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심산유곡에 피어있어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꽃도 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꽃은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손을 후대에 물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벌과 나비, 곤충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관심 밖에 놓인 인간의 찬양은 꽃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지요. 자연을 보면 인간사에서 느낄 수 없는 멋짐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 사회를 봅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하여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익을 창출합니다. 노동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려 노력하고 사용자는 많이 시키고 적게 주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상충하여 물리적 충돌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꽃은 그러지 아니합니다. 달콤한 꿀과, 기분 좋은 향기, 먹거리인 꽃가루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받는 것은 단순한 꽃가루받이인 수정인 셈이니까요. 또한 동물의 위장을 빌려 씨앗을 먼 곳까지 이동하는 수고로움을 끼칠 때도 상큼한 과육을 넉넉히 제공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고 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역사는 없었던 듯합니다. 지금은 극단적 핵가족화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예로부터 참 묘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빼앗겼다는 서운함일까요? 아니면 질투일까요. 특히 홀로되어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기른 어머니일수록 갈등의 깊이가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여인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인데…. 고부간의 갈등은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꽃엔 며느리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이 그러한데요. 이들 모두 구박당하는 며느리의 현실과 관계가 깊습니다. 반면에 꽃 이름 가운데 시어머니가 들어가는 예는 없지요. ‘며느리밥풀꽃’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집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흉년이어서 끼니를 잇기 힘들었는데. 시아버지 생신이 되어 며느리는 귀한 쌀 한 줌으로 밥을 짓습니다. 며느리는 솥을 씻으려다가 솥뚜껑 안에 붙은 밥알 두 알을 보고 얼른 입에 넣었는데, 마침 시어머니에게 걸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괘씸하게 여겨 내쫓아 버립니다. 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안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납니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삶이 곤고할 때는 바다에 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다는 왜 바다일까요? 일설에 의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넓어졌다는 말씀도 있지요. 어쩌면 자신을 비워내고 비워내어 낮추고 낮춤이 거대한 채움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채움은 생득적인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니까요. 그것이 심화하면 필요 이상으로 쌓아놓고도 갈증을 풀지 못합니다. 우리 몸도 채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먹는 행위를 통하여 들어온 물질은 몸 밖으로 잘 내보내지 않지요. 잘못 단백질을 내보내면 단백뇨, 당을 내보내면 당뇨가 되는 것이니까요. 자연에서는 언제 굶주림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비축을 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이것이 결국 비만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년 시절 앞산의 오솔길을 지게를 지고 참 많이도 올랐습니다. 무언가 산에서 지고 내려온 기억은 많아도 지고 올라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건 산이 꾸준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삶이 곤고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산에 올라보세요. 푸르름의 위로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산은 위대함 자체여서 귀를 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자연의 맑은 음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걸친 하늘과 구름이 세속의 찌든 때를 정갈하게 씻어주니까요. 산은 그대로 녹색 댐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하더라도 소양강 댐 10개에 버금가는 물 저장 기능이 있고 또한 그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한 산소는 1억 명 이상이 숨 쉴 수 있는 대단한 양이니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철마다 아름다운 들꽃으로 그리고 산야초와 나물, 각종 열매로 식탁의 풍성함을 주는 산이야말로 무진장입니다. 일망무제의 너름 속에서 두 팔을 벌려 탁 트인 맑은 기운을 호흡하면 새처럼 날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사 번뇌를 뛰어넘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함입니다.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맑은소리가 들리는 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귀하지 않은 꽃도 없고 하찮은 풀도 없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잎은 담쟁이입니다. 담쟁이는 열매가 포도와 비슷하게 생겨 포도과에 해당하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입니다. 덩굴식물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담쟁이는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지요. 덩굴손 끝에 작은 빨판처럼 생긴 흡착근이 있어 아무 곳에나 착 달라붙을 수 있고 잘 떨어지지 않아 바위나 나무 등을 기어 올라갑니다. 절벽타기의 위대한 실력자지요. 식물 뿌리 대부분은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으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하늘로 자랍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위나 옆은 물론 아래쪽으로 뻗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담쟁이는 약효가 좋아서 한약재로 쓰입니다. 주로 목질화된 줄기나 포도를 닮은 열매를 사용하지요. 