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종묘제례악을 연주할 때 쓰이는 독특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축(祝)’이란 악기는 종묘제례악에서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종묘제례악을 끝낼 때 쓰는 ‘어(敔)’라는 악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축과 어 두 악기는 짝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악기는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와 축은 ‘방대’라는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므로 서서 연주하지요. ‘축’은 네모진 나무 상자 위판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무 방망이를 세워 상자 밑바닥을 내려쳐서 소리를 냅니다. 축은 양의 상징으로 동쪽에 자리 잡고, 겉면은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으로 칠하며 사면에는 산수화를 그립니다. 축을 치는 수직적인 동작은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어’는 나무를 엎드린 호랑이의 모습으로 깎아 만든 악기지요. 호랑이의 등에는 등줄기를 따라 꼬리 부분까지 27개 톱니를 길게 박아 놓았습니다. 둥근 대나무 끝을 아홉 가닥으로 쪼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는 꼬리 쪽으로 한번 훑어 내립니다. 이러기를 세 번 한 다음 박을 세 번 울려 음악을 끝내는 것이지요. 어는 서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개 흰 칠을 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넷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처서(處署)’입니다. 보름 전에 있었던 열셋째 절기 ‘입추(立秋)’가 가을에 드는 날이라는 뜻이었지만, 이후 말복이 오고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제 처서가 되어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들게 됩니다. "처서가 지나면 참외맛이 없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는 본격적으로 선선해집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벼가 여무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처서에 비가 내리는데 내일은 다시 활짝 개서 여물어가는 벼 이삭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되면 선비들은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립니다.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 포쇄(曝)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음건(陰乾) 곧 그늘에 말리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에 포쇄별관을 보내 실록을 포쇄하는 일이 중요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모레는 음력 7월 7일로 ‘칠석’입니다. 칠석은 목동 견우(牽牛)와 베 짜는 공주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날로 예부터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공부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은하수 양끝에 사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한 해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만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까마귀[오(烏)]와 까치[작(鵲)]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했지요.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리는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유난히 부슬비가 내린다는 말도 전하지요. 이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거나 우물을 퍼내 깨끗이 한 다음 시루떡을 놓고 식구들이 병 없이 오래 살 일과 집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 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이란 한시 일부입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말복이 아직 남아 불볕더위가 여전합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때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은 채 죽은 백성들의 주검이 나뒹굽니다. 그리고 그 죽은 백성은 지난겨울 맨발로 얼음을 뜨던 백성이었음을 그들은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음을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김창협은 숙종 때 대사성 등의 관직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미는 ‘단청(丹靑)’이 있습니다. 단청하는 주목적은 건물이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궁궐, 절, 서원 건축 등 공적이고 권위를 살려야 하는 건축물에 많이 쓰였습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선 나무에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게 하려는 것과 또 한국에서 건축재로 흔히 쓰이는 소나무의 균열이나 흠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대체로 30~40년 정도마다 다시 그리곤 하였지요. 단청의 종류에는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錦)단청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칠단청’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것으로 꾸밈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종묘와 남한산성 행궁 등에 쓰였지요. 또 ‘긋기단청’은 검은색인 먹과 흰색인 분을 복선으로 그어 마무리한 단청입니다. 직선으로 인해 훨씬 곧은 느낌이 나며, 가칠단청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는데 사당이나 부속건물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로단청’은 목재 끝부분에만 단청을 그리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합니다. 모로단청은 나무가 썩지 않게 하려는 목적 말고도 방화나 벽사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건물을 화려하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가 8년 전에 펴낸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 책에는 명재 윤중 선생도 있습니다. 