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1월 9일 밤새 삼례 주막에서 빈대들에게 뜯겼다. 밤새 비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걸려 있다. 이상한 날씨다. 최저 기온 섭씨 4도. 기러기가 정말 많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아침 밥을 먹고 9시 23 분 주막을 나선다. 사수강(Sac-su-gang, 오늘날의 만경강)에 9시 44분에 도착. 물살은 거세고 수심은 깊다. 가장 깊은 곳은 120cm. 11시 넘어 가리내 마을 주막(Karina chumak)을 지났다. 11시 18분 기압은 30.42, 온도는 11.6도. 전주까지는 10리 길이다. 바람은 남서풍, 차갑다. 산비탈에 많은 마을이 바라보인다. 모든 마을이 대로에서 떨어져 있고 샛길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가 큰길만 가서는 마을 속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진흙투성이의 좁은 길을 지나 12시 10분 전주 남문에 도착했다. 성곽 안에 2,000여 채의 집이 있다. 전체 고을엔 7,000~8,000채의 집들이 있다. 비좁은 길을 지나 관아 경내로 진입한다. 크고 허름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감영에서 왔다면서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와 내 방으로 들어오겠다고 우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는 용안(오늘날 익산시에 속함)을 방문한 다음 날 1884년 11월 9일 밤 삼례(오늘날 전북 완주군 소속) 주막에 든다. 등잔불 아래서 빈대와 벼룩과 싸우면서 이렇게 썼다. 민중의 비참상을 여실히 증언하고 있다. "전양묵(Muk)의 말에 따르면, 관리들이 백성을 불러서 돈을 요구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백성이 돈을 내놓지 않으면 매질한다고 한다. 하눌님께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을 땐, 백성들이 종종 관아를 들이쳐서 한양으로 내쫓아 버린다고도 한다. 오늘 여정은 몹시 힘들었다. 익산(Iksan)에 도착하기 전에 심한 눈이 서너 차례 내렸다. 길이 엉망진창이었다. 가마꾼들이 참 안 됐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용감하고 세심하게 날라 주었다. 가마꾼 일은 지독히 고되다. 그들은 맨다리를 드러낸 채 홑겹의 무명옷을 걸치고 있다. 발은 낡은 헝겊을 두른 짚신을 신고 있다. 오늘은 온도계가 섭씨 4.4도까지 내려갔는데도 알몸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눈에 많이 뜨였고, 맨발을 한 장정들도 수없이 많다. 오늘 나와 수일(Suil, 집사 정수일)은 위장에 통증을 느꼈다. 아마도 익산에서 먹은 떡(mochi) 때문인 듯하다. 이런 가슴의 열감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의 글에서 한 가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내부자의 가슴을 지닌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글이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밤이 오면 어두운 남산 꼭대기, 봉수대(烽燧臺)의 불꽃이 줄지어 신속히 꺼진다. 남산의 봉홧불은 이 나라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뻗어 있는 제4봉수로(烽燧路)의 마지막 봉화다. 그 신호로써 사람들은 오늘 밤 온 나라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산 맞은편 궁궐의 임금은 왕국의 평화를 알리는 이 무언의 메시지에 안도하며 침전에 들 것이다. 잠시 뒤 도심의 큰 종에서 울리는 ‘부웅 부웅 부웅’ 소리가 귓전에 닿는다. 사람들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며 밤에는 성문이 닫힌다는 신호다. 이 땅에 밤이 내리면 이처럼 봉홧불이 신호를 하고 큰 종이 밤공기 속에서 부웅부웅 소리를 내온 지 4백 년이 넘었다!" ( The signal has flashed out nightly, and the great bell has boomed thus in the night air nightly for more than four hundred years! ) (*Carter J. Eckert의 <Male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는 1884년 11월 11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침 9시에 토종꿀, 호도, 감이 들어 왔다. 10시가 되자 엄청난 밥상이 들어왔다. 그 높이가 내 가슴께에 이른다. 감사가 특별히 보낸 것이다.” 그는 ‘엄청난 밥상’을 이렇게 연필로 그렸다. 손글씨 해독이 어렵다. 시안을 올린다.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의 1884년 11월 7일 자 여행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감(전라도 용안의 김노완 현감)이 타시카(Tashika)의 동생과 함께 나를 찾아 왔다.….그는 타시카를 빼다 박았다. 그러나 더 젊고 더 크다..…나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다고 그가 말한다. |전양묵(조지 포크의 동행자, 통역)은 타시카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오늘 밤 내 방에 이 사람들이 모이자, 몹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건 내가 서울을 떠난 이래 어떤 곳에서도 겪지 못한 기이한 체험이었다.” 타시카는 과연 누구일까? 정체를 알 수 없다. 여행기를 번역한 조법종 교수는 “ ‘타시카’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어느 날, 제중원 설립을 주도했던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의 기록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테시카(Teshika)’가 나온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의사 '카이세 도시유키(海瀨敏行)를 알렌과 포크는 타시카 혹은 테시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일본인 의사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알렌과 함께 치료했던 인물이다. ‘카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8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오늘 밤 용안 현감이 내게 큰 잔치를 벌여 주었는데 그의 부인이 마련한 것이다. 정말 매우 좋았다. 