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필자가 매일 아침 올라가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꽃잔치다. 초봄처럼 잎이 없는 꽃들이 아니라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는 꽃이고, 그 가운데 대표가 아카시다. 꽃다리마다 층층이 꽃줄이 있고 그 줄마다 꽃들이 활짝 피어났는데, 우유빛 뽀얀 색깔만이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진한 향기에 길 가는 사람들의 취각이 마비되는 듯,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필자는 일 년 가운데 아카시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이때가 가장 싫다. 왜냐하면 냄새를 잘 구분 못 하는 취약(臭弱)이란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조리사 가운데 냄새를 잘 못 맡는 분이 있다는 것은 제법 알려졌지만, 필자도 이미 예전 파주 쪽에 살던 2000년 초 요맘때 출근길에 아카시 냄새를 맡니 못 맡니 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기에 새삼 겁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다 맡는 냄새를 제대로 못 맡으면서 냄새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발한 아카시 꽃을 보면서 예전처럼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정도 만발하면 벌들이 날갯짓하면서 이 맛있는 꽃의 꿀을 따야 할 터인데 그게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드디어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5년 동안의 평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들이 다르지만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여러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그것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부문에서의 기대였다. 법치와 공정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면에서 보면 몇 가지 걱정이 앞선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한 데서 보듯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공정한 분위기를 이끌고 가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도약을 이뤄내는 것이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대통령의 신념이자 포부이자 추진방향이라는 측면에서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취임식 행사에서부터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 취임사에서 문화발전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그동안 문화강국을 표방하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 이후 인수위원회 시기, 취임준비 시기를 거쳐 드디어 취임하는 날까지 이 새 정부 입에서 문화의 '문'자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앞으로 이 정부 아래서 문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문화전문가가 없었다고 하고 새로 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꽃잎이 경쟁을 벌이는 4월의 꽃잔치가 이제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나무들은 형형색색으로 화장했던 꽃잎들을 아래로 던져버리고 이젠 푸른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짐짓 시치미 떼며 서 있다. 이제는 꽃보다도 파릇파릇 생명의 고동과 숨결을 느껴야 하는 때라고 나무들이 말하는 듯하다. 오월이 아름다운 건 연초록 바람 때문이다. 남풍을 향해 서 있기만 해도 선뜻 꽃향기를 물어 오고 상큼한 강 내음을 한껏 쓸어온다. 어찌 그뿐이랴. 눈부시게 살랑대는 나뭇잎 사랑 이야기는 해 저물어 실컷 들어도 좋다. 바람소리 듬뿍 담아 곱게 핀 들장미 붉은 향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날 오월의 바람은 최고의 선물이다. ... 이남일, 오월의 바람 그래 5월인 것이야. 그냥 밖에서 푸른 하늘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향긋한 내음이 실려 오는 달, 운이 좋아서 4월 뒤에 줄을 서고는, 4월이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을 공짜로 이루어 받는 달, 호사스러운 꽃의 장막을 걷고 신선한 녹음이 시야를 물들이는 이 계절에 나는 문득 지나간 봄의 꽃잔치에서 묵묵히 뒷짐을 지고 뒷줄에 있던 꽃들을 생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567년 조선 왕국의 13대 임금 명종이 후사도 없이 세상을 뜨자 17살의 나이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선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늙은 몸을 이끌고 1568년 여름에 상경한 퇴계 이황은 정성을 다해 경연에 임하고 성왕(聖王)의 이치를 담은 <성학십도>를 지어 선조에게 올린 뒤 고향에 돌아가기를 간곡하게 청원한다. 그 이듬해인 1569년 음력 3월 4일 겨우 고향에 다녀오는 윤허를 받은 퇴계는 혹 임금의 마음이 바뀔 쌔라 다음날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의 발길을 서둘렀다. 열흘 만인 3월 13일에 퇴계는 충북 단양에 도착했다. 단양은 퇴계가 48살 때에 군수로 약 10달 재직하였던 곳이다. 퇴계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20여 년 전 백성들을 위해 힘을 쏟았던 때를 생각하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을 것이지만 따로 기록을 남긴 것은 없고, 다음날 14일에 죽령을 넘어 풍기로 간다. 죽령은 해발 696미터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문경의 조령(새재)와 함께 소백산맥을 넘어 서울과 영남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퇴계는 지금 죽령옛길로 불리는 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폭포가 있는 아름다운 이 길을 올라가 죽령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기 303년 4월 23일 지금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인 리다(Lydda)라는 작은 마을의 한복판에서 조지(George)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처형된다. 로마군인이기도 한 조지는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황제인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기독교인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붙잡혀서 신(神)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00년 가까이 지난 12세기부터 이 청년은 용감함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1350년에 영국의 조지3세는 영국사람도 아니고 영국에 와 본 적도 없는 이 청년이 용을 죽이고 미녀를 구한 전설을 살려 최고의 훈장인 가터대훈장을 만들어 수여하는 등 그의 인기를 이용해 기사도를 살리고 신하들의 충성을 북돋아 주었다. 