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의 1884년 11월 7일 자 여행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감(전라도 용안의 김노완 현감)이 타시카(Tashika)의 동생과 함께 나를 찾아 왔다.….그는 타시카를 빼다 박았다. 그러나 더 젊고 더 크다..…나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여기에서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다고 그가 말한다. |전양묵(조지 포크의 동행자, 통역)은 타시카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오늘 밤 내 방에 이 사람들이 모이자, 몹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건 내가 서울을 떠난 이래 어떤 곳에서도 겪지 못한 기이한 체험이었다.” 타시카는 과연 누구일까? 정체를 알 수 없다. 여행기를 번역한 조법종 교수는 “ ‘타시카’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어느 날, 제중원 설립을 주도했던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의 기록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테시카(Teshika)’가 나온다. 주한 일본 공사관의 의사 '카이세 도시유키(海瀨敏行)를 알렌과 포크는 타시카 혹은 테시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일본인 의사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알렌과 함께 치료했던 인물이다. ‘카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8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오늘 밤 용안 현감이 내게 큰 잔치를 벌여 주었는데 그의 부인이 마련한 것이다. 정말 매우 좋았다. 쌀밥(Boiled rice) 소고기 무국(Soup beef and daikon/다이콘은 일본어로 무) 수란(Poached eggs) - 달걀을 깨뜨려 끓는 물에 넣어 반숙으로 익혀 먹는 음식 날 소 양과 허파(Tripe and lights raw) 쇠고기 육회-가늘게 썬 것(Raw beef-lean thin slice) 자반 생선(Shreds of salt fish) 계란 반죽을 입힌 소양 전(Cooked tripe/in a sort of egg batter) 무생채(Sliced radish and green herbs) 작은 사발에 쇠고기 국(Small bowl beef soup) 김치(Kimchi) 식초(Vinegar) (아래는 또 다른 차림, 아마 주안상인 듯)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냉면(Cold vermicelli) 통 닭찜(Boiled chicken(in whole one) 조개 젖과 굴 젖(salt clams and oyster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가 1884년 11월 1일 서울을 떠나 남도 여행길에 올랐을 때 가장 궁금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얼마 전에 미국 군함 앨러트(Aler)t호가 금강에서 좌초되었을 때 어디에서 누가 도와 주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11월 공주에서 앨러트호 좌초 사건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실망했다. 그의 11월 5일 자 일기가 말해준다. 11월 5일 이곳 사람들은 감사나 아랫사람이나 앨러트호가 금강에 다녀간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이는 조선 정부의 일 처리와 정보 전달 실태를 보여준다. 전라도 용안에 이르러 비로소 진실을 알았다. 김노완 용안 현감이 바로 그 은인이었다. 그런데 포크는, 앨러트호가 금강에서 좌초된 일이 있었고, 조선인들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게 의문인 까닭은 조선 및 미국 측의 자료에 전혀 그 건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앨러트호가 금강을 다녀간 사실조차 포크의 일기 외에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포크는 어디서 이 정보를 얻었을가? 이 의문을 풀 단서가 그의 부모님 전 상서(1884년 7월 22일)에 보인다. 일주일 전쯤에 1873년 졸업생 앨러트호의 사관(士官) 월머(W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7일 밤을 용안 관아에서 잤다. 밤에 비가 왔고 벼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10시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1시에 정복을 차려입고 정식으로 용안 현감을 예방한다. 그는 좌초되었던 미군함 앨러트호(Alert)를 도와준 데에 대해 현감에게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용안 현감 김노완은 개화파 인물이었다. 더구나 포크의 절친인 서광범의 동지였다. 당시 여행에 통역으로 동행한 전양묵 또한 개화파였다. 김노완과 전양묵은 모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어 일본어를 안다. 