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 만경창파에 실컷 배 띄워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가을’ 가운데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이 시를 지은 것은 64살 되던 1651년(효종2) 9월로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에서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단정하여 마음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다. 고산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에서 해남 고택으로 달렸다가 다시 보길도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아 완도 화흥포항에 닿았다. 이곳에서 노화도행 배를 타고 동천항에서 내려 배에 실었던 차를 타고 다시 보길도로 내달았다. 교통이 좋아진 지금도 전혀 쉽지 않은 땅끝마을 보길도(甫吉島)에서 고산은 여생을 마쳤다. 초가을이지만 여전한 무더위 속에 세연정으로 가기 위해 원림(原林)을 걷는다. 가뭄이 들어 원림 속 계곡물은 말라 있었고 숲속 늦매미 울음소리가 더 무덥게 느껴졌다. 평일에 찾아서인지 세연정에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고즈넉한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다는 기쁨에 시선을 연못쪽으로 돌리니 부용동팔경(芙蓉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한가위 전전날 오후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한가위 준비를 하던 주부(主婦)나 새로운 직종인 주부(廚夫,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조금이라도 식혀주었으니 말이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는 빨리 온 올해 한가위는 30도가 넘는 불볕 무더위로 하늘만 처다보다가 아침 기온이 내려가서 그나마 한가위 느낌이라도 가지게 되었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도종환 '가을 사랑' 닷새라는 연휴가 이어지면서 고향을 찾는 차량도 다소 분산돼 예전처럼 아주 심한 고생을 하지 않았고 한가위 전날 귀성전쟁보다도 귀경전쟁으로 고속도로가 크게 막힌 것을 보면 연휴 분산효과는 확실했다. 아마도 그 전날 미리 고향을 갔다가 대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이반 한가위는 고향집에서 보낸 분들이나 도시로 돌아온 분들이나 한가위를 즐기는 방법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어디서건 흩어진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지난 1월 30일부터 내후년(2026) 2월 1일까지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에서는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 상설전시를 열고 있다. ‘몬순으로 열린 세계’는 새롭게 개편된 ACC 아시아문화박물관 상설전시실1에서 펼쳐지는 첫 상설전시로 ‘몬순’은 거대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된 대륙풍과 인도양 해풍 사이의 온도 차가 만들어내는 계절풍을 말한다. 흔히 실크로드하면 육로를 떠올리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몬순을 따라 전개된 동남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에서의 교역과 문화교류, 항구도시를 오간 이들이 만들어낸 고유한 문화와 예술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17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네덜란드 델프트 헤리티지와 협약을 통해 기증받은 ‘누산타라 수집품’ 가운데 400여 점의 아시아 유물이 공개됐다. 화려한 그림과 조각,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금속공예품, 열대의 무늬를 품은 옷과 직물 공예, 자연에서 채득한 라탄으로 만든 목공예 등 동남아시아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그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신화와 신앙, 집과 옷, 이색적인 일상용품을 이 전시를 통해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지난 4월 30일부터 내년 3월 9일까지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로. ‘서울식물원’에서는 기획전시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를 열고 있다. 서울식물원은 식물문화에 대한 사유와 생태 감수성 공유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 전시를 열어 왔다. 2024년에는 기존의 전시 공간(식물문화센터 프로젝트홀2, 마곡문화관)과 더불어 온실과 주제원까지 확장하여, 네 곳의 장소에서 네 가지 색(色)의 작품을 담아낸 기획전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를 연다. 기획전시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전시 공간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공간과 조화하며, 자연을 더불어 지금을 이루는 존재들 간에 만들어지는 흐름결, 곧 리듬에 대해 상기해 보는 기회를 만들고자 마련한 전시다. 전시의 부제인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의 서신으로 엮인 저서 《식물의 사유(Through Vegetal Being)》 가운데 제14장의 제목에서 일부를 가져온 것으로, 인간 외의 존재들을 인간 주체의 기능적 대상이나 생산성을 위한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모든 업무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하는 문화는 아직 남아있다. 인터넷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열람한 뒤 인쇄와 서명을 한 다음, 스캔본을 전송하는 불필요한 작업을 한다. 전자서명이 아직 일상화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자서명의 영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이제 웬만한 건 전자서명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전자서명의 등장과 전자서명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공공 업무를 하다 보면 서면 동의를 필수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은 재건축ㆍ재개발 등 도시 정비를 진행할 때 개발 지역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는 반드시 서면으로만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전자서명과 전자문서 등을 통한 동의를 허용했다. 