면서 데크 작업을 한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이 느껴져 훈훈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종 시설물을 만든다면 삼화사에 이르는 데크길과 같은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삼화사에서 봉행하기로한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삼화사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 를 보러 갔는데 (10월 15일~17일 예정) 우천예보로 10월 22일~24일로 연기되었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지만 내려 오는 길에 만난 데크길의 '소나무 보존' 모습이 아름다워 흐믓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서울 봉은사에서는 지난 11일 저녁 산사음악회에 이어 13일과 14일 대웅전 앞 특설무대 등에서 전통방식으로 봉행되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봉행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52호인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살아있는 동안 공덕을 미리 닦아 사후 고통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왕생하길 발원하는 대표적 불교의식의 하나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일정기간 머물다 소멸된다. 붓다는 일체존재의 법성은 평등하다고 가르치지만 깨닫지 못한 존재들은 평등한 자성의 본질을 저버리고 각자의 안목과 습관에 따라 살아간다. 이러한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오늘의 모습은 어제 지은 업이요, 내일의 모습은 오늘 짓는 업의 결과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과법칙이라하고 이 순환을 윤회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사바세계, 감인(堪忍)세계, 고해(苦海)라고 한다. 감인(堪忍)세계란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세계요, 고해란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일컫는다. 부처는 이처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해탈 열반의 세계로 이르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의 견고한 아집을 깨기 어렵다. 이에 대승불교 시대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전통건축문화는 돌과 나무 그리고 흙으로 이루어져있다. 건축물의 주 재료는 건물의 구조적 형태를 이루는 나무이지만, 이와 더불어 돌과 흙을 보조재로 사용하였다. 돌은 흙과 직접 닿는 부분에 쓰여져 기둥인 나무가 흙과 직접 닿지 않도록 하여 기둥뿌리가 썩지 않게 하는 역할로 사용하였고, 흙은 물을 넣어 비벼서 방바닥을 채워, 바닥을 평평하게 하거나, 기둥의 나무와 나무사이를 칸으로 나누어 막아 외부와 구분하고, 방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흙은 토기그릇을 만들 듯 일정한 모양으로 틀에 채워 다져 모양을 만들어 말린 뒤, 가마속에 넣어 고온의 불에 구워서 강도를 높여 기와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기와는 돌처럼 굳어져 빗물이 지붕아래로 스며들지 않게 지붕 위에 겹쳐 이어서, 비바람이 들이쳐도 지붕 위에 떨어진 빗물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함으로써 나무로 된 건축물을 보호하였다. 지붕 위에 얹은 기와가 깨지면 그집은 곧 빗물에 나무가 썩어서 주저앉게 된다. 흙을 빚어 만든 기와는 1,100℃가 넘는 고온에 구워서 만든 것을 사용하는데 1,100℃이하의 온도로 기와를 구우면 기와가 물기를 흡수하게 되어 쉽게 깨짐으로 지붕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바닷가에는 언덕에는 바위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명승지 하조대가 있다.(명승 제68호) 그 바로 앞에는 하얀모래밭이 아름다운 하조대해수욕장이 있다. 하조대는 화강암바위와 바위틈에 자라는 휘어진 소나무를 볼 수 있는 좁은 바위에 지어진 정자를 말한다. 하조대는 조선초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태종 말년에 낙향하여 휴양하던 곳으로, 하륜과 조준의 성씨를 따서 하조대(河趙臺)로 이름을 붙였다. 하륜과 조준은 조선초 국가의 헌법인 <경제육전>을 함께 편찬하기도 하였다. 하조대해수욕장은 하얀모래밭이 길게 깔려있는 바닷가로 여름이면 많은 피석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며, 요즈음에는 파도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하조대해수욕장 앞에는 오랜세월 파도와 싸우면서 살아남은 펑퍼짐한 바위가 놓여있는데 해수욕장 풍경치고는 특이한 모습이다. 하조대가 있는 주변은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있는 군부대와 유격훈련장이 있어 '아름다운 해수욕장' 만을 즐기기에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하다. 언제쯤 남과 북이 통일되어 각 지역에 산재한 아름다운 명승 고적을 아무런 제한없이 두루 탐방할 수 있을런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목포 달성사는 목포항과 일제강점기 번성하던 옛시가지 옆에 있는 목포 유일의 산인 유달산의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목포는 개항과 더불어 서양문물이 들어옴과 동시에 서양의 종교가 많이 전파되어서인지 불교신자들이 많지 않다. 또 목포는 개항과 함께 발달한 도시인 때문에 옛 고찰도 없었다. 이런 목포에 달성사는 격동의 구한말이 지나고 일제강점기 초창기인 1913년 해남의 대흥사에 있던 노대련 스님이 불심있는 목포지역의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창건한 사찰이다. 유달산은 비록 산이 높거나, 골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문을 연 항구에 인접한 산으로, 가파른 남쪽의 중턱에 그나마 어렵게 터를 다듬어 자리하였기에, 평지의 사찰과 같이 넓은 경내를 갖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험한 바위산의 산세를 잘 살핀 뒤 그중에서 적당한 터를 택하여, 바위를 깨내고, 골은 메꾸어 터를 잡고, 이도 모자라 주변의 돌들을 모아 축대를 쌓아 집터와 마당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만든 절이라, 지금처럼 유달산을 돌수 있는 찻길이 새롭게 만들어진 오늘에도, 찻길에서 절마당까지는 108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야만 오를 수 있다. 유달산은 전체가 바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전라남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목포는 바다와 육지를 잇는 항구도시다.