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서울 의료의 역사를 집대성한 서울역사총서 제13권 <서울의료사>을 발간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급변하는 의료환경의 역사를 고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그동안 행정·건축·교통·상공업·인구·재정·항일독립운동·공연예술·재해·사회복지·체육·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로 ‘서울역사총서’를 발간해왔다. ‘의료’는 질병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과 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의료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그 범주와 성격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서울역사편찬원에서는 서울 사람들이 시대의 제약이라는 한계 속에서 질병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 제약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활동들을 펼쳐왔는지를 <서울의료사>에 담고자 했다. <서울의료사>는 시간 순서에 따라 총 4권으로 구성했다. ▴1권 ‘현대 이전의 서울의료’(고대~일제강점기) ▴2권 ‘광복과 서울 의료의 변화’(광복~1976년) ▴3권 ‘의료보험 실시와 서울 의료의 성장’(1977년~1999년) ▴4권 ‘의약 분업과 새로운 의료환경의 등장’(2000년 이후~)로 나누어 서울의 의료사 전반을 다뤘다. 2권과 3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누구에게나 뜨겁지만 어두웠던, 손에 잡힐듯하면서도 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의 한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결정적 한순간’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하나이다. 에르지는 부유한 사업가인 졸탄과 이혼 후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중산층의 교육을 받고 자란 미하이와 재혼한다. 이탈리아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미하이의 옛 친구 세페트네키를 만나고 미하이는 끝이 보이지 않았던,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 걸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되며 풀지 못 했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미하이는 부인 에르지를 혼자 내버려 둔채 혼자 움브리아와 토스카나 지역을 여행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사랑과 죽음을 모티프로 하여 주어진 순간의 선택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각기 다른 태도, 과거를 각색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을 미하이와 에르지 그리고 제3자의 시점에서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암자에서 종이 운다 - 함민복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은 종이 속으로 울기 때문이라네 외부의 충격에 겉으로 맞서는 소리라면 그것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일 뿐 종은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 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 그렇게 종이 울면 큰 산도 따라 울어 큰 산도 종이 되어주어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간다네 오래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지만, 그 가운데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듣고는 다른 종소리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는 장중하면서도 맑은소리와 유난히 길면서도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어 듣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독일 고고학자 켄멜은 이 종을 일컬어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으뜸 종”이라고 평했다.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윗부분에 있는 음관(音管)과 종구(鐘口) 바로 밑에 파인 명동(鳴洞)이라고 한다. 음통(音筒) 또는 용통(甬筒)이라고도 하는 음관은 종의 음질(音質)과 음색(音色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피 붙 이 - 김상아 서녘 하늘이 아련히 물 들면 아내의 손을 잡습니다 먼 곳에 아내 모르는 깊은 그리움 하나 있습니다 새소리가 처연히 들려오면 아내와 산길을 걷습니다 내겐 들꽃 씨 같은 여문 그리움이 있습니다 콧등이 시려와 아내를 꼬옥 안습니다 가여운 내 업 하나가 찬 바람에 나뒹굽니다 아내가 알지도 모릅니다 내 핏줄 속으로 애달픈 그리움이 흐른다는 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선당! ‘착한 성품을 기른다’라는 뜻의 자선당은 세종이 큰아들인 세자 ‘향’에게 선물한 세자궁이었다.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러나 자선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궁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며 궁궐이 불탔고, 이때 자선당 또한 주춧돌과 기단석만 남은 채 모조리 불타버린 까닭이다. 우리아가 쓴 이 책, 《돌아온 자선당 주춧돌》은 세종이 세자를 위해 지은 ‘자선당’에 쓰였던 주춧돌이, 임진왜란 때 화재에 불타고 고종 때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일본에 실려 가는 수모를 당하는 신산한 세월을 겪은 끝에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자선당이 다시 지어진 것은 수백 년이 지나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였다. 