쌀밥(Boiled rice) 소고기 무국(Soup beef and daikon/다이콘은 일본어로 무) 수란(Poached eggs) - 달걀을 깨뜨려 끓는 물에 넣어 반숙으로 익혀 먹는 음식 날 소 양과 허파(Tripe and lights raw) 쇠고기 육회-가늘게 썬 것(Raw beef-lean thin slice) 자반 생선(Shreds of salt fish) 계란 반죽을 입힌 소양 전(Cooked tripe/in a sort of egg batter) 무생채(Sliced radish and green herbs) 작은 사발에 쇠고기 국(Small bowl beef soup) 김치(Kimchi) 식초(Vinegar) (아래는 또 다른 차림, 아마 주안상인 듯)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냉면(Cold vermicelli) 통 닭찜(Boiled chicken(in whole one) 조개 젖과 굴 젖(salt clams and oyster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가 1884년 11월 1일 서울을 떠나 남도 여행길에 올랐을 때 가장 궁금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얼마 전에 미국 군함 앨러트(Aler)t호가 금강에서 좌초되었을 때 어디에서 누가 도와 주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11월 공주에서 앨러트호 좌초 사건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실망했다. 그의 11월 5일 자 일기가 말해준다. 11월 5일 이곳 사람들은 감사나 아랫사람이나 앨러트호가 금강에 다녀간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이는 조선 정부의 일 처리와 정보 전달 실태를 보여준다. 전라도 용안에 이르러 비로소 진실을 알았다. 김노완 용안 현감이 바로 그 은인이었다. 그런데 포크는, 앨러트호가 금강에서 좌초된 일이 있었고, 조선인들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게 의문인 까닭은 조선 및 미국 측의 자료에 전혀 그 건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앨러트호가 금강을 다녀간 사실조차 포크의 일기 외에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포크는 어디서 이 정보를 얻었을가? 이 의문을 풀 단서가 그의 부모님 전 상서(1884년 7월 22일)에 보인다. 일주일 전쯤에 1873년 졸업생 앨러트호의 사관(士官) 월머(W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7일 밤을 용안 관아에서 잤다. 밤에 비가 왔고 벼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10시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1시에 정복을 차려입고 정식으로 용안 현감을 예방한다. 그는 좌초되었던 미군함 앨러트호(Alert)를 도와준 데에 대해 현감에게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용안 현감 김노완은 개화파 인물이었다. 더구나 포크의 절친인 서광범의 동지였다. 당시 여행에 통역으로 동행한 전양묵 또한 개화파였다. 김노완과 전양묵은 모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 일본어를 안다. 포크는 일본어에 능통하다. 그러니까 1884년 11월 8일 전라도 용안(오늘날 익산에 속함)에서 일본을 아는 개화파들이 회동한 것이다. 김노완과 전양묵의 방일 행적에 대해 알아본다김노완은 1880년 7월에 김홍집이 이끄는 일본 방문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 약 1달 동안 체류한 뒤, 1880년 8월 말 귀국했다. 김노완은 한 달 남짓의 일본 체류 중 윤웅렬(윤치호의 부친)과 함께 군사분야 시찰과 연수에 몰두하였다. 도쿄의 일본 육군성 산하 부대 그리고 군사 시설과 근대식 무기를 제조하던 도쿄 포병창(육군 조병창) 등지를 시찰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의 조선 남부 여행기는 뒤에 계속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근대식 병원 설립에 포크가 한 역할을 짚어보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은 1885년에 설립된 제중원(濟衆院)이다. 개원 당시에는 광혜원(廣惠院)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나, 고종 임금의 명에 따라 2주 만에 '대중을 구제한다'라는 뜻의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 크게 다친 왕실 외척 민영익을 미국의 의료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이 서양 의술로 치료해 살려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감동한 고종이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립병원을 설립했다. 이런 사실은 상식처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지 포크의 숨은 공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학자 이광린의 설명이다. 주한미국공사관부무관 포크(George C. Foulk) 소위의 열띤 충고와 알선은 마침내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 설립을 성취시켰다. 포크 소위는 보빙사 일행이 워싱톤에 도착한 이후로 미국 곳곳을 안내하고 다녔으며, 그들이 귀국할 때도 같이 행동하여 한국에 부임하고, 새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던 것이니, 그의 노력이 없었던들 아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7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미 해군 아시아 함대(Asiatic Squadron) 소속의 철제 포함(Gunboat) 앨럿(USS Alert)호에 배속되었다. 그는 이 배를 타고 뉴욕항을 출발하여 대서양, 지중해, 수에즈 운하, 인도양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긴 항해를 했다. 포크가 1884년 11월 1일 남부 지방 탐사 여행을 떠났을 때 중요한 관심사가 있었다. 1884년 중반 조선의 금강에 진입했다가 좌초되었던 앨럿호에 대한 것이었다. 그 배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관리는 누구였을까? 그것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1884년 11월 7일 여행 일기를 보자. 용안(현재 익산시에 속함)에 도착하니 4시 45분. 다시 매우 피곤하다. 마을 사람 전체가 나를 맞이하러 나왔다. 나는 떠밀리듯 관사로 들어간다. 아, 거기에 탁자가 있다! 네 개의 등받이 의자가 있고 중국식 탁자 덮개가 덮여 있다. 이곳은 금강 남쪽에 자리를 잡은 인가 150 채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숲이 우거져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나는 전양묵(통역)에게 명함과 여권을 지참시켜 현감에게 보냈다. 앨럿호가 좌초되었을 때 도와주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