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중지하라! 중지하라!” 하치스카의 관선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구루시마 대장선을 기다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다리를 타고 관선으로 오르려던 포작선의 어부들도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우릴 그냥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군선을 젓는 포로로 쓸모가 있잖아.” 구루시마의 거대하고 화려한 아타케부네가 당도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육중하고 황홀하기까지 한 대형 건물 선박이었다. 도대체 저런 누각을 선박위에 설치하는 것은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어부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격한 아타케부네에 대하여 압도 당하고 있었다. 사실 이 초대형 아타케부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을 위하여 건조한 전함이었다. 전투를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시용 선박이었던 것이다. “달아나는 포작선에는 누가 탑승하고 있느냐?” 구루시마의 질문에 하치스카는 갑판으로 바싹 다가서서 귀를 기울였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 놈입니다.” “놈의 신분을 확인 했느냐?” “아닙니다.” “그런데 포격을 하려고 했던 것이냐? 다른 작자들이 항복을 하고 있는 마당에 죽기를 작정하고 달아나는 놈이라면 더욱 더 생포해야 한다. 반드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준사는 포작선을 끌어왔던 어부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럼, 나리께옵서는?” “모두들 일관되게 진술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강요로 바다를 살피러 나왔노라고 말하라. 너희들은 단순한 어부들이다. 혹여 고문에 못 이겨서 귀선을 토설하게 된다면 본 대로 자백하라. 침몰하였노라고. 난 그들과 끝까지 대항하다가 죽을 것이다.” 어부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들이었다. “자, 어서 다른 배로 올라들 가거라. 너희들은 항복하게 되면 일반 어부들이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격군으로 이용하겠지. 일본 군선의 포로가 되어 일본 놈들의 노를 젓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싫다면 나와 남아도 좋다. 하지만 반드시 죽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어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다른 포작선으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어부가 준사를 지그시 바라다보았다. “내게 할 말이 있는가?” 늙은 어부는 바다에서 온갖 풍상을 겪어온 듯 주름살이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깊이 패여 있었고 안색 역시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항복을 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도 있고, 목숨이 연장되면 탈출의 기회도 생기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나리, 소생은 두 번씩이나 적의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과연 귀신같은 배로군.” “ 귀신이 아니라 거북이여. 물속과 육지를 마음대로 오고가는 거북이 귀선.” 김충선 역시 정도령에게 사용 방법에 대하여 설명만 들었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귀선이 완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으니 적들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다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아지가 으스대며 답변했다. “그야 간단하지. 하판의 물을 다시 외부로 뽑아 버리면 되는 것이지.” 군관을 비롯한 상판의 전원은 쉽게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이론은 맞는 것 같았다. “자, 이제부터는 조용히! 숨을 쉬는 것도 조절해야 한다. 적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자. 눈을 감고 평정을 유지하라!” 김충선의 지시에 따라서 상판의 전원은 고요한 적막 속으로 몰입되어 갔다. 이 순간 일본 관선의 하치스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전방에 이상한 물체가 어른거렸는데......?” 부하들은 달아나고 있는 두 대의 포작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포격을 가할까요?” “좀 전에 이상한 괴 형체를 보았느냐?” 하치스카는 관선 세키부네를 관장하는 장수였으므로 직관력이 일반 수병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긴장된 얼굴의 서아지와 군관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군관 한 명이 두려움에 잠긴 목소리를 꺼냈다. “장군, 귀선은 반잠수정이라서 일본 관선의 눈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지요.” 서아지가 입술을 씹었다. “그럼 방법이 있는가?” “일본 놈들을 한 놈이라도 처 죽이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김충선이 군관에게 조용히 지시했다. “격군들을 즉각 상판으로 모이도록 하게. 한 명도 빠짐없이!” 군관은 즉시 계단으로 더듬거리면서 내려가 소리쳤다. “모두 상판으로 집합하라! 적과의 백병전에 대비한다. 장비를 점검하라!” 삽시간에 귀선의 철갑 내부의 상판에는 격군과 수병 등이 가득 들어찼다. 그들은 위기를 직감하고 있는 듯이 저마다 병장기를 움켜쥐고 불안과 초조, 공포의 시선들을 던지고 있었다. “우린 적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김충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선의 상판에 모여 있던 수병과 일반 격군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귀선과 포작선을 발견한 왜적의 관선이 무섭게 쇄도해 오고 있지 않았던가. “그럼 그냥 죽는 겁니까?” “도주할 수도 없으니까.” 반잠수정인 귀선은 당연히 속도가 느렸다. 그 때문에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의 화려한 아타케부네에서 긴급한 신호 깃발이 펄럭였다. 붉은 적색의 깃발이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공격용 나팔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관선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우릴 발견한 것이 분명합니다.” 포작선의 수병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떠들었다. 김충선 역시 사태의 위급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일본 함대가 가덕도 근해에서 부산으로 향하려는 우리 함대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서 이 사실을 통제사에게 아뢰어야 한다.” 일본 함대의 거대한 출몰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김충선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작선으로 달아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알고 있다.” 준사가 경직된 얼굴로 김충선을 마주 보았다. “대장, 우리만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장군과 그 함대가 몰살당할 판이 아니요. 