포크는 일본어에 능통하다. 그러니까 1884년 11월 8일 전라도 용안(오늘날 익산에 속함)에서 일본을 아는 개화파들이 회동한 것이다. 김노완과 전양묵의 방일 행적에 대해 알아본다김노완은 1880년 7월에 김홍집이 이끄는 일본 방문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 약 1달 동안 체류한 뒤, 1880년 8월 말 귀국했다. 김노완은 한 달 남짓의 일본 체류 중 윤웅렬(윤치호의 부친)과 함께 군사분야 시찰과 연수에 몰두하였다. 도쿄의 일본 육군성 산하 부대 그리고 군사 시설과 근대식 무기를 제조하던 도쿄 포병창(육군 조병창) 등지를 시찰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포크의 조선 남부 여행기는 뒤에 계속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근대식 병원 설립에 포크가 한 역할을 짚어보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은 1885년에 설립된 제중원(濟衆院)이다. 개원 당시에는 광혜원(廣惠院)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나, 고종 임금의 명에 따라 2주 만에 '대중을 구제한다'라는 뜻의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 크게 다친 왕실 외척 민영익을 미국의 의료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이 서양 의술로 치료해 살려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감동한 고종이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립병원을 설립했다. 이런 사실은 상식처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지 포크의 숨은 공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학자 이광린의 설명이다. 주한미국공사관부무관 포크(George C. Foulk) 소위의 열띤 충고와 알선은 마침내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 설립을 성취시켰다. 포크 소위는 보빙사 일행이 워싱톤에 도착한 이후로 미국 곳곳을 안내하고 다녔으며, 그들이 귀국할 때도 같이 행동하여 한국에 부임하고, 새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던 것이니, 그의 노력이 없었던들 아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7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미 해군 아시아 함대(Asiatic Squadron) 소속의 철제 포함(Gunboat) 앨럿(USS Alert)호에 배속되었다. 그는 이 배를 타고 뉴욕항을 출발하여 대서양, 지중해, 수에즈 운하, 인도양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긴 항해를 했다. 포크가 1884년 11월 1일 남부 지방 탐사 여행을 떠났을 때 중요한 관심사가 있었다. 1884년 중반 조선의 금강에 진입했다가 좌초되었던 앨럿호에 대한 것이었다. 그 배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관리는 누구였을까? 그것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1884년 11월 7일 여행 일기를 보자. 용안(현재 익산시에 속함)에 도착하니 4시 45분. 다시 매우 피곤하다. 마을 사람 전체가 나를 맞이하러 나왔다. 나는 떠밀리듯 관사로 들어간다. 아, 거기에 탁자가 있다! 네 개의 등받이 의자가 있고 중국식 탁자 덮개가 덮여 있다. 이곳은 금강 남쪽에 자리를 잡은 인가 150 채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숲이 우거져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나는 전양묵(통역)에게 명함과 여권을 지참시켜 현감에게 보냈다. 앨럿호가 좌초되었을 때 도와주었던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공주 숙소에서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지난밤은 몹시 춥고 피곤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까 했는데 조선인들은 은진미륵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미륵을 본 다음 강경포를 거쳐 용안(오늘날 익산에 속함)로 가기로 한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갔다. 마당에 싸릿대가 쳐져 있는 곳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 없을 정도다. 족히 150명은 되어 보이는 온갖 행색의 구경꾼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말없이 살펴본다. 실로 그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사생활과 예절 개념 같은 건 전혀 없는 듯하다. 신이시여, 저들을 도우소서. 최악의 경험이다. 이 끔찍한 땅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은진미륵을 보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미륵(Miryok)의 이마에는 지름 20cm의 황금 명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수정구가 박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사진 6장을 찍었다. 