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886년(고종 23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는 우리나라의 초청을 받아 육영공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고급 양반의 자식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하던 한국의 첫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는 영어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영어로 수업했다. 또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성에 감명받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세종대왕의 업적을 스스로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3년 만인 1891년에 우리나라 신교육의 기초를 닦을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펴냈다. 《사민필지》는 161쪽으로 이루어졌으며, 한자가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처음의 완전한 한글 교과서다. -------------------------------------------------------------------------------------------------- Hulbert Publishes the First Hangeul-Only Textbook, Samminpilji [An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1] In 1886 (the 23rd year of King Gojong’s rei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790년(정조 14년)에 책을 읽어주는 전문 직업인인 ‘전기수’가 낫에 찔려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기수는 종로 거리 연초 가게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글 소설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던 가운데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풀 베던 낫으로 전기수를 내리찍어 죽게 했다. 사내는 전기수가 이야기를 너무 실감 나게 들려주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전기수를 악인으로 착각해서 죽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한글 소설이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실록》 1790(정조 14년) 8월 10일 참조 ---------------------------------------------------------------------------------------------------- A “Jeongi-su” is Killed by a Scythe While Reading a Hangeul Novel [The History of Hangeul Through Illustrations 20] In 1790 (the 14th year of King Jeon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정조는 원손 시절에 큰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한글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썼던 때는 1756~1759년(영조 32~5년) 무렵으로 다섯 살에서 여덟 살로 추정한다. 편지에는 “가을바람에 몸과 마음이 평안하신지 안부를 여쭙습니다. 뵈온 지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봉서를 받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오니 기쁘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린 나이에 편지 형식을 갖춰 쓰면서도 외숙모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정조의 한글 편지를 통해 정조가 어린 나이지만 할아버지의 건강에도 마음을 쓰는 효심이 깊은 손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Young King Jeongjo Writes a Letter in Hangeul to His Maternal Aunt When King Jeongjo was still a young prince (between the ages of five and eight, during the period 1756–1759, around the 32nd to 35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he wrote in Hangeul to unc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727년(영조 3년), 김만중의 딸이자 신임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이이명의 처인 김씨 부인은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한글 탄원서를 올렸다. 탄원서의 크기는 가로 81.5cm, 세로 160cm에 달할 정도로 크다. 정자로 정성 들여 쓴 글에서는 정치적 격변기에 집안의 위기를 맞은 사대부 여성의 절박한 심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김만중은 한글을 나랏글로 삼아 한다고 주장하고 한글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을 직접 쓴 빼어난 한글문학가이자 평론가였다. Submitting a Petition in Hangeul for the Family’s Sake In 1727 (the 3rd year of King Yeongjo’s reign), Kim Man-jung’s daughter, the wife of Lee Im-yeong, submitted a petition in Hangeul to King Yeongjo. This petition was a desperate plea to save the lives of her grandson and brother-in-law, who were in danger of b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670년(현종 11년)경 안동에 살았던 사대부가의 장계향 선생이 딸과 며느리를 위해 우리나라 첫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펴냈다. ‘음식디미방’에는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17세기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식품 보관법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국수, 만두, 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하여 어육류, 채소류 등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숭어만두를 만드는 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선한 숭어를 얇게 저며 가볍게 칼집을 넣는다. 기름지고 연한 고기를 익혀 잘게 두드려 두부, 생강, 후추를 섞어 기름간장에 많이 볶는다. 볶은 재료를 저민 생선 위에 놓고 잘 싸서 단단히 말아 허리가 구부정하게 만두 모양을 만든다. 