선생은 가을걷이한 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며칠 동안 나락을 쌓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밤에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일부러 모른 체 했지요. 그것은 밤에 가져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인데 혹시 머슴들이 누가 가져갔는지 말하면 모른 체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부자가 양잠까지 손을 대면 가난한 사람이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다는 생각에서 자기 집안에서는 양잠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선생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윤증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당시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대립해 소론의 영수로 추앙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종과 숙종으로부터 지평, 호조 참의, 대사헌, 이조 판서,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등 20번이 넘게 관직을 제수받았지만, 그는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아 ‘백의정승(白衣政丞)’ 곧 관복을 입지 않은 정승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런 선생은 책력 앞머리에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목차 편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五六월 또약볕에 살을 찌는 한 더위로 뭇인간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덕이더니 오늘이 립추(立秋), 제 그러케 심하던 더위도 이제부터는 한거름 두거름 물러가게 되엇다. 언덕우 밤나무가지와 행길옆 느티나무위에선 가을을 노래하는 매암이 소래도 차(寒)가고 아침저녁 풀숲에는 이슬이 톡톡하게 나려 인제 먼 마을 아낙네의 옷 다듬는 소리도 들려올것이요. 삼가촌(三家村) 서당아해들의 글읽는 소리도 랑낭히 들려올 때다. (가운데 줄임) 오늘 아침쯤 그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젓는지 정히 궁금하다." 위는 동아일보 1938년 8월 9일 “지하의 궁음(窮陰)이 나와 염제(炎帝,무더위)를 쫓는다” 기사 일부인데 마지막 단락의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지는지 궁금하다”라는 말이 참 정겹습니다. 아직 불볕더위가 극성이지만,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이제 절기상으로는 가을철로 들어서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 절기로 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입추까지는 날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6월 20일 문화재청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습니다. 보물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입니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지요.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임금ㆍ왕비ㆍ상왕(上王)ㆍ왕대비ㆍ대왕대비 등에게 이름을 지어 올릴 때 만든 의례용 도장이며, 어책은 어보와 함께 내려지는 것으로 의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교명은 왕비ㆍ왕세자ㆍ왕세자빈ㆍ왕세제ㆍ왕세제빈ㆍ왕세손ㆍ왕세손빈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훈유문서(訓諭文書)로 그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며,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습니있다.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독특한 왕실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500여 년 동안 거행된 조선 왕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벽 위에서 종소리가 사람을 대신 부르니 / 통속에서 전하는 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네.” 위는 조선 후기 문인 김득련(金得鍊)이 쓴 한시집 《환구음초(環璆唫艸)》에 있는 내용으로 서구를 방문했다가 전화기를 보고 쓴 시입니다. 《환구음초》는 1896년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 중국ㆍ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돌아볼 때 참사관으로 따라간 역관 김득련(金得鍊)이 보고 들은 것을 쓴 책으로 ‘지구를 돌며 읊은 시’라는 뜻이 담겼지요. 이 책에는 “카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구천리를 가면서”, “뉴욕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입으로 형언할 수 없고 붓으로도 기술할 수 없다”, “뉴욕 전기박람회에 가서 보니 세상의 많은 물건이 모두 전기 기계로 만들어졌다. 관현은 저절로 연주되고, 차와 떡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은 오백 리 밖에 있는 큰 폭포의 소리를 끌어와 물그릇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민영환은 자결하기 9년 전 김득련, 윤치호 등 일행을 이끌고 일곱 달 동안 여덟 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7월 26일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는 지리산 노고단 일원에 자라는 한국 고유종인 백운산원추리, 둥근이질풀, 지리터리풀을 포함한 30여 종의 여름철 들꽃이 활짝 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노고단 꼭대기 부분에 활짝 핀 ‘기린초’도 소개되었지요. <다문다문> 블로그에는 “노란 병아리 같은 낮별들이 청신한 햇살을 쐬며 사각사각 소곤거리는 소리 자욱합니다, 꽃의 미소 눈이 부십니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어떤 블로그에는 “여름 산행길, 절벽이나 바위틈에서 수수한 노란색의 얼굴로 수줍게 다가온다.”라고 말하지요. ‘기린초’는 온 나라 산과 바닷가 양지바른 바위 겉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여기서 기린초처럼 잎이나 줄기가 두툼한 식물들을 일컬어 "다육(多肉) 식물"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가뭄에 강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광합성을 합니다. 잎 세포의 부피가 넓어 물을 저장하는 탱크 역할을 해 모래나 돌투성이의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고 있다가 낮에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을 해서 침실에 두면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고 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