자선당이 완공되며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자선당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시기도 잠시, 결국 순종은 일본의 위협에 자선당을 지키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p.35)자선당 터로 흥선대원군이 신하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지어라. 세자궁은 조선의 미래이다.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조선을 넘보려고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늦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이런 날엔 시집이 읽고 싶다. 그 누구의 시집이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를 쓴 사람은 손선아 시인이다. 아! 벌써 그녀가 환갑의 나이를(?) 하며 책장을 연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한다” 라는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침묵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첫 시집을 낸 이후....사느라 바빠서, 개점휴업, 장기간의 코로나, 게으름의 늪, 갑작스레 닥친 친정어머니의 죽음,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등의 사연이 있어 두번째 시집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공감 모드다. 친정어머니의 죽음까지 어쩌면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과 같을 수가 있을까? 듣고보니 손선아 시인의 ‘개점휴업’ 이유가 명색이 시인인 내 삶과 닮은 것 같다. 그래, 누구든 비슷한 삶을 사는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를 읽어 나갔다. 행간을 살피며 시를 감상해 나가는 동안, 나는 손선아 시인이 ‘명색이 시인’인 나와 다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글을 쓴 손 시인의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말글을 아끼고,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 편지>를 쓰기 시작하여 올해로 4,800회(19년째)가 넘었다. 그러나 아직 목이 마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한국문화’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교과서 같은 한국문화를 벗어나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그러면서 재미난 한국문화를 다룬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한류를 꿈꾸는 이들이 ‘제대로 된 한국문화’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새 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를 쓴 김영조 작가의 이야기다. 공감한다. 사실 기자는 일본어 전공자이다 보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상당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그다음에 찾는 것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다. 한결같이 그들은 이갸기한다. ‘쉽고 재미난 한국문화 책’을 소개해 달라고 말이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자 그동안 기자는 수없이 대학도서관이나 서점에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을날 맑아 - 나태주 잊었던 음악을 듣는다 잊었던 골목을 찾고 잊었던 구름을 찾고 잊었던 너를 찾는다 아, 너 거기 그렇게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가 좋은가 나도 여기 그대로 있단다 안심해라 손을 흔든다. 지난 9월 말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를 맞았다. 그런데 온갖 펼침막이나 광고판에는 ‘한가위’보다는 ‘추석’이란 말이 많이 보였다. 심지어는 ‘秋夕’이라고 한자로 써 놓기도 했다. 그 유래가 어디서 왔건 버릇처럼 ‘추석을 되뇐다. 늘 하는 말이지만, ‘추석’이라는 말은 5세기 송나라 학자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 나온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추석월”은 천자가 가을 저녁에 달에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명절과 잘 맞지 않는 말이 아니던가? 그에 견주면 ‘한가위’는 ‘크다’라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인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나라 안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음력 7월 열엿새 날부터 8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한국외국외국어대학교 서울 이문동캠퍼스에 가니 학생들이 “韓國外大”라고 한자로 쓰인 점퍼를 입고 다녔다. “韓國外國語大學敎”라고 전체를 다 쓴 것도 아니고 줄여서 쓴 한자를 학교가 아닌 밖에서 보면 중국인들도 잘 이해할 수가 없을 듯싶었다. 그냥 “한국외대”라고 쓰면 될 터인데 세계 공통어라고 할 영어도 아니고 굳이 한자로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지난 4월 17일에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의 우리문화편지에 고등학교 야구 중계에 나온 선수들의 운동복에는 학교 이름이 한자로 쓰인 것을 꾸중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면 ‘全州’, ‘慶北高校’라고 한자로 쓴 운동복이 아니던가? 김 소장은 이 글에서 “운동복에 학교 이름을 쓰는 것은 자기의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리려는 뜻일 텐데 굳이 한자로 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학교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세계 으뜸 글자라는 한글을 가진 겨레가 이렇게 스스로 얼빠진 짓을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 전 우리는 제577돌 한글날을 지났다. 이때 많은 행사를 하는데 그런 정신으로 행사만 하면 무엇할까? 제발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