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시작하는 <계면조 평롱-平弄> 이야기와 가창자들을 소개하였다. 가곡의 농조(弄調)는 앞의 노래들과는 달리, 그 음악적 분위기나 표현법이 다소 흥청거리기 시작하는 변화의 곡조라는 점, 이수대엽이 1분에 20 정간(井間)이고, <중거>가 25 정도인데 견줘, <평롱>은 50정간(박)을 부르는 속도여서 빠르면서도 흥겨운 분위기의 노래라는 점을 이야기였다. 이번 주에는 농(弄)의 악곡을 지나서 낙(樂)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낙조(樂調)의 <우락-羽樂> 이야기와 이 곡을 부른 변진심, 박성미, 유진희 등을 소개한다. 이름 그대로, <우락-羽樂>이란 우조 음계에 의한 낙조(樂調)라는 악곡의 이름이다. 이 곡조에도 여러 종류의 노랫말이 전해오는데,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제갈양은 칠종칠금하고’, ‘만경창파 지수에’, ‘물아래 세 가락 모래’, ‘유자는 근원이 중하여’, ‘앞 논의 올해를 비여’, ‘군자견 황화지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락>이란 노래는 ‘바람 우락’이라 할 만큼,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로 시작하는 다음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승윤, 홍윤수, 이슬기 등, 3인이 제창한 <계면 두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계면-界面>은 <계면조-界面調>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고, <두거-頭擧>는 첫 부분을 높이 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 이 곡에 얹어 부르는 노랫말은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七月) 기망(旣望)”으로 시작하는 시조시(時調詩)로, 자연 속에서 시(詩)와 술을 즐기던 당시 사대부들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풍류(風流)문화의 멋이 가감 없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함께 제창한 홍현수, 이슬기는 이 분야의 석ㆍ박사 과정을 수료한 정통파 가객으로 전국 경연, 또는 전문 악단과의 협연(協演), 그리고 개인 독창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현재에도 많은 제자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계면조 평롱-平弄>과 이 노래를 불러 준, 가창자들을 소개해 본다. <계면조 평롱>이란 악곡은 앞에서 소개한 <이수대엽>이나 <중거>, <평거>, <두거> 등의 악곡 이름과는 다르게 <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강권순 가객을 중심으로 해서, 그가 지도한 김승란, 이기쁨과 함께 3인의 제창으로 부른, 계면조 <평거>를 소개하였다. 평거(平擧)의 노랫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굴원(屈原)의 충절을 노래하는 <초강 어부들아>가 대표적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 시작은 제4박에서 하는 형태라는 점, 김승란, 이기쁨은 각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각종 경연대회의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며 여러 차례 개인 발표회를 열어 온 현역들이란 점, 이들은 여창 가객의 대명사, 월하 명인을 기리는 자리에, 함께 참여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앞으로 더더욱 정진하겠다는 소감도 전하였다. 이번 주에는 <계면 두거>의 악곡과 이를 함께 제창한 이승윤과 그의 제자들인 홍윤수, 이슬기 가객을 소개한다. 먼저, <계면 두거>는 어떤 악곡일까? 그 이름에 보이는 <계면-界面>이란 말은 <계면조-界面調>를 줄인 이름이며 악조(樂調)의 성격을 뜻하는 용어다. <두거-頭擧>라는 말은 악곡의 이름이다. 다시 말해 여창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악곡의 하나로 <중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는 여창가곡 관련 이야기로 월하 명인의 이수자 14명 가운데 김영기, 이승윤, 조일하, 황숙경, 강권순, 변진심, 김윤서 등 7인의 이야기를 해 왔는데, 이번 주부터는 제2부 순서에 등장한, 이수자들의 후배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부른 악곡들을 중심으로, 관련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당일 제2부의 첫 순서는 강권순 가객을 중심으로 해서, 그가 지도한 김승란, 이기쁨과 함께 3인의 제창으로 부른, 계면조 <평거>를 소개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평거(平擧)라는 노래는 <중거-(中擧)>와 함께 여창가곡의 첫 곡, <이수대엽>의 변화곡이다. 예전에는 <막 드는 자진한잎>, 또는 <막 내는 자진한잎>이라고도 불렀는데, <자진 한 잎>이란 삭대엽의 순수한 우리말 표현이다. 그 이름에서 <든다>, 또는 <낸다>라는 말은 망설임이나 격식을 의식하지 않고, 시작을 쉽게 한다는 의미로, 선율의 흐름으로 보면, 처음이나 중간부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막 들어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계면 <평거&g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월하 여사의 유업(遺業)을 이어받고 싶다는 손녀, 김윤서 가객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였다. 학생들에게 실기지도를 하면서도 <월하문화재단>의 정기공연과 특별 연주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밖에 고령화되는 노인과 가족들에게 예술로 치유하는 치매 예방을 돕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온 그는, 늘 월하 할머니를 생각하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더 다정하게 정성껏 보살펴 드린다고 했다. 월하 할머니는 가곡이나 시조창의 아름다운 선율이 온몸에 스며들어 있어 선한 마음을 지니고 사셨다는 이야기, 그래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장학금도 주시었으며, 당신의 그 재능뿐 아니라, 전 재산을 국악계에 기부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왔다는 이야기, 그러나 자신은 재능도 능력도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할머니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다는 이야기도 소개하였다. 그 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윤서가 전하는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불우한 어린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면서 지내왔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굿 네이버스>를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4>를 소개하였다. 