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2026년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힌샘 선생 태어나신 150돌이고, 1926년 ‘가갸날’ 선포로 시작된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한 세기 전 조선어학회 선열들이 나라 잃은 어둠 속에서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곧 겨레를 지키는 길임을 선언했다면, 그 정신을 광복 이후 오늘까지 온몸으로 이어온 이가 바로 이대로 님이다. 한글운동 판에서 그를 가리켜 ‘한글운동계의 대통령’이라 부르는 데 토를 다는 이가 없다. 1960년대 대학생 국어운동의 깃발을 올린 이래 반세기 넘게 국어기본법 제정, 공문서 한글전용,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우리말 땅이름ㆍ회사이름 지키기 등 굵직한 싸움의 맨 앞자리에 늘 그가 있었다. 그가 2008년에 펴낸 《우리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배달말 힘 기르기의 어제와 오늘》(지식산업사)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우리말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한 흐름으로 꿰어낸 역작이다.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아 이 책을 다시 펼쳐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책이 짚어낸 ‘말글 사대주의’의 병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어 간판과 알파벳 회사 이름으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명저 다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무덤에서 편지가 나온다. 죽은 남편의 가슴 위에 덮인 아내의 글, 딸이 차마 태우지 못하고 품고 간 어머니의 하소연, 변방의 군관이 아내에게 부친 분과 바늘. 서예가이자 동양미학 박사인 산내 박정숙 씨는 조선시대 한글편지 150여 건을 4년에 걸쳐 《월간서예》에 연재한 끝에 《조선의 한글편지》로 묶어냈다. 글씨의 아름다움을 좇다가 사람의 일생과 마주쳤다는 그에게 다섯 가지를 물었다. 하나. 한문 서예가 주류인 서단에서 왜 하필 한글편지에 눈을 두셨습니까? “시작은 붓끝이었습니다. 2003년 봄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전에서 호연재 안동 김씨의 편지글을 임서(臨書)하게 되었지요. 글씨를 따라 쓰다 보니 자연히 이 글씨를 쓴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편지를 썼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내력과 생애를 찾아 읽는데, 어릴 적 역사소설에서 만났던 주인공들을 눈앞에서 직접 만나는 듯한 감동이 오더군요. 그 뒤 2008년부터 3년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조선시대 한글서체 자전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료를 폭넓게 접하게 되어 본격적인 연구로 들어갔습니다. 2012년부터 4년 동안 《월간서예》에 '조선시대 한글 명필 열전'으로 연재한 것을 다듬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채식주의자》의 '제4의 시선'과 《흰》의 '흰걷는나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문장은 더 많이 읽혔다. 그러나 열 명의 독자는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장이 태어난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출판사 〈구름의시간〉 기획으로 2025년 여름 이어진 개별 문학 기행의 기록이 《한강 문학 기행》(구름의시간, '잇다' 시리즈 01)으로 묶였다. 《여수의 사랑》』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아홉 작품, 그리고 여수와 소제마을ㆍ돌산대교, 제주 송악산과 비자림, 강원도 산간, 미시령 옛길, 화계사, 광주,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수유리 옛집, 책방 '오늘'까지. 공동 저자이자 이 책의 기획과 발행ㆍ편집을 맡은 김원자 작가를 만나 여덟 가지를 물었다. - 이 책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 독서모임에서 장편 소설을 중심으로 한강 전작 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참여하게 된 것이 출발이었어요. 2025년 4월, '한강 읽기'의 마지막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마치고 제주로 문학 기행을 떠났지요. 그다음 출판사 〈구름의시간〉 기획으로 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7월 2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월인 콘퍼런스 2026'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소책자 《국보 월인천강지곡》이 행사 이후에도 잔잔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학술대회의 부속 자료로 만들어진 얇은 소책자(리플릿) 한 권이, 정작 본 행사 못지않은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 소책자가 눈길을 끈 까닭은 분명하다. 한글 7쪽, 영문 7쪽의 완전 대역 구성으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국보 한 종을 놓고 그 문헌적 내력부터 세계사적 의미, 세종의 한글 사랑, 전승의 곡절, 그리고 오늘날의 활용까지를 일곱 개의 마당으로 나눠 압축해 담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마당에, 외국인 참가자와 나라 밖 관계자에게 그대로 건넬 수 있는 영문 자료가 함께 묶였다는 점도 호평을 받았다. 하나의 달, 천 개의 강 첫째 마당은 제목 풀이에서 시작한다. "밝은 달빛 하나가 천 개의 강물에 비친다"라는 부제 아래, 부처의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비치는 것을 달빛에 견준 제목의 뜻을 풀어 놓았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이 1446년 아내 소헌왕후를 여의고 그 명복을 빌기 위해서 직접 지은 한글 찬불가로, 144
[우리문화신문=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잘못을 뉘우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책이 있다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땅을 짓밟은 일본인들이 손수 쓴, 90명의 회고 90편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역(逆)징비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징비록에서 ‘역징비록’으로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을 남겼습니다. ‘징비(懲毖)’란 《시경》의 “미리 징계하여 훗날의 근심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온 말입니다. 곧 자기 잘못까지 뼈에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라고 다짐한 반성의 기록이지요.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책이 있습니다. 침략한 쪽이, 반성은커녕 “우리가 조선을 잘 다스렸다”라며 스스로 칭찬한 책입니다. 