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옥스퍼드 사전과 ‘쓰나미’ 사상 유례 없는 대지진의 재앙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지나간 지 열흘째를 맞는다. 신문방송에서는 “엄청난 물기둥을 몰고 온 쓰나미가 일본 동북지방을 싹 쓸어 갔다”고 대서특필했다. 이웃나라 일이지만 우리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일본을 돕자는 “성금 물결이 쓰나미처럼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라는 기사도 보인다. 3월에 때 아닌 구세군 자선냄비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지난 열흘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다. 일본인보다도 한국인들이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 같고 보기에 따라서는 우왕좌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 며칠 새 티브이와 신문에서 맞닥트리던 ‘쓰나미’란 말은 이제 너무도 귀에 익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말처럼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다. 피해도 크고 분위기도 뒤숭숭한 판국에 누가 ‘쓰나미’란 말을 쓰지 말고 ‘지진해일’이란 말을 쓰자하면 몰매 맞을 분위기다. 일부 신문이나 방송국 기자들은 애써 '쓰나미‘란 말을 피하고 ‘지진해일’이라고 쓰고 있지만 대세가 ‘쓰나미’인 분위기다. 이번 일본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인해 한국 어린이들까지 확실히 ‘쓰나미’란 말을 익혔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뒤 최고의 한글학자이셨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하여 비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나친 국수주의라는 것이었죠. 정말 그럴까요? 하지만, 조선시대 이미 ”날틀“이란 말이 쓰였음을 아는 이는 적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솜틀, 재봉틀처럼 기계를 ”틀“이라 불러왔지요. 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에는 “날틀” 곧 “비거(飛車)”가 활약했었다고 하지요.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에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날틀은 하늘을 나는 차를 말하며, 곧 비행기의 다른 말이라 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 문집 ≪여암전서≫와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이 '비거' 곧 날틀이 등장하지만 정확한 모양이나 어떤 쓰임새였는지는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요.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말도 많이 수입되었습니다. 이때 대부분 말들은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고, 지식인들은 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꿔보려는 생각은 안 하고 그대로 써버렸습니다. 그 까닭은 지식인들 대부분이 일본에 빌붙어
요즘 서울시내 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미국 뉴욕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온통 가게 간판과 홍보판이 영어 일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반가운 마음이 든 한글 홍보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 5678호선 역에서 만난 이야기 광 고“5678호선에는 뭔가 특별한 역 이름이 있다.”입니다. 홍보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과 글, 바로 우리말과 우리글입니다. 국어만큼 풍부한 어휘로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또 있을까요? 특히 한글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창제원리를 바탕으로 우리말이 가진 뜻을 충분히 나타내주는 과학적인 문자지요.”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애오개·굽은다리·돌곶이·버티고개·새절·독바위·연신내·마들·먹골·장승배기같은 토박이말 역 이름들을 소개합니다. 2008년 말부터 시작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스토리홍보’는 역사, 전동차, 화장실 등에 이야기 형식의 홍보물을 붙여 고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이번 특별한 역 이름 이야기도 ‘스토리홍보’ 중 하나라고 하지요. 이렇게 한글을 가꾸고 빛내는 일은 5678서울도시철도의 의무이기에 한글 역 이름을 알리고 이에 대한 시민 고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이번 스토리홍보
