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올해로 일본어에 입문한 지 46년째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통장에 돈은 없어도 책장에 넘치는 일본 관련 책을 바라다보면 흐뭇하고 뿌듯하기보다는 '이 책들을 다 어찌할꼬?' 싶은 생각에 요즘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도쿄 진보쵸의 고서적 거리를 비롯하여 와세다대학 앞의 헌책방가는 내가 단골로 다니던 서점가였다. 더러는 한 끼 식사비마저 아껴 사들였던 어쩌면 자식 같은 이 책들을 <이윤옥의 일본어 서재>에서 틈나는 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책은 주로 문학, 문화, 역사, 철학, 사상, 요리, 여행을 비롯하여 백제 성왕 때 일본에 불교를 전수한 조선의 찬란한 불교 유적과 역사 관련 책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서가에서 나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일본어책이다. 문학이니 역사 같은 딱딱하고 형식적인 분류보다는 그때그때 책의 주인인 나의 눈길과 손길이 가는 책들을 골라내어 소개하고자 한다. -글쓴이 말-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는다(日本料理は目で食べる)’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일본 요리는 맛은 차치하고 우선 시각적으로 볼만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 말을 과자에 적용해도 손색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3월 3일은, 일본 풍습으로 히나마츠리날(ひな祭り)이었다. 히나마츠리란 딸아이를 위한 잔칫날로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딸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크라’는 뜻에서 히나 인형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이 풍습은 혹시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인데 이때 쓰는 인형이 “히나인형(ひな人形)”이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에 치렀지만 지금은 다른 명절처럼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원래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3월 3일이 지나서 인형을 치우면 딸이 시집을 늦게 간다는 말도 있어서 그런지 인형 장식은 이 날을 넘기지 않고 상자에 잘 포장했다가 이듬해 꺼내서 장식하는 집도 꽤 있다. 그러나 히나나가시(雛流し)라고 해서 인형을 냇물에 띄워 흘려보냄으로서 아이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해서 미리 막는 풍습도 있다. 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개항 초기 20대 초에 인천으로 건너와 40여 년을 이곳에서 지냈고, 지금도 인천에 잠들고 있는 여성, ‘하나 글래버 베넷'. 해방 후 ‘나비부인의 딸’로 오인당한 그녀 삶의 진상,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의 구조 등 베일에 가려져 왔던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전시회가 막을 올린다.(아래 줄임)” 이는 2주 전쯤 인천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으로부터 받은 ‘전시회 안내’ 보도자료 글 가운데 일부다. 인천관동갤러리에서는 다른 갤러리들과는 달리 역사성 있는 사진전이라든가 문화, 문학, 민속을 아우르는 전시를 자주 열고 있는 곳이라 종종 취재했지만, 솔직히 이번에 보내온 <인천 영국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 전(展, The Incheon British Consulate and Hana Glover Bennett)>이라는 보도자료는 몇 번을 읽어봐도 전시 내용의 의미 파악이 안 되는 데다가 전시 주제로 내세운 영국인 여성 ‘하나 글래버 베넷’과 개항기 인천의 ‘영국영사관 건물’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별 흥미를 못 느꼈다. 전시 개막식 날짜로 알려 온 25일(일요일) 낮 3시는 마침 청탁받은 원고 마감까지 겹쳐 내심, 이번 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 한센병(나병) 전시에서는 “재일조선인 입소자의 생활 실태, 식민지 조선의 격리 정책, 그리고 패전후 국적을 박탈당한 재일조선인 한센병 환자의 고통과 투쟁을 다뤘습니다. 나아가 한센병과 우생사상(優生思想), 부락차별, 문학, 그리고 기쿠치 사건 등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2020년 <한센병과 조선인-차별을 살아내고> 전을 열었을 때 코로나19가 창궐하여 '감염병과 차별'의 문제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센병을 둘러싼 차별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이는 며칠전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가 보내온 자료 가운데 <한센병과 조선인 벽을 넘어> 소책자의 머리말이다. '한센병과 조선인?' 나는 소책자 제목을 보고 잠시 착각을 했다. 한센병과 조선인 이야기라면 몇 해 전 이미 기사를 쓴 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가 보내 온 자료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이번 자료는 <한센병과 조선인>에 관한 두 번째 전시를 알리는 자료였다. 내가 전에 쓴 기사는 20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立教大學)에서 공부한 지 8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가 남긴 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윤동주를 그리워하며, 그의 시와 생애를 마주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번에는 오랜 세월 윤동주 시인의 연구를 거듭해 오신 우에노 준 교수님께서 강연을 해주십니다.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이는 오는 2월 18일(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열리는 ‘시인 윤동주와 함께 2024’의 안내글이다. 이번 도쿄 릿쿄대학 추도회는 코로나19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대면으로 열린다. 이날 추도회는 ‘시인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과 릿쿄대학 평화커뮤니티 연구 기구가 공동 주최한다. 