스님들의 말로는 미륵상은 고구려Kokoryoh)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모자 부분이 무척 크고 아래쪽에 조각이 잘 되어 있다. 북서쪽 구석에는 떨어져 나간 곳을 커다란 철제 고리로 아주 잘 고쳐 놓았다. 미륵상은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양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공주 산성 인근의 작은 절에 들렀다. 두 명의 승려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조선 불교와 인도 불교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보려 했다. 스님들은 내게 약간의 산스크리트어 문자가 쓰여 있는 불경과 한문 불경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불교에 대해서 상당히 아는 것 같았다. 나는 스님들에게 인도에서의 경험과 산스크리트어 경전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결국 스님은 경기도 장단에 있는 어떤 절에서 산스크리트어 경전 5권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산스크리트어가 가로로 길게 쓰여진 패엽경(貝葉經: 나뭇잎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빳뜨라-pattra를 한자로 표기한 단어다. 고대 인도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 야자수의 잎사귀에 새겨 기록한 불교 첫 성문 경전) 이라고 한다. 중요한 정보다. 승려들은 나와의 환담을 매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절을 나와 중군(中軍, 조선시대 오군영이나 각 지방 절도사 밑에서 군무를 총괄하던 무관)을 방문했다. 그는 내게 성찬을 대접했다. 나는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긴 대화로 들어갔다. 나는 미국의 지도를 그려 보이면서 각 지역의 산물을 설명했다. 나는 전설적인 미국의 벼락부자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나는 얼마 전에 광안역에서 하인에게 민참판(민영익)의 편지를 주면서 공주 감사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그 하인이 길을 5마일이나 벗어나 허탕 치고 내게 되돌아왔다. 나는 무척 피곤하고 외롭다. 이들 이상야릇한 이방인들 속에서 나는 때때로 심연 같은 고독감을 느끼곤 한다. 그 기이한 느낌을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다. 어떤 외국인도 나처럼 이교도들 속에 완전히 자신을 내던진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인간은 세상 어디에서나 인간임을, 이 절대고독이야말로 나의 의지처임을. 비장(Pijang)이 전양묵(조지 포크의 통역)을 찾아와서 내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 등등을 묻는다. 감사의 명함도 가져왔다. 내가 보낸 명함에 대한 답례이다. 비장이 말하길, 음식을 여태 가져오지 않은 아전들이 몹시 나쁘다고 말한다. 감사에게 보낸 민영익의 편지를 비장이 가지고 있다. 그 편지에는 내가 원하면 감사가 돈을 빌려주라고 적혀 있다. 이곳엔 돈이 없어요, 비장이 전양묵에게 말한다. 그 문제는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다. 9시 20분 무렵이 되어서야 밥상이 왔다. 수일(조지 포크의 집사)의 말에 의하면, 나의 전령(하인)이 민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밤의 천안 주막은 크고 깨끗한 편이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었다. 주막 주위에 거위들이 어슬렁거린다. 8시 17분 주막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향하다. 9시 8분에 휴식. 남쪽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주위는 구릉이 달리고 있는 첩첩산중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행인들이 꽤 많다. 짐꾼들이 동물과 쌀, 담뱃대 그리고 상자를 지고 가고 있다. 주막들에서 많은 양의 놋쇠 그릇이 보인다. 행인도 많고 마을도 많다. 10시 4분 주막 출발. 남쪽으로 향하다가 약간 서쪽으로 틀었는데 감탄할 만하게 경작이 잘 된 지역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논이다. 배수로도 완벽하다. 버려진 땅은 한 뙈기도 없다. 길을 따라 연달아 고을과 마을이 나타난다. 덕평 주막이라는 곳은 주위엔 관목이 우거져 있고 산악지역의 분위기가 풍긴다. 11시 16분 마을 언저리에서 휴식을 취하다. 11시 45분 주막이 있는 원토 마을 서쪽 끝에서 쉬었다. 조선에서 다랑이논을 처음 보다. 어떤 곳은 180m~270m까지 올라갔다. 조선의 서쪽 지형은 토양이 쉬이 씻겨 내려가 경작하기 어려운데 이곳은 그와 달라 이처럼 계단식 경작이 가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