백범 김구 선생의 아내는 중국 땅에서 폐렴으로 고생하다가 삶을 마쳤습니다. 남편 백범은 그런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지켜주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백범은 아내가 입원한 병원이 일본 조계지(점령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임종조차 할 수가 없었지요. 장례식은 1924년 1월 4일 프랑스 조계 숭산로 경찰서 뒤쪽의 공동묘지에서 열렸습니다. 백범의 동지들은 최준례가 겪은 고난이야말로 나랏일에 공헌한 것이라며 의연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묘비까지 세워주었지요. 이때 세운 묘비는 한글학자 김두봉이 오로지 한글로만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단기 4222년 3월19일) 대한민국 ㅂ해 ㄱ달 죽음(대한민국 6년1월) 최준례 묻엄(무덤) 남편 김구 세움“이라고 썼습니다. 'ㄱ, ㄴ, ㄷ.......ㅈ, ㅊ'은 차례대로 '1, 2, 3,....9, 10'을 의미하기에 출생일은 단기 4222년(서기 1889년) 3월 19일이며, 사망일은 ‘대한민국 6년(원년은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곧 1924년 1월 1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비는 광복 직후 고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이 상하이에서 아내의 주검을 옮겨 올 때 함께 가져
세종임금 때 청백리 영의정으로 유명한 황희정승과 관련된 얘기는 참 많습니다. 거기엔 속담도 있는데 “황희 정승네 치마 하나 가지고 세 어이딸이 입듯”이 그것이지요. 황희가 얼마나 청빈했던지 황희의 아내와 두 딸이 치마가 없어 치마 하나를 번갈아 입고 손님 앞에 인사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인데 여기서 “어이딸”은 어미와 딸이란 말로 한자말 “모녀(母女)”와 같은 뜻의 말입니다. 바로 이 “어이딸”은 한자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모녀에게 안방을 내줬습니다. 지난 주 MBC뉴스에서 “AI, 한파 여파 어디까지‥계란 파동 우려”라는 제목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계란”은 “鷄卵”이라고 쓰는 한자말임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닭이 낳은 알"은 '달걀'입니다. '닭의 알→달긔알→달걀'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말이지요. 물론 계란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한문에 익숙했던 양반들이야 한자말이 더 편했을지 모르지만, 일반 백성은 토박이말 위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토박이말이 한자말에게 안방을 내준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바로 이 “달걀”도 “계란”에게 주인 자리를 내준
한자말에 “어부지리(漁夫之利)”가 있습니다. 이 말은 양 쪽이 다투는 틈을 타서 제삼자가 애쓰지 않고 이익을 가로 챌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어부지리”는 우리말로 바꿔 말할 수 있지요. 바로 “시앗 싸움에 요강장수”가 그것입니다. 시앗은 “남편의 첩”을 본처의 처지에서 하는 말입니다. 또 그렇게 된 상황을 “시앗보다”라고 하지요. 이때 본처와 시앗 사이에 싸움이 생겨 요강이 깨질 수도 있는데 이때에는 요강장수만 덕 본다는 뜻입니다. “돈 한 푼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심심하면 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위인이 급기야는 시앗까지 보았다.”라고 쓸 수 있습니다. 시앗이 들어간 우리말 속담을 보면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처같이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한다.”는 말입니다. 또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는 “시앗이 제 시앗을 더 못 본다.”는 말이지요. 그밖에 “시앗 죽은 눈물만큼”은 몹시 적은 것을 이릅니다. 이제 첩이란 말도 잘 쓸 일이 없지만 그런 한자말도 “시앗”이란 말로 바꿔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요일 일본이야기를 써주시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님이 지난 11월에 펴내신 ≪사쿠라 훈민정음, 인물과사상사≫ 2쇄가 나왔습니다. ≪사쿠라 훈민정음≫은 우리말 속에 숨겨진 일본말 찌꺼기를 말밑(어원)을 살펴 명쾌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이윤옥 소장님은 지난 30여 년간 일본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일상에서 우리들이 무분별하게 일본말 찌꺼기를 쓰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끝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힙니다. 책에는 간질·발작을 뜻하는 “땡깡부리다”를 자식들에게 무심코 쓰는 것을 지적합니다. 또 일제강점기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하려고 썼던 “서정쇄신”을 지금 정치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을 개탄하기도 하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책을 받은 사람이 책을 준 사람 이름 끝에다 “은혜롭게 주시기에 잘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쓴 혜존이라는 말을 일본식을 따라 ‘내 책을 잘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둔갑한 것을 꼬집습니다. 재일동포 2세이면서 고집스럽게 우리 토박이말로 시조를 쓰시는 재일본한국문인협회 김리박 회장님은 ≪사쿠라 훈민정음≫에 대해 "한꽃(이윤옥) 교수님께서 우리 말과 글을 참으로 잘 아시고 또 닛본(일본) 나라 말과 글, 얼