추도회는 오후 2시부터 거행되며 1부는 추도 예배, 2부는 교토예술대학 우에노 준(上野 潤) 교수의 ‘윤동주시의 금일성(尹東柱詩の今日性)’에 대한 특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보다 하루 앞선 2월 17일(토)에는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호쿠오카 형무소터에서 ‘윤동주 시인 추도 79주년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후쿠오카 추도식은 오후 1시 45분부터 진행되며, 옛 후쿠오카형무소터인 백도서공원(百道西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윤옥 선생님, 교토에서 거행될 시인 윤동주의 추도식 정보 감사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어도,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최근 들어 큰 재해가 잇따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저질화가 진행되고 있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특히 군마현(群馬県, 도쿄에서 50분)의 다카사키시(高崎市)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전쟁 중 연행되어 강제노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위령하는 평화의 추도비가 20여 년 전에 세워졌고, 현지인들에 의해 해마다 위령제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익들이 시비를 걸어 군마현에 철거를 요구한 결과 군마현지사(群馬県知事)는 이에 찬성하여 추도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재판에 호소했지만, 법원에서도 막아내지 못하고 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어 1월 29일, 불도저로 조선인 추도비는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폭거입니다. 추도비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 미래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소중한 징표였는데 이를 없애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들의 철거 반대 목소리가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재건할 것을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이는 일본 고려박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는 붉은 홍매화가 피어날 시기다. 홍매화 가 활짝 필무렵인 2월 중순, 이 대학에서는 아주 특별한 추도식이 열린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 앞에서 2월 10일(토) 오후 1시 30분부터 시비헌화식(詩碑献花式)에 이어 강연회 등 오후 5시까지 이어진다. 오는 2월 10일 추도식은 <윤동주를 그리는 모임(尹東柱を偲ぶ会), 회장 박희균> 및 <도시샤코리아동창회 (同志社コリア同窓会), 회장 김용주>의 주관으로 열리며, 도시샤코리아센타가 후원한다.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인 추도회 일정을 알려온 이는 교토에 사는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시인으로 그는 일본의 중견시인으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여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금 세계는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등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긴장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이상 문제 등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양심을 바탕으로 한 윤동주의 시는 세계 수십 개 언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를 5월 21일(2023)에 하늘로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재작년 11월(2022)부터 입원하셨고 퇴원 후에는 다시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계셨지만, 어머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일반병원에서 퇴원하시자 마자 집으로 모시지 못하고 곧바로 시모다에 있는 온천병원요양병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코로나가 이어지고 있어 직접 면회를 하지 못한 채 주 1회 온라인 면회만 허용되었고 직접 어머니를 뵐 수 있었던 것은 고작 1~2개월에 한 번이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부쩍 여위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발길을 돌려야 할 때마다 조여오던 가슴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순의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다가 지난해 5월달에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낸 이토 노리코 씨의 편지글이다. 이토 노리코 씨와의 인연은 내가 와세다대학 방문학자로 가 있을 때의 인연이니 어느새 25년이 다 되어 간다. 노리코 씨 집을 드나들면서 그의 친정어머니와도 꽤나 오랜 시간 친분 관계를 이어오던 터 였다. 말수가 적은 노리코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내가 놀러 갈라치면 언제나 자상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맛있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해가 밝아 오면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사참배를 위해 전국의 유명한 신사(神社, 진쟈)나 절(寺, 오데라)을 찾아 떠난다.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비교적 규모가 큰 지역의 신사라도 찾아나선다. 신사참배의 나라 일본인의 모습은 정초가 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사참배야 연중 이어지는 것이지만 특별히 정초에 하는 신사참배를 가리켜 하츠모우데(初詣)라고 하는데 하츠모우데는 단순한 참배가 아니라 ‘정초 기도’의 의미가 크다. 일본의 정초 하츠모우데 풍습은 “도시코모리(年籠り)”라고 해서 집안의 가장이 기도를 위해 그믐날 밤부터 정월 초하루에 걸쳐 씨신(氏神)을 모신 신사(神社)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던 것이 그믐밤 참배와 정초 참배로 나뉘었고 오늘날에는 정초 신사참배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반인들의 정초 기도 풍습은 명치시대(1868년) 중기부터 유래한 것으로 경성전철(京成電鐵) 같은 철도회사가 참배객 수송을 대대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철도를 이용해 유명한 신사나 절을 찾아다니게 되면서 보편화 되었다. 하츠모우데(初詣) 기간은 보통 1월 7일까지로 알려졌지만 마츠노우치(松の内)라고 해서 1월 15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제 며칠 후면 계묘년 토끼해가 지나고 곧 갑진년 용띠해가 밝는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일본에서는 오오소우지(大掃除, 대청소)를 하고 연말이면 도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 해넘이 국수)를 먹는다. 그런가 하면 집 대문에 시메카자리( 注連飾り, 금줄)를 매달고 집이나 상가 앞에 카도마츠(門松, 소나무장식)를 세워 나쁜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매다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12월 말에 대문에 장식하고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 1월 7일 이후에 치우는 게 보통이다. 관서지방에서는 1월 15일에 치우고, 미에현(三重縣 伊勢志摩) 같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장식하는 곳도 있는 등 곳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카도마츠”는 12월 13일에서 28일 사이에 집 앞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