대학 2학년 겨울, 할머니가 혼자 팥죽을 드시다가 옹심이가 목에 걸려 급히 응급실로 갔으나, 회복이 바로 안 되어 1년여 고생 끝에 1996년 1월 1월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 월하 선생은 평소 제자들에게 다정다감하였으나 노래를 지도할 때에는 매우 엄격했으며, 특히 자세나 태도에서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이야기, 손녀 김윤서는 <정가악회(正歌樂會)>와 관련 활동을 해 오던 중, 전통가곡 음반으로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2019년에는 <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월하 여사의 유업(遺業)을 이어받고 싶다는 손녀, 김윤서 가객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국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실기지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월하문화재단>의 정기공연과 특별행사, 기타 각종 크고 작은 연주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특별한 활동이 있다면, 그것은 2024년~올해까지 3년 차 문화로 치유하는 지원 사업, 「마음치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으로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앞에서 부채춤도 추고, 할머니의 흉내도 내면서 재롱을 부려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렸다는 이야기, 교육 연수원에서 청중들에게 시조창을 지도하실 때 할머니의 멋진 모습은 잊을 수가 없으며, 할머니는 항상‘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이야기, 제자들을 지도하실 때도“ 악보에서 눈을 떼고, 내 입모양을 보면서 손으로 이어가는 박자의 한배를 잘 보라”고 하시던 모습들이 기억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이어서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하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4>로 이어간다. 윤서 가객이 전하는 말이다. “제가 대학 2학년 말, 겨울이었어요. 외부 행사를 마치고 귀가해 보니,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는 거예요. 이유는 혼자서 팥죽을 드시다가 팥죽 속에 옹심이가 목에 걸려 주위의 도움으로, 급히 응급실로 가셨는데, 다행히 위급사항은 면했지만,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회복이 바로 안 되셨다고 합니다. 그 뒤, 1년여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1996년 1월 1월 익산 원불교에서 작고하셨습니다. ” 손녀, 김윤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할머니와 손녀딸’로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도 살아온 젊은 가객, 김윤서를 통해, 월하 여사의 일상(日常)과 근검절약 정신, 사회 이바지, 곧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장학금 지원, 원불교 기도원 신축 기금, 특히 <월하문화재단>의 설립을 위해, 전 재산을 쾌척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의 신문 방송들이 “바느질, 공연 수입으로 모은 재산, 사재 털어 문화재단 설립”, “인간문화재 김월하 씨, 후진양성 50억 희사”, ”평생 모은 전 재산, 후학 위해 내놓아“, ”바느질삯, 강사료 아껴 수십억 원 전 재산” 등등으로 대서특필했다는 이야기, 등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 어린 시절,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노래나 흉내 내기 등, 재롱잔치를 펼쳤던 경험이나 일화가 있다면? “낙원동에서 살 때인데, 아래층에 국악학원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민요창, 대금소리, 또는 춤 반주 음악 등등이 다양하게 들려왔지요. 어느 날, 그 학원에서 버린 소품들을 가지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할머니 앞에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월하 여사의 손녀, ‘김윤서가 들려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1>’을 소개하면서 할머니는 근면한 생활태도와 선(善)한 심성(心性)의 소유자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할머니는 잘못했을 때, 특히 늦게 귀가할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하며 평생, 근검절약을 일상에서 실천해 오신 경험담도 일부 소개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도 글쓴이가 묻고, 명인의 손녀, 김윤서가 당시 경험을 소개하는 형식의 월하 명인 이야기 <2>를 진행한다, - 월하 선생의 근검절약은 널리 알려진 미담이다. 관련하여 일상에서 경험한 실례가 생각난다면? “휴지 한 장, 빈 상자도 재활용하셨고, 버릴 물도 여러 번 거치고 거쳐서 쓰신 다음, 마지막으로 버리시고, 휴지를 써도 일일(一日) 달력을 뜯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쓰셨지요. 흔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몸이 불편하다’거나 특히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자기를 위해서 택시를 타시는 경우가 있지 않겠어요? 또는 좋은 옷을 사서 입거나, 맛있는 비싼 음식도 드시고 싶지 않겠어요?. 월하 선생님, 아니 우리 할머니는 이런 것들이 일체 허락되고 용납되지 않으셨다니까요.” 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산책로에서 만나게 된 월하의 시조(時調)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정가의 명인, 김월하 여사가 시조와 만나게 된 인연, 그리고 동호인들을 통해 정가계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 배경을 소개하였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삯바느질 일을 하다가 위궤양을 앓게 되었고, 위기는 넘겼으나,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매일 새벽, <구덕수원지>에 올라, 새벽 운동을 하며 시조창 동호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을 통해 당대 유명한 사범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랬다. 당시, 30대 중반의 월하 여사는 피난민이자, 환자였고, 매일 새벽 산책길에 나서며 동호인들과 만났다. 또한 그들을 통해 시조창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가(正歌)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었기에 훗날 그가 으뜸 명인 자리(예능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까지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은 전혀 계획되고, 준비되었던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가 노력한 결과는 인정되어야 했고, 그 위에 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