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려면 거쳐야하고, 바다에서 육지로 가기 위해서도 거쳐야 하는 것이 항구이지만 목포는 먼 옛날부터 항구도시였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하여 항구도시로 개발되었다. 옛날 우리선조들이 바다로 나갈 때 타던 배들은 배의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이런 배들은 바닷가나 강가의 평평한 땅위에 내려앉을 수 있는 배였기에, 현재의 배들과는 배의 모양이 달랐다. 평저선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는 항상 물이 차있는 항구가 아니라, 모래나 뻘처럼 땅이 있는 곳으로 배들은 밀물에 들어와 내려앉아 사람과 물건을 내렸다가,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 사람과 물건을 태우고 밀물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 한국의 전통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개화기를 거쳐서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이래 한국의 평저선이 차츰 사라지고 서양의 배들이 들어오면서 배의 바닥이 뾰족한 배는 늘 물이 차있는 곳에 접안할 수있는 시설을 갖춘 항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항구는 해안가라도 배의 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 수심이 깊은 곳이어야 했기에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한반도에 새로운 항구들을 만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목포에서 승용차를 배에 싣고 하의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은 멀었다. 목포를 출발한 배가 중간에 장산도에서 정박하고 다시 출발해서인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김대중(1924~2009) 대통령이 태어난 신안군의 작은 섬 하의도로 가는 길, 선창가에 서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달리는 바다를 응시해본다. 지금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승용차로 쉬지 않고 달려 5시간, 다시 목포에서 배를 싣고 2시간, 신의도(신의도로 가서 승용차로 가는 방법과 직접 하의도로 가는 배가 있지만 신의도 보다 드물다)에서 다시 승용차로 삽십여분 달려야 갈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 오지라면 오지다. 신안군의 어지간한 섬에는 목포와 연륙교를 통해 갈 수 있지만 하의도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배편밖에 없다. (신의도와 하의도는 연륙교로 건널 수 있지만 신의도 역시 목포에서 2시간 배로 가야함) 하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소규모 염전이 펼쳐져 있었으며 몇몇 염전은 폐염전처럼 보였다. 그런 오지에서 김대중 (제15대대통령, 1999~2003) 대통령은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에서 중학교 까지 마친 김 대통령은 목포로 나와 1943년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다. 지금보다 더 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물이 있는 습지에 잘 자라는 물봉선화(다른 이름 물봉선), 꽃은 8~9월에 붉은자주색으로 피어난다. 가지의 윗부분에 여러개의 꽃봉우리가 맺혀 작은꽃자루와 꽃대가 자라서 꽃을 피운다. 꽃의 크기는 3cm 정도 되는데 밑부분에 작은 포가 있으며,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3개씩이다. 줄기와 잎은 봉선화와 다르지만, 꽃의 모양이 봉선화와 비슷하다. 꽃의 색깔은 붉은자주색이 대부분이나, 때로는 흰꽃도 있다. 흰꽃이 피는 것은 흰물봉선이라고 부른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는 우뚝 솟은 산방산이 있고, 산방산에서 남쪽으로 해안가에는 바다로 불쑥 내민 능선이 마치 꿈틀대는 용이 바다를 향해 들어가려는 듯한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이 바다에 면한 곳인 용머리해안과 그 옆으로 황우치해변이 있다. 용머리해안은 용암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는 절경으로 평가되어 제주도에서도 중요한 지질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이 해안가는 80만년전 지하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흘러내려 해안가에서 멈춘 것으로 밀물이 빠지면 용머리처럼 솟아오른 해안가를 돌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관찰할 수 있다. 반면 밀물 때는 파도에 휩쓸릴 수 있는 위험이 있어 해안 출입이 금지된다. 기자가 찾은 날은 때가 밀물 때인지라 해안가를 돌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이곳에는 조선 효종4년(1653) 네델란드 사람 하멜이 선원 64명과 함께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표류하여 가까스로 이곳에 당도하였다. 그들은 난파당한 신세로 28명은 익사하고 36명은 살아남았는데, 배가 파손되어 결국 조선 관원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양인을 처음 보게된 조선사람들은 그들이 참으로 별난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들은 조선 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곤드레는 고려엉겅퀴의 다른 이름이다. 다른 엉겅퀴들은 식용과 약용으로 많이 쓰지만, 곤드레는 식용으로만 쓰인다. 곤드레는 잎과 줄기를 데쳐서 나물로 묻혀서 먹거나 국거리 볶음으로도 요리하여 먹는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는 강원도 산골사람들이 산과 들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곤드레를 꺾어서 곡식이 부족한 빈궁기에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하여 많이 먹었다. 그런데 곤드레는 주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지역 사람들은 잘 몰랐다. 곤드레는 강원도 일대에서 많이 나는 야생초로 강원도만의 특산나물로 다른 지역에서는 잘 몰라 강원도에 가면 특산나물로 한번은 꼭 먹어야 할 귀한 나물이 되었다. 말린 곤드레나물을 쌀과 함께 넣어 밥을 짓고, 그 밥을 비벼먹으면 곤드레나물밥이 된다. 곤드레는 봄에 싹을 틔워서 5~6월까지는 잎과 줄기가 연하여 따다 데친후 말려서 먹으면 오래토록 즐겨먹을 수 있다. 7월부터는 곤드레가 자라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키가 자라며 그 높이는 1.0m에 이르는데 잎은 좁은 타원형으로 가장자리는 뾰족해진다. 잎의 끝은 가시같은 작은 털이 돋아난다. 그리고 9월에 되면 가지의 끝마다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은 엉겅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