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그래미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랜 역사와 기록, 음악인들의 평가와 상징성은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다만 그래미가 세계 음악의 유일한 문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마침내 변화하고 있다. 2026년은 그런 의미에서 그래미에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권위는 전통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위는 매년, 매 순간 새로운 시대의 마음과 만나며 다시 질문받는다. 그것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가보다, 얼마나 다양한 음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자신의 분류가 새로운 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창작자의 자유와 대중의 감응을 충분히 품고 있는가에 따라 권위 역시 새롭게 의미를 얻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BTS의 선택은 단순한 거부나 대립의 사건으로만 읽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어느 한 제도를 부정하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만나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하나의 조용한 선택(善擇)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청년 음악가들의 새로운 자기성찰이자, BTS 자신에게도 한 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역사에는 때때로 세계적인 상을 받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8. 한국의 새로운 실험 ― ‘패노메논‘과 상의 방향을 바꾸는 문화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제도적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6년 7월 발표된 ‘패노메논(FANOMENON)‘ 계획은 팬(Pan)과 현상(phenomenon)을 결합한 이름 자체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적 방향을 보여 준다. 곧 새로운 팬덤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현재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2027년 12월 2일부터 12일까지 서울아레나와 고양 킨텍스에서 K팝 공연과 팬덤 시상,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등을 결합한 대형 K컬처 행사가 추진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팬덤을 시상하는 발상이다. 계획에 따르면 한 해 동안 가장 영향력과 열정을 보여 준 팬덤 공동체를 선정하고, 해당 예술가가 팬을 대신하여 상을 받는 새로운 방식이 구상되고 있다. POP 음악 수입국에서 K-POP 문화 발신국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상의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기관이 가수에게 상을 주고, 가수는 팬에게 감사했다. 새로운 구상에서는 팬의 활동과 문화적 이바지가 하나의 상의 대상이 되고, 가수가 팬을 대신하여 그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4. 디즈니 10년 계약과 ‘주의력의 경제‘ 그래미를 둘러싼 변화는 상징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래미는 2027년부터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맞는다. 레코딩 아카데미와 디즈니의 10년 글로벌 계약에 따라 그래미 시상식은 2027년부터 ABC를 비롯해 Disney+와 Hulu를 통해 방송ㆍ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이 계약은 2036년까지 이어지는 장기적 미디어 협력이다. 이것은 단순히 텔레비전 채널이 바뀌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상식의 값어치는 상패와 방송 시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청률, 스트리밍 가입, 검색량, 소셜미디어 대화, 짧은 영상의 확산, 세계 팬덤의 실시간 참여가 모두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 된다. 따라서 BTS의 불참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거액의 위약금이나 특정 손실액을 성급히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수치는 공식적 계약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손실의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늘날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주의력과 감응의 집중이다. BTS와 ARMY가 만들어 온 실시간 검색, 공유와 번역, 스트리밍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숫자로만 환산하기 어려운 거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1.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진 경계 레코딩 아카데미는 2026년 6월 16일, 제69회 그래미부터 새로운 부문인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 부문은 K팝ㆍJ팝ㆍC팝 등을 포함하여 아시아 시장에서 형성되거나 널리 인정되는 현대 대중음악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한 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작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다만 공식 규정은 연주자의 인종이나 국적이 아니라 음악적 양식과 작품의 특성이 자격 판단의 중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점은 비판할 때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이 제도를 단순히 「아시아인을 따로 격리한 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의도는 공식적으로 아시아 팝 음악의 규모와 예술성, 세계적 영향력을 인정하기 위한 새로운 조명에 있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더 깊은 철학적 문제가 시작된다. ’선의의 포용이 언제 새로운 경계가 되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음악의 성격과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지역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얼마전 BTS는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것은 상을 주는 기관이 가수를 선택하고, 가수와 대중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구조를 깨는 조용한 전도(轉倒)가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손병철 박사는 그 현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를 몇 차례로 나눠 싣는다.(편집자말) 오랫동안 그래미는 세계 대중음악의 정상에 가까운 권위를 지녀 왔다.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회원과 그 제도는 작품을 분류하고, 후보를 정하고, 수상자를 골랐다. 음악인들은 그 제도의 문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했고, 수상자는 그래미라는 상징적 권위를 통하여 자신의 음악적 지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 질서는 기본적으로 수직적이었다. 