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한 나라의 서울이 되려면 첫째 군사적으로 방어하기 편리한 곳, 둘째 강과 해상을 통하여 물자를 수송하기가 편리한 곳, 그리고 셋째는 사방으로 거리가 균등하여 교통이 편리한 곳인데 한양은 이 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양의 인문지리적 위치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역사적 사실들은 조선 초 한양천도의 여러 원인 중에서도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보다 더욱 중요한 요인들이 있었다. 태조가 한양 천도를 서둘렀던 까닭 또는 천도론의 배경은 다음 세 가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18세기에 나온 도성대지도 2-1. 한양 천도 과정 첫째는 새 왕조를 열려면 임금과 신하들 모두 심기일전하여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고려왕조의 서울이었던 송도는 그에 충성하던 무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어서 고려왕조에 대한 미련이 많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전부터 있어 오던 풍수도참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조에서도 일찍부터 송도의 기운이 다했기 때문에 무신난과 몽고전란 등의 환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이에 태조는 즉위와 함께 천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조선왕조를 열면서 생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1-1. 비틀즈만 있나? 조선엔 밀리언셀러 임방울이 있었다 ▲ 일제강점기 '쑥대머리'로 120만 장의 음반을 판 임방울 명창 예전엔 음반 백만 장을 판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십만 장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백십이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이야 집에 누구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한 대쯤은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새까맣고 넓은 SP라는 음반을 유성기라는 기기에 얹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음악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유성기는 부잣집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몇 천 대나 있었을까? 그런 그때 조선(한국)과 일본 그리고 만주에서 판소리 음반 120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 명창이 그다. 임방울 명창은 쑥대머리를 부르며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민족현실과 가난에 대한 한스러움을 춘향의 신세에 견주어 울분의 소리를 토해냈다. 목이 잡혔다 트였다 하기를 수십 번 가슴이 붓고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비를 거듭하여 비로소 제대로 소리하게 된 임방울은 외삼촌인 국창 김창환의 도움으로 25살에 서울로 올라와 첫무대에서 쑥대머리를 불러 선풍을 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