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영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탐라의 하늘을 올려다보면》을 내셨습니다. 형수님이 – 김 시인이 대학 선배이시기에, 형수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김 선배는 2021년 12월 형수님과 함께 아예 제주로 내려가, 탐라의 곳곳에 발길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탐라의 자연에서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건져 올리셨는데, 이번에 이를 모아 시집을 내셨네요. 시집 첫머리에 나오는 선배의 말을 들으니, 김 선배가 제주에 온 또 하나의 목적은 예술 속에 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선배가 제주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답니다. 김 선배는 관동별곡처럼 선인(先人)들이 제주 경관을 노래한 시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찾을 수가 없었답니다. 현대에 와서도 제주 관련 시들은 많았지만, 놀랍게도 제주의 자연을 노래한 시가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김 선배님 말입니다. “내가 해보리라. 내가 노래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김 선배는 그러한 시를 짓기 위해 우선 제주의 지질을 연구한 책을 사서 읽었으며, 제주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설을 지나고 대설도 한참 지나 동지로 넘어가는 어느 날 비가 내린다. 쌀가루 같은 흰 눈이 아니라 눈물같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다. 아무 말이 안 나온다. 그냥 쓸쓸함 그 자체다. 포근함이 아니라 썰렁함이다. 마음이 차가워지며 문득 겪지도 않은 이별이 생각난다. 창문을 열어보니 한겨울에 웬 비 눈은 왜 비로 변했을까? 그대 없는 텅 빈 가슴에 찬기 서린 외로움, 사무친 그리움 한 줌 쓸쓸함마저 다가온다. ... 송태열, <겨울비> 중에서 20년 전 임현정이란 가수가 겨울비를 맞는 그런 마음을 노래로 잘 대변해 주었지.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아직도 철없는 나뭇잎들이 갈 곳을 잊어버리고 애처롭게 매달려 떨고 있는 이 겨울에 죄 없는 미물들의 딱한 신세가 다 지구를 마구 사용한 우리들의 잘못 때문이 아닌가? 가을에도 덥다가 갑자기 추워져 미처 떨어질 준비도 못 하고 겨울을 맞은 이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34)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사(政事)와 같은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한다…자못 모골이 송연해진다. 군주에게 부지런하게 일해야 한다고, 게으르면 망한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정도전의 기개가 매섭다. 심지어 건물 이름도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의 ‘근정전(勤政殿)’이니, 거기서 정사를 보는 임금은 자신도 모르게 태도가 엄정해지지 않았을까? 조선왕조는 문치 국가였다.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은 모두 시작(詩作) 능력이 출중했다. 시 짓는 솜씨가 문재를 판별하는 주요 기준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시를 쓰며 자라난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수 교양으로 시를 쓰고 읊었다. 조정에 출사한 최고의 문사(文士)들이 임금 곁에 머물며 늘 바라보는 장소가 경복궁이었던 만큼, 이들이 경복궁에 대해 지은 시문도 많이 남아 있다. 한문학자인 지은이 박순이 쓴 이 책, 《시가 흐르는 경복궁》은 경복궁을 주제로 옛 문인들이 쓴 글과 시에 지은이의 독창적인 관점을 덧붙인 책이다. 책에 실린 글이 모두 깊이 음미할 만하지만, 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님이 쓴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에는 조선의 도자기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백자철화끈무늬병 이야기도 나오네요. 술병의 경우 술을 마시다 남으면 허리춤에 차고 가라고 술병에 끈을 동여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백자철화끈무늬병은 이 끈을 아예 백자 속에 무늬로 집어넣었습니다. 그것도 진짜 끈이 달려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끈을 휙~ 그려 넣었습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청색 선을 미리 긋고 이를 따라 끈을 그린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어쨌든 끈은 한 번에 그렸을 것 같습니다. 처음 박물관에서 이 백자를 보았을 때, 이 끈을 그려 넣은 조선 도공의 해학에 감탄하던 생각이 납니다. 이 백자를 보고 어떤 사람은 넥타이 병이라고 하데요. 하하! 달리 보면 백자가 넥타이를 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백자 밑바닥에는 ‘니ᄂᆞ히’라고 쓰여 있습니다. 글씨체로 보아 끈을 그린 도공이 내처 바닥에 이 글씨를 쓴 것 같습니다. 뭘까? 자신의 서명인가? 아니면 ‘니나노~’ 하듯이 흥겨운 감정을 표출한 것일까? 하여튼 백자철화끈무늬병은 조선 도자기 가운데 가장 해학이 넘쳐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 기자가 아인슈타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세요?" 그러자 부인은 웃으면서 기자에게 말합니다. "아뇨 하지만 전 아인슈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가끔 우린 중요한 본질을 잃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선생님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평가를 통하여 가르침의 효과를 객관화하려고 노력하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자체가 매우 중요하니까요. 태산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상대성 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중요한 것처럼 우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집중하는 것보다 아이들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대단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버렸어 10대 초반에 질서도 안 지킨 놈들이 이제는 질서를 세우네 이제와 생각해 보니까 공부 안 하길 참 잘했네 공부는 안 했지만 난 넘 기특해 전교 1등도 날 보면 기겁해" 학교는 교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인 것이 맞습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의 12일을 보내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한 해의 달력을 보면 달마다 그 달과 같은 숫자의 날이 있다. 1월 1일, 2월 2일, 3월 3일... 12월 12일까지...이런 날들이 다 의미가 있는 날이 아니냐는 의문 겸 깨달음이 머리에 번쩍 떠오른다. 