그의 무덤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이후 사람들은 이날에 가슴에 붉은 장미를 꽂아 용감한 조지 성인을 기렸다. 특이하게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에서도 조지 수호성인을 기리는데, 조지 성인이 죽은 날이 되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이에 대해 책을 받는 남자는 장미꽃을 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7살의 나이에 임금이 된 선조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왔지만, 그 자신 이미 70을 바라보던 퇴계 이황(1501~1570)은 임금에게 훌륭한 왕이 되어 선정을 펼 기본 조건을 다 말씀드린 뒤에 거듭 사직을 호소하다가 이듬해인 선조 2년(1569년) 음력 3월 4일 마침내 돌아가라는 허락을 받는다. 퇴계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임금에게 사직을 고하고 곧바로 도성을 나와서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이튿날인 3월 5일에 지금의 금호동 근처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에 배 안에 많은 명사와 선비들이 함께했다. 그 가운데는 편지로 사단칠정론을 논하던 제자 기대승도 있었다. 정신적 스승을 보내는 기대승은 이런 시를 지어 작별을 아쉬워했다; 江漢滔滔萬古流 한강수 도도히 만고에 흐르는데 先生此去若爲留 선생의 이번 걸음 어찌하면 만류할꼬 沙邊拽纜遲徊處 백사장 가 닻줄 잡고 머뭇거리는 곳 不盡離膓萬斛愁 이별의 아픔에 만 섬의 시름 끝이 없어라 이에 선생이 기대승의 시의 운을 사용해서 답시를 짓는다. 列坐方舟盡勝流 배에 둘러앉은 사람 모두가 훌륭한 인물들 歸心終日爲牽留 돌아가려는 마음이 종일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문자를 배워도 제대로 못 배우면 유식한 척 한마디 하다가 창피를 당하기 일쑤인데 해마다 4월엔 늘 그랬다. 4월이 되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라는 말을 흉내를 내 은연중에 나도 그런 표현을 쓰곤 했는데, 막상 누군가가 "아 그러세요? 뭐가 잔인하다는 거지요?"라고 묻는 바람에 대답이 궁해 혼이 난 적이 있다. 이 표현이 영국의 시인 T.S.Eliot 란 사람이 쓴 <황무지>라나 뭐라나 하는 시 첫머리에 나온다는 것쯤은 나도 들은 바 있지만 사실 이 시는 번역된 것도, 원시도 전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왜 이 시인이 잔인하다는 표현을 썼는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짬을 내어 먼저 번역된 시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소설가 황순원 씨의 아들로 영문학자이신 황동규 님의 번역이 먼저 들어온다. 황 무 지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이 시가 엄청나게 길어서 다 보기는 그렇고 첫머리만을 보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지난해부터 그리 신경을 쓰게 만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니 허탈해진 국민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우리들의 관심을 끌 일들이 없어진 것 같다. 당선자가 청와대에 들어가니 마니 하는 문제로 시끄러워졌지만, 그거야 우리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며칠 전 화이트데이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이 문제도 연애하는 젊은이들 아니면 굳이 남과 여 사이에 누가 선물을 누구에게 하니 안 하니 하는 문제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달 3월은 같이 축하하거나 기념할 날이 이제는 없는 것 같다. 선거가 있던 날 투표를 하고 나서 심심하기도 해서 미국에 눈을 돌려보았더니 3월 9일 ‘무슨 무슨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7개가 있고 ‘무슨 무슨 주간’이라고 하는 것은 16개나 있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에서 3월 9일은 미트볼의 날(National Meatball Day)이고, 바비인형의 날(National Barbie Day)이고, 등록영양사의 날(National Registered Dietitian Nutritionist Day)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통령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후보 쪽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누가 되었든 간에 서로 상대방 후보의 나쁜 점, 잘못한 점만이 부각되는 바람에 상대방 후보와 진영에 대한 일종의 적대감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선거결과에 대해 서로 승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겠다. 과거 보아왔던 선거와 개표과정의 부정 여부, 재검표 하자는 주장이 없어진 점, 진 쪽이 졌지만, 진 것이 아니라며 미래를 거는 승복... 이런 것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번에 드러난 0.8%도 안 되는 두 후보에 대한 차이. 30만 명도 안 되는 이 차이로 한 나라 대통령이 바뀌고 그 나라의 노선이 달라지는가? 그래도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두 쪽 다 50%에 바짝 닿는 지지율이 아닌가? 참으로 묘한 법이자 묘한 논리로 대통령이 결정되는구나. 희한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서로가 상대진영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견해차를 인정하고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주지 않으면 서로가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되었기에 과거 말로만 하던 협치라는 개념을 추구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해가 바뀐 다음 아침 세수를 하면서 문득 거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갑자기 낯선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울 앞에 다가서니 나는 보이지 않고 세월을 잔뜩 덧칠하고 있는 백발노인이 나를 보고 서 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 '거울 속 낯익은 백발노인' / 도정기 저 사람이 나인가? 왜 머리가 거의 백발인가? 얼굴은 젊을 때의 윤기가 없이 푸석하고 까칠하고 목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는가? 자네 누구인가? 그 사람이 대답은 안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에 자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렇구나. 저게 내 얼굴이구나. 내 얼굴이 저렇게 변했고 내 머리털 색깔이 바뀌었구나. 머리숱도 엄청나게 줄어들어 군데군데 맨땅이 더 많이 보인다. 머리털이 가늘고 힘이 없어져 바람에 너무 잘 날린다. 눈가에도, 입가에도 주름이 보인다. 그래,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분명 나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생경하구나. 설을 쇠고 나니 나도 확실히 이른바 세는 나이로 7학년으로 들어갔구나. 며칠 전 길을 가면서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과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