반성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자화자찬이 들어선 셈이니, 저는 이 책을 뒤집힌 징비록, 곧 ‘역징비록’이라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유성룡의 징비록만큼이나 뼈아프게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조선 통치의 회고와 비판》은 우리가 지은 책이 아니라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학 박사] 두 권이 같은 날 나온 사연 2026년 8월 12일, 연세대학교 유현경 교수가 정년 퇴임식을 했다. 그 자리에 두 권의 책이 함께 놓였다. 하나는 저자가 홀로 쓴 학술 단행본 《한국어 주어의 통사론》(집문당)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 스물세 명이 글을 모은 《한국어 문법 연구의 교학과 상장》(유현경 편, 집문당)이다. 두 책이 나란히 나온 경위가 흥미롭다. 지은이의 머리말에 따르면 2025년 여름, 제자들이 정년 기념 논총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한 권으로 묶어 보자고 제안해 왔는데, 정작 저자는 그보다 앞선 2024년 초부터 이미 《한국어 주어의 통사론》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계획을 모른 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마음으로 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저자가 원고 일정을 늦추어 두 책을 함께 펴냈다. 우연이라기에는 상징적이다. 스승의 단독 저서와 제자들의 논총이 같은 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것은, 한 학문 공동체가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논총의 제목에 담긴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우는 가운데 스승과 제자가 함께 자란다—은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학 박사]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동안 주로 국어학의 눈으로 읽혀 왔다. 그런데 해례본은 '문자에 관한 책'이기 이전에 '문자로 쓰인 책'이다. 붓끝이 지나간 자리, 점과 선과 원의 짜임 그 자체가 연구 대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낯설고 외로운 길을 55년 넘게 홀로 걸어온 이가 있다. 서예가이자 서체연구가인 문곡(文谷) 박병천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다. 《한글궁체연구》(1983), 《한글판본체연구》(1999), 《한글서간체연구》(2007), 《한글서체학연구》(2014)로 이어져 온 그의 연구 여정은 2021년, 반포 575돌 한글날에 맞추어 펴낸 567쪽의 역저 《훈민정음 서체연구》(한글ㆍ·漢字)로 하나의 봉우리에 올랐다. 이 책에서 그는 해례본 한글문자의 제자원리를 서예학적으로 재해석하고, 해례본 한자 글씨의 주인공이 안평대군임을 실증적으로 밝혔으며, 역대 영인본의 오류와 정음편 낙장 복원의 새 개선안까지 제시했다. 국어학ㆍ서예학ㆍ디자인학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훈민정음 서체학'의 집대성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길에서 선생과 동행해 왔다. 충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세계는 한국 문화를 'K-컬처'라고 부른다. K-팝, 드라마, 영화,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BTS 아리랑'은 세계 음악 차트를 뒤흔들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전통 놀이를 글로벌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강남스타일'은 하나의 몸짓으로 전 세계를 연결했으며, 최근 애니메이션 'K-POP 데몬헌터스'는 음악과 서사가 결합한 통합형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 모든 시작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도서출판 '더 로드'를 통해 펴낸 신간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에서 글을 쓰게 된 문제의식을 이처럼 밝힌다. "K-컬처는 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현대 산업 시스템에서 답을 찾지만, 지은이 서 대표는 "K-컬처의 성공은 산업이 아니라 문화의 구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단언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풍물의 장단, 판소리의 서사, 탈춤의 참여성, 그리고 아리랑의 공감 구조가 오늘날 K-컬처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라고 설명한다. 풍물은 사
[우리문화신문=김슬옹 문학박사ㆍ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횡단보도에 선 사람들 / 그림자가 제 몸을 / 따라오지 않는다." 이임선 시인의 새 환경 시집 《탄소중립 너는 알고 있니(고래실)》는 이처럼 낯설고 서늘한 풍경으로 문을 연다. 정오의 폭염 아래 신체와 그림자가 분리되는 이 장면은 온대에서 아열대로 넘어가는 한반도의 기상학적 현실인 동시에, 극한 기후 속에서 인간의 몸과 정신이 풀려서 떨어지는 순간을 암시한다. 시인에게 도시는 더는 인간이 온전한 정신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시집은 문학적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날마다 날씨와 기후변화를 기록한 '일기'이자 '임상 보고서'에 가깝다. 심리상담사이자 치유노래 작사가로 활동해 온 시인은 상처받은 대지를 향해서는 극도로 치유적이면서, 인류를 향해서는 서늘할 만큼 윤리적인 시선을 던진다. ■ 열병 앓는 도시, 고장 난 계절의 시계 1부 '버려진 얼굴들'에서 자연은 순환하지 않고 정체되고 썩어간다. 생명의 원천이어야 할 햇빛은 「도시 아열대」에서 "독처럼 쏟아진다". 자외선 지수 상승과 오존층 파괴로 자연의 은혜가 위협으로 변질된 단면을, 시인은 도시인의 신체 감각으로 예리하게 포착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2차대전 뒤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하루빨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꿈을 이룬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 싱가포르, 대만 정도? 대한민국도 출발 조건은 다른 식민지 해방국가들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해방된 지 5년 만에 터진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면서, 이런 나라들 가운데서도 제일 꼴찌로 전락하였습니다. 오죽하면 1951년 10월 1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는 「War and Peace in Korea」라는 기사에서, “폐허가 된 한국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생겨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썼겠습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예측을 비웃기라 하듯이 1960년 말부터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들 나라들 가운데 꼴찌에서 선두로 도약했습니다. 게다가 군사독재를 끝내면서 민주화로 들어섰고, 윤석열 일당의 친위 쿠데타도 시민의 힘으로 진압하면서 민주화도 더욱 탄탄한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탈출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