지난달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해서 연인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날이고(캐나다는 이날이 한국전쟁에 파병되어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한 추념의 날이란다. 이날은 빨간 양귀비꽃을 가슴에 꽂아 이들을 추모한단다), 10월 10일은, 요즈음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클 때는 쌍십절이라고 해서 1910년 중화민국이 건국한 날이다(중화민국은 대만으로 밀려가고 중국 대륙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 있어 쌍십절은 대만의 건국기념일이 되어버렸다). 이날 중국 식당에 가면 국기를 걸어놓고 축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9월 9일은 무슨 날일까? 흔히 1948년에 북한 정권이 수립된 날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3년 전에는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미군에 항복한 날이란다. 음력으로 9월 9일은 구중(九重), 또는 중양절이라고 해서 예전에는 명절로 즐겼다. 8월 8일은 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나누는 삶을 살았던 위인들.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싶고,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모르는 사람들과 좋을 것을 나눈다는 것은 그런 본능에 역행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그런 소유의 본능을 이기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있다. 그것이 출세에 크게 도움 되는 일은 아니었다. 복지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먼 옛날에는 빈부격차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고진숙이 쓴 이 책, 《아름다운 위인전》에 실린 위인들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김만덕, 이지함, 이헌길, 이승휴, 을파소 이 다섯 사람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자신이 속한 양반 사회나 가진 자들의 세계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위해 헌신했다. 책에 실린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감동을 주지만, 특히 더욱 눈길을 끄는 사람은 이헌길이다. 이헌길은 천연두(두창)에 걸린 어린 정약용을 구해낸 선비다. 이헌길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 감탄하는 정약용의 수많은 저작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길을 가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은 왜 사나요?" 하고 묻는다면, 뜬금없는 질문에 누구나 질색하거나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것도 각본에 짜인 문답이라면 몰라도 갑작스럽게 던진 말 한마디, 각자의 삶에 중요한 핵심이긴 하지만 실로 깊고도 난해해서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온갖 답이 나올 법도 하다. 예를 들면,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 “잘 살고 잘 먹기 위해 산다.” “죽지 못해 산다. “소풍 가듯 산다.” “애(자식)들 때문에 산다.” “한 편의 연극처럼 즐기며 산다.” “그저 물 흐르듯 바람같이 산다.” “산다는 것이 대수냐, 되는대로 살면 되지” “숨 쉬고 있으니까 산다, 숨 끊어지면 죽는 것이고.” 등등 무성한 답이 예상된다. 생각해 보면 “왜 사느냐?”에 대한 이렇다 할 정답이 없을 것 같고, “숨 쉬고 있으니까 산다.”라는 말에 제일 마음이 간다. 호홀지간(毫忽之間)이라고 했다. 누구나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모호한 상태에서 숨이 끊어지면 그날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늙어 자연사(自然死)하는 죽음이나 병들어 죽는 상황을 빼고, 요즘 텔레비전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지막 달력 앞에 선다. 회한과도 같은 바람이 분다 한 해의 시간들이 얼어붙는다 12월! 12월은 빙화(氷花)처럼 결정(結晶)한다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결정의 달 이어령 / 증언하는 캘린더 저도 올해 마지막 달 시간의 끝자락을 잡고 다시 섰습니다. 10월 한 달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11월도 휩쓸려 지나갔군요. 미처 한국의 가을, 기온이 높다가 갑자기 영하가 되어 가을의 잎들이 미처 단풍도 못 들고 다 얼어서 말라버린 이 가을을 느끼기 전에 초겨울로 접어들었지요. 올해의 끝 달을 맞아 서른한 칸이 그어진 12월 월력의 5간을 이미 보내고 이제 26간을 곧 채우면 훌쩍 2023년을 과거로 보내버리는 거지요. 서울의 가을을 보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서울에 있었다면 잘 보지 못하고 지나갈 일상들, 올해는 다른 데서 가을을 보고 온 셈이니 나중에 생각하면 올해 가을이 더 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해가 다 끝나 가니 다시 후회가 오는 거지요. 뭔가는 꼭 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올해 초의 기분을 시간이 안 맞춰준 것이지요. 결국 다시 빈손이 되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지난 시간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웃는 낯에는 함부로 대하기 힘든 힘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는 얼굴이라는 말처럼, 웃음에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는 유난히 웃는 표정이 많다. 얼핏 보면 근엄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은은한 웃음기가 배어있다. 이런 잔잔한 웃음기가 우리 문화유산을 보면 볼수록 매력 있게 만든다. 김은의가 쓴 이 책, 《웃음꽃이 핀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 문화유산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첫째 마당, ‘유형 문화유산 속 웃음꽃’에서는 그윽한 불상의 미소, 지붕 위 웃는 기와, 하회탈 등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웃는 표정을 다뤘다. 둘째 마당, ‘우리 그림 속 웃음 보따리’에서는 무덤 벽화, 민화, 풍속화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살펴본다. 셋째 마당 ‘무형 문화유산 속 웃음 바다’에서는 판소리와 탈춤에 나타난 해학적인 장면을 집어낸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세계 속 웃음꽃’으로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에서 나타난 웃는 표정을 조명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달신의 미소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길림성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