그래서......” “어찌 하자는 것이냐?” 준사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사야가 김충선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미소의 의미를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준사는 고향 친구였다. 같이 해변을 벌거벗고 달리고 바다를 향해 누구의 오줌발이 센 것인가를 겨누었던 오래 된 친구였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내가 더 살아야 한다.’ 자신의 권좌를 반드시 오래도록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때문에 후계로 삼았던 조카 도요토미 히데츠구를 제거하는 패륜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널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 일지라도 애비는 감당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양자로 삼았던 조카를, 지금 품안에 안겨있는 친 혈육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위해서 모반죄로 할복자살 하도록 한 것이다. 누나의 자식을 개인의 영욕을 위하여 이용하고 참혹하게 버린 비정의 권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치부로 기록되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번쩍 아들 히로이마루를 들어 올렸다. “너에게 반드시 조선을 선물로 주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妄想)은 아직도 멈춰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구루시마에게도 메아리처럼 멀리서 울려오는 것처럼 들렸다. 착각이었을까? 구루시마는 잘려나간 두 다리의 발가락이 몹시 간지럽게 느껴졌다. * * * 구루시마는 흔들리는 뱃전에서 담요를 덥고 있는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보았다. 끔찍한 그 날의 장면이 회상 되었다. 명량의 울부짖던 절망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소장 구루시마가 굴욕을 안고 돌아왔나이다. 용서해 주옵소서.” 요도도노는 눈망울 가득 애처로움을 담아냈다. “다리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어요. 어서 치료를 서둘러야 해요.” “소장의 몸속에 피가 모두 마를지언정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내와 아들이 등장하자 구루시마에게 명령했다. “오늘은 물러가서 치료를 받아라. 출정은 예정대로 추진한다.” 요도도노는 아들 히로이마루의 손을 잡으면서 재차 강조했다. “히로이마루가 아직 5살에 불과합니다. 만일 태합께서 조선으로 무리하게 출병 하였다가 어떤 변고라도 발생 된다면 우리 모자는 어찌 되는 겁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다이로(일본어: 五大老) 제도를 두지 않았소. 다 섯 명의 다이로들이 당신과 히로이마루를 지켜줄 것이요. 안심하구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설립한 합의제도로 고다이로는 다음과 같다. 간토(関東, 현 도쿄도)지역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가(加賀, 현 이시카와 현)지역의 마에다 도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에 몸소 참전 하리라 결심했다. 사실 조선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도 않은 나라였다. 명나라를 취하기 위하여 건너야 할 징검다리쯤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은밀히 조선을 염탐하였던 간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조선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었다. 조선 조정은 당쟁의 파벌이 극심하였고, 중국을 무조건 숭상하는 사대주의에 몰입되어 있었으며 임금은 권위에 함몰되어진 짐승과도 같았다. 1589년 기축년에 발생했던 정여립의 대동계(大同契) 사건은 역모라 하여 무려 일천 여명이 희생당하였다. “그런 썩어빠진 나라는 단숨에 거덜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잔뜩 꼬여있는 실타래를 손아귀에 들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의병이라니! 조선 수군의 이순신이라니!” 명나라의 참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복병은 항상 의외로 출몰하여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돌출해 내었다. 지금의 경우라 그러했다. “지난 6년 간 조선을 공략 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출전 할 것이다.” 구루시마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정하소서. 태합, 이순신과 조선을 소장에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시작하자.” 김충선의 명령에 따라서 서아지와 준사가 배 위로 갈고리를 던져 걸었다. 이울과 고진규, 박정량과 장승업의 모습도 항왜들 틈에 섞여 있었다. 그들 항왜들은 배와 배 사이를 오고가면서 드디어 화약과 병기를 잔뜩 쌓아 둔 무기선(武器船)을 찾아냈다. “개새끼들, 국 끓이려고 감춰두나.” 항왜들은 순식간에 화약과 병장기 등을 줄로 묶어서 귀선으로 내렸다. 아래에 있던 이울과 의병들은 재빨리 귀선으로 차곡차곡 쌓았다. “한 번 더 와야겠다.” “재미나네. 도적질!” 그믐의 달빛은 귀선을 닮아 있었다. * * * “전 함대 출정하라!” 개벽호를 중심으로 13척의 판옥선이 우수영을 출발했다. 광해군은 이순신의 함선에 동승했다. 출발하기 전에 이순신은 광해군을 안전한 판옥선으로 먼저 안내했다. “신의 배는 언제나 가장 선두에 있어야 하므로 위험합니다.” “내가 안전과 안락을 위해서라면 왜 함선을 선택했겠소. 장군은 날 염려 마시오. 장군이 평소 하던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광해군은 굳이 이순신의 배를 원하였다. 일당백 원사웅은 광해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승선 하였고 장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장예지는 이번에도 김충선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세자 저하께서 이런 험난한 전쟁터까지 몸소 방문하시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진린은 평범해 보이는 체격이었으나 인상은 강직해 보였다. 약간 구부러진 매부리코에 입술은 신념이 강해 보이는 일자형이었고 눈 주변에는 살이 두툼하였다. 웃을 때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광해군이 답례하였다. “조선을 위하여 멀리 출병 하시어 얼마나 노고가 심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진린은 광해군이 선물로 가져온 술과 마른 해삼, 육포 등을 받아 챙기고 일행을 접견실로 안내했다. 이미 이순신과 정도령은 진린과 회담을 나눈 적이 있는지라 즉시 현안에 대해서 의견 교환에 돌입하였다. 광해군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진제독이 도움을 주시기로 약속 하였다 들었소이다. 언제쯤 실현이 가능하시겠습니까?” 광해군의 직설적인 화법에 진린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부총병 유정이 대신 나섰다. “화약과 병기를 제공하는 것은 본국의 허락을 필요로 하는 사안입니다. 진제독께서는 조선 출병이 처음이시라 그런 지침을 모르시고 수락을 했던 것이지요.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핑계는 거창하였다. 이순신이 진지한 어조로 꼬집었다. “제독은 수군의 총책임자이십니다. 전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