이번에 전자서명으로 허용된 것은 '도시정비 총회 전자적 개최, 현장 출석·투표' 등 10건이다. 도시정비 전용 전자서명 서비스의 경우 토지 등 소유자 지장 날인을 전자서명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전자적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투입 인력과 비용이 절감되고, 동의서 작성 등 행정절차 소요 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전자서명은 전자문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 그림 이무성 작가(202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소 선생과 교분을 나누었던 지인 및 제자들의 추억담 가운데서 구희서, 김매자, 김은희 등이 보내온 내용 일부를 소개하였다. 구희서의 글에서는 “무보(舞譜)에 의해 재현된 궁중무용은 순서는 찾을 수 있지만, 춤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나 멋은 되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생의 존재 값어치”를 말했고, 김매자는 「창무회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스승님」이 바로 김천흥 선생이었다고 전제하면서 1975년 서울(명동극장)에서 창작공연을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외면했으나, 선생님만은 격려해 주셨던 점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김은희는 1997년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 첫 학기 때, <정농악회(正農樂會)>의 초청공연에서 홍보와 통역을 맡으면서 선생과 인연이 되었다는 점, 당시의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선생의 미소와 식사 전, 조물주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다. 1997년도 하와이 주립대에서 한국 <정농악회(正農樂會)>의 초청 공연이 이루어졌는데, 이 단체는 어떻게 결성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심소 선생의 역할은 어떠했는가? 하는 이야기로 이어가 본다. 우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2025년 미래 무형유산 발굴ㆍ육성 사업」 대상으로 ‘충주 상여제작과 상장례 문화’(충북 충주)와 ‘홍어 식문화 기록화’(전남 나주) 등 모두 25개의 프로그램을 뽑았디. 「미래 무형유산 발굴ㆍ육성 사업」은 지역의 비지정 무형유산을 뽑아 대표 문화자원으로 지원ㆍ육성하는 사업이다. 지자체 공모를 통해 지원 대상 프로그램을 뽑으며, 선정된 프로그램별로 최대 1억 원(국비 50%, 지방비 50%)까지 지원해 자율적인 전승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 성과에 따라 길게는 3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번 공모에는 모두 12개 시ㆍ도의 54개 프로그램이 접수되었으며, 사업 타당성과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 등에 대한 관계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25개가 뽑혔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 마을 단위의 상여ㆍ상엿집 등 상장례 의식을 학술대회 등을 통해 심화 연구하는 ‘충주 상여제작과 상장례 문화’(충북 충주) ▲ 삭힌 홍어 식문화의 값어치를 구술 기록 등으로 탐구하는 ‘홍어 식문화 기록화’(전남 나주) ▲ 괴산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지역민의 인지체계와 전통마을 입지 관련 특성을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반짝 매장(팝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난 8월 6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천경자 탄생 100돌 기림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 천경자(千鏡子, 1924~2015)는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양식과 행보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채색을 고수하면서도 개성적인 화법을 창출한 작가는 1998년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소중히 보관해 왔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천경자 컬렉션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 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 가운데 작가가 직접 골라 기증한 작품들로, 당시 ‘여행풍물화’로 분류되었던 기행(紀行) 회화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진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기행 회화를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의 제목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는 작가가 1986년 저술한 여행 수필의 제목으로, 한곳에 머물지 않고 경계 없이 이동하는 ‘바람’이라는 소재를 통해 심리적, 물리적, 지리적,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난 6월 4일부터 내년 5월 5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는 신미경 작가의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전이 열리고 있다.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은 비누를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조각가 신미경이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의 주제인 ‘천사’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종교적 표상이자, 예술적, 문학적 상상을 통해 우리의 인식 속에 익숙하게 자리하게 된 상징적인 존재다. 작가는 엔젤이라는 이름의 향을 우연히 접하면서 천사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에 있는 대상’으로서 천사의 모습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신미경은 이번 전시에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는 천사가 가진 의미에 주목한다. 그가 표현하는 천사는 천상과 지상,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영역에 있는 존재로서 비누의 물질적 속성을 통해 은유적으로 제시된다. 작가가 30여 년 동안 조각의 재료로 사용한 ‘비누’는 투명함과 불투명함을 오가는 물성뿐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성질,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