다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효과가 있지만 (특히 소나무) 담 또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독성 때문에 약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건물은 품격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름에 햇빛 차단 효과로 냉방비를 30% 정도 줄일 수 있으며 겨울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笑對靑山 山亦笑(소대청산 산역소)’란 말이 있습니다. "청산을 마주하고 웃으니 청산도 웃어주더라."라는 말씀이지요. 그러합니다. 거울은 절대로 먼저 웃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웃음 지을 때 세상도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얼굴에 표정을 나타낼 수 있는 동물은 흔치 않습니다. 집에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요. 이놈은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으르렁대거나 물거나 핥거나 비비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뿐이지요. 인간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진 생명체는 없습니다. 많은 동물 가운데 사람만 웃을 수 있습니다. 일반 동물도 노여움ㆍ슬픔ㆍ기쁨ㆍ즐거움을 나타낼 줄 알기는 하지만 기쁨이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따름이지요. 동물은 안면 근육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발달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웃음이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의심을 녹이고, 편견을 허물며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우울감을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송화라는 수꽃과 솔방울이라는 암꽃을 가지고 있지요. 문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식 방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나무는 풍매화(風媒花)의 일종입니다. 곧 바람에 의해 수분(受粉)하는 꽃 가운데 하나지요. 송화를 솔방울보다 높이 배치하여 수정하는 데는 쉬운 면도 있지만 매우 많은 송화 가운데 수정에 관여하는 것은 0.01%도 되지 않습니다. 송홧가루 대부분은 장독대에 누렇게 쌓여있거나 개울물에 떠내려가 누런 띠를 형성하거나 인간에게 채집되어 다식으로 환생합니다. 송화를 만드는 무수한 노력이 아주 일부분만 사용되는 비효율적인 구조로 되어 있음은 참으로 원시적입니다. 그에 견줘 곤충의 매개로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서 번식하는 충매화는 (물론 매개곤충이 필요하지만) 수꽃의 꽃가루를 아주 적게 생산하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식물은 풍매화에서 충매화로 진화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충매화는 곤충을 부르기 위하여 화려한 꽃잎이나 눈에 띄는 꽃받침 꽃턱잎으로 나비와 곤충을 불러 모으지요. 그래서 대부분 꽃이 화려합니다.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때 이런저런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런 이유로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당신이 싫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라는 감정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감정이 좌우하는 것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는 감정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논리에 앞서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조지가 이런 실험을 합니다.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말을 두 그룹에 들려주고 첫 번째 그룹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두 번째 그룹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인 레닌이 한 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놀랍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동의를 표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반대를 표한 것이지요. 같은 말을 들려주었는데도 그 평가가 상반되게 나온 것은 말하는 사람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류시화님의 작은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애꾸눈 장군이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이름난 화가들을 불렀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지요.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의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이름 없는 화가가 나섰습니다. 이 무명 화가의 초상화는 장군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는 장군의 성한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칭송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는 노자 사상의 큰 축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상엔 물처럼 싱거운 것이 없습니다. 맹물 같은 사람이란 표현 속에는 업신여김도 들어있지요. 물은 컵에 담으면 컵 모양으로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으로 되기 때문에 지조 없음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도 없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주말에 주왕산을 다녀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의 열병이 마음을 들뜨게 했지만, 길가에 다소곳이 피어난 얼레지와 노루귀, 생강나무꽃과 성급한 진달래가 봄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좋았습니다. 잎이 얼룩덜룩한 얼레지는 나물로도 유명한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지산 연인산 정상부에 끝없이 펼쳐진 얼레지 군락이 유명한데 그 길을 걷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깊은 산속 산모퉁이의 양지바른 곳에 수줍게 피어난 연분홍 얼레지를 봅니다. 얼레지는 꽃이 땅을 향해있고 꽃잎이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것처럼 보여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니 꽃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요. 얼레지는 발아하여 성장하다 꽃을 피워 올릴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어려움을 딛고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반가운지 모르지요. 얼레지는 엘레지와 다릅니다. 엘레지는 슬픔을 노래한 시를 의미하거든요 여하튼 얼레지라는 명칭이 서구적이어서 멋스럽게 다가올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이파리가 얼룩덜룩하여 얼레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봄입니다. 이제 산야에 푸르름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요. 푸름 속에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