녹말가루를 만두의 온몸에 묻혀 새우젓국을 싱겁게 타서 푹 끓여 5–개씩 대접에 뜨고 파를 곁들여 낸다.” Publication of the First Hangeul Cookbook, Eumsik Dimibang In around 1670 (the 11th year of King Hyeonjong’s reign), Jang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첫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조선 광해군 시절 좌참찬을 지내다 반역죄로 극형을 당한 허균이 1608년(선조 41년) 무렵 펴낸 것으로 전해진다. 《홍길동전》에는 적서 차별 타파와 인간 평등사상 등 사회 제도를 개혁하고 부패한 정치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홍길동전》은 조선 시대를 무대로 삼고 있으며, 당대 현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며, 한글로 쓰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창작이 아닌 번역 소설로는 홍길동전보다 97년 앞서 중종 때 채수가 쓴 한문 소설 〈설공찬전〉을 한글로 뒤친 한글소설이 있었다. 이 소설이 널리 퍼지니까 중종이 귀신을 다룬 요망한 이야기라고 나라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여 읽지 못하게 했다. The Publication of the First Original Hangeul Novel, Hong Gildongjeon The first original Hangeul novel, Hong Gildongjeon (The Story of Hong Gildong), was published around 1608 (the 41st year of King Seonjo’s reign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당시, 우리 백성들 가운데는 왜군의 포로가 되어 왜군에게 협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담화문을 내렸다.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에게 특별히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운데 왜적을 잡아 나오거나 왜적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오거나 해서 어떠하든 공이 있으면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시킬 것이니 너희는 생심이나 전에 먹고 있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와라.” 이처럼 선조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 의병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나라 문서에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왜군이 알 수 없는 한글을 썼다. 이 담화문 덕분에 김해수성장 권탁은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백성 백여 명을 구하는 공을 세웠다. The Power of Hangeul in the Imjin War Moreover, if you capture Japanese soldiers or gather information on their actions, or bring back many of the capture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86년(선조 19년)에 안동에 사는 한 여인이 죽은 남편에게 한글 편지를 썼다. 그 여인은 바로 조선 중기 고성 이씨 문중의 며느리로 ‘원이 엄마’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 이응태는 임신한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 형제를 두고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러자 아내인 원이 엄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와 한글 편지를 무덤 속에 함께 넣어 마음을 전했다.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에는 남편과 함께 누워 나누었던 이야기부터 배 속 아이를 걱정하며 한탄하는 이야기까지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Woni’s Mother Leaves a Hangeul Letter at Her Husband’s Grave In 1586 (the 19th year of King Seonjo’s reign), a woman living in Andong wrote a Hangeul letter to her deceased husband. This woman, known as “Woni’s Mother,” was a daughter-in-law of the Goseong Yi family in the mid-Joseon period. He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한자는 조선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용되는 것에 비해 한글은 조선만의 글자이며 조선인만 소통할 수 있는 글자였다. 그러다 보니 한글은 조선의 비밀을 담는 글자로도 사용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1539년(중종 34년), 역관 주양우가 중국 북경에서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져 주양우는 나라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추국을 받았다. Preventing the Spread of Hangeul in China While Chinese characters were used in China, Japan, and Korea, Hangeul was unique to Korea and could only be used by Koreans for communication. Because of this, Hangeul was also used to encode Korea’s secrets. In 1539 (the 34th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a Korean interpreter named Ju Yangwoo taug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27년(중종 22년), 당대 으뜸 학자인 최세진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펴냈다. 《훈몽자회》에는 3,360자의 한자가 실려 있는데, 그 한자의 뜻과 음을 한글로 달았다. 그리고 이 책 시작 부분에는 ‘훈몽자회인’과 ‘범례’가 실려 있는데, ‘범례’ 끝부분에 ‘언문자모’라 하여, 그 당시 한글 체계와 용법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시 사대부들은 어려운 한자를 익히느라 애를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훈몽자회》 덕분에 사대부들은 혼자서도 한자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글은 한자 교육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Publishing Hunmongjahoe, a Guide to Explaining Hanja in Hangeul In 1527 (the 22nd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Choi Sejin,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of the time, published Hunmongjahoe, a textbook for learning Hanja. The book contains 3,360 Hanja characters, with their mean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