≪송남잡지(松南雜識)≫는 조선후기 학자 조재삼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은 국어학·역사학·철학·동물학·복식사·음악사 같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담고 있어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합니다. 하지만 조재삼에게도 한계가 있었던 듯 잘못된 기록도 종종 보입니다. 그 예 가운데 훈민정음 창제한 관한 것도 있지요. “살펴보건대, 세종이 병인년(1446) 측간(뒷간)에 갔다가 똥을 눈 다음 뒤처리를 할 때 쓰는 나무막대 곧 측주(厠籌)가 가로세로로 된 것을 보고 반절(反切,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위는 ≪송남잡지≫ 제3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 가운데 훈민정음을 1443년이 아닌 반포한 해인 1446년에 창제했다고 한 것과 나무막대를 보고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말한 것이지요. 현대 언어학자들은 한결같이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글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닿소리(자음)를 목구멍·혀·이·입술 같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다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려 11,172자까지 글자로 표현하여 세상 웬만한 소리는 거의 기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찌아찌아족 같은 글자 없는 겨레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들리는 바로는 일부 여행사 관광안내원은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세종큰임금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세종임금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또 위대한 성군이 태어난 곳 치고는 너무 초라한 표지석만 있을 뿐입니다. 이에 서울시는 세종대로 일대 47만㎡에 ‘한글 마루지(랜드마크)’로 만들어 ‘한글 문화관광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먼저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 옆에 위치한 세종로공원에 8, 868㎡규모 ‘한글 11, 172 마당’을 올 상반기 중 만듭니다. ‘한글 11, 172 마당’이란 한글자모 24자로 만들 수 있는 모두 11, 172 글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로, 세로 10cm×10cm 돌포장석에 11, 172명의 국민이 한자씩 써서 공원 바닥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 서울시는 ‘한글학회~주시경집터~사직로’를 잇는 총 길이 900m엔 주시경 시범길을 올해 만듭니다.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일제강점기 탄압에도 끊임없이 한글에 대한 연구와 보급을 하고 후진을 양성해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 시범길에는 픽토그램(상징화된 그림문자)을 활용한 길 표지판, 안내표지판과 한글 긴의자, 한글 관련 야외 전시와 각종 퍼
애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톡톡한 ‘기모바지’ 하나 입혀 놓으면 겨울 걱정 안 해도 되지요. 바지는 고무줄 바지가 편하더라고요. 기모바지는 조금 싼 것도 있던데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거라서 가격에 조금 신경써야합니다. 우리 딸은 4살인데 9호 입힙니다. -다음- 날씨가 추워지니까 엄마들이 아이들 옷에 신경을 쓰게 된다. 예전에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행여 추울세라 초가을만 들어서면 손수 스웨터 짜기에 바쁘셨던 기억이 새롭다. ‘기모바지’라는 말처럼 요즈음 부쩍 기모를 이용한 제품이 눈에 많이 띈다. 등산복에서부터 스타킹, 양말, 목도리 등 기모의 쓰임새가 날로 개발되고 있는 느낌이다. 표준국어사전에 보면 ‘기모 (起毛) :모직물이나 면직물의 표면을 긁어서 보풀이 일게 하는 일’이라고만 나와 있다. 어린 학생들이 이 설명을 읽는다면 ‘왜, 옷감의 표면을 보풀게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것만 같다. 나 같은 어른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물론 일본말이라는 말은 없다. 다음 백과사전을 보면 국어사전보다 훨씬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모직물(毛織物)ㆍ면직물(綿織物)에서 피륙의 날 또는 씨에 보풀을 일으키게 하는 일. 이것은 피륙을 부드럽게 만들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