상을 주는 기관이 가수를 선택하고, 가수와 대중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구조였다. 물론 가수에게 출품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고 팬에게 비판할 자유가 있었지만, 세계 대중음악의 오랜 상징질서 속에서 그래미는 오랫동안 ‘선택하는 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2026년 여름, 이 오래된 방향에 하나의 조용한 전도(轉倒)가 일어났다. 제69회 그래미를 앞두고 방탄소년단(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지난해 11월 네팔에 다녀와 <네팔 랑탕(NEPAL Langtang) 캉진리 등정기>를 연재중인 안동립 기자(동아지도 대표, 옛 조선유적답사회 회장)의 최근 네팔의 산사태 소식을 접하고 긴급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편집자말) 최근 다녀온 랑탕 계곡과 샤프루베시 일대가 이번 산사태 피해 지역에 포함되었다. 최대 피해지인 라수와가디 하류인 샤프루베시까지는 약 15km에 불과해, 대량의 토사와 빙하, 물이 섞인 흙더미가 순식간에 계곡을 덮쳐 큰 피해를 보았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아찔하다. 지난 '캉진리 등정기(2025년 11월 18일~28일)'를 작성할 당시, 랑탕 계곡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구간'들에 대해 본문 중 일곱 차례나 강조하며 경고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현장에서 느꼈던 그 불안정한 지형과 위태로운 기운이 결국 비극적인 현실로 다가와 마음이 더욱 중하고 안타깝다. '모두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everyone a safe return home' ▶ 길 주변에는 여러 곳의 산사태 위험 지역이 있는데, 특히 빙하수가 흘러내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교육부 장관님, 그리고 전국의 시도교육감님들께. 저는 마흔아홉 해째 우리말글 연구와 운동을 함께 해 온 사람입니다. 2014년 12월 17일, 저는 간송미술관의 각별한 배려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570년 세월을 견뎌 온 종이와 먹빛 앞에서 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학술 책임을 맡아 2015년 10월 9일, 역사상 처음으로 해례본 복간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교보문고). 2023년에는 세종 시대 언해본의 첫 복간본도 펴냈습니다(가온누리). 원본을 보고 복간본을 만드는 일에 여러 해를 쏟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끝내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이렇게 애써 되살려 놓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가르칠 선생님들은 이 책을 읽어 보신 적이 있을까. 오늘, 이 편지는 그 물음에서 나왔습니다. 학자로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길러내는 일에 책임을 진 분들께 학자로서 드리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1. 2026년,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습니까? 올해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 한글날을 처음 정한 지 100돌이 되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이재명 대통령님께 올립니다. 저는 1977년 철도고등학교 1학년 재학 시절 한글 운동에 발을 들인 뒤로 올해까지 마흔아홉 해를 한글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해에 한자식 이름을 버리고 ‘슬기롭고 옹골차다’라는 뜻의 토박이말 이름 ‘슬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뒤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세종을 공부하는 일로 세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고, 150편의 논문과 백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이러한 학술 공로로 2021년에는 세종문화상 대통령상도 받았습니다. 올해 2026년은 우리 겨레에게 세 겹으로 뜻깊은 해입니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이 되는 해이자, 1926년 ‘가갸날’을 선포하여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돌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우리말글 중흥 시조라 일컫는 주시경 선생 탄신 150돌이기도 합니다. 문자를 만든 임금의 뜻과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그 문자를 기려 겨레의 얼을 지키려 한 선인들의 뜻이 한 해에 겹쳐 있습니다. 이런 해에 대통령님께 꼭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 이렇게 공개편지를 씁니다. 1. 어떤 작품인가? 한글 서예의 큰 어른이신 청농 문관효 선생께서 두 폭 병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은 올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동기를 놓고 벌어진 학술 논쟁이 뜻밖의 자리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로 포털 기사 아래 ‘댓글난’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7월 22일 ‘세종의 훈민정음, 백성 위한 게 아니었다? 한글날 100돌에 불거진 불편한 논쟁’(최다원 기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펴낸 《한글, 불편한 진실》(푸른역사)의 주장과, 이에 대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객원교수)의 반론을 서면ㆍ대면 인터뷰로 나란히 배치한 기획이었다. 강 교수는 한문학과 서지학 분야의 대중 학술서로 매우 권위 있는 학자이고 김 교수는 고1 때부터 49년 동안 한글운동을 해온 저명한 한글운동가자 한글 관련 박사학위 세 개와 130권 저술(72권 공저), 논문 150편을 발표한 세계적인 한글학자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세종이 즉위 2년(1420)에 ‘부민고소법’을 폐지해 백성이 관의 수탈에 항의할 길을 막았고, 훈민정음을 편 뒤에도 백성이 글자를 익힐 기회를 제도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훈민정음의 본질은 ‘훈민(訓民)’ 곧 백성에게 복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30여 년 동안 강의하면서 한결같이 지켜온 평가 원칙이 하나 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보고서는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무조건 '씨뿔(C+)'부터 출발한다는 원칙이다. 학기 첫 시간에 미리 공지하고, 단 한 번도 예외를 둔 적이 없다. 그렇다면 기본을 지키지 않은 보고서란 무엇인가?. 보고서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크게 다섯 가지다. 이름 없는 보고서, 제목 없는 보고서, 날짜, 지도교수, 쪽수, 차례 등 기본 정보가 없는 보고서, 참고문헌을 안 밝힌 보고서 그리고 문단을 나누지 않은 보고서다. 그밖에 10쪽이 넘는 양인데도 스타일을 적용하지 않은 문서 등이다. 이름이 없으면 유령 보고서인 셈이고, 제목이 없으면 집에 문이 없는 셈이고 날짜, 지도교수 쪽수, 차례 등이 없으면 보고서로서의 족보 등의 기본 요건을 알 수 없는 격이고, 참고문헌을 안 밝히면 글도둑질이 될 수 있고, 문단을 나누지 않으면 생각의 흐름을 얼른 알 수 없어 읽는 사람이 불편하니 기본 글쓰기로서의 자격이 없다. 스타일 기능은 디지털 문서 작성의 기본으로 마치 종이 원고지로 말하면 원고지 기본 사용법과 같다. 가끔 내용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