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일요일은 중복(中伏)입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장맛비가 자주와 뉴스에 불볕더위 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불볕더위가 오는 중복 때 우리 겨레는 ‘더위사냥’을 했는데 그 ‘더위사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이야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까지 동원해서 비교적 시원한 환경 속에서 살지만, 예전 사람들은 더위가 심해지면 ‘이열치열’로 ‘더위사냥’을 했습니다. 이열치열에는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과 일을 함으로써 다스리는 이열치열이 있지요. 먼저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은 뜨거운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용봉탕(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쓰고 봉황 대신 묶은 닭을 써서 만든 탕) 따위로 몸을 데워주어 여름 타는 증세를 예방해 줍니다. 그리고 일로 하는 이열치열은 양반도 팔을 걷어붙이고 김매기를 도왔다고 하지요. 그 밖에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 없었던 선비들은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위안으로 삼았고, 백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했지요. 그러나 여기 철학적인 더위사냥도 있습니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는 제자가 더위를 피할 방법을 묻자 “너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어려움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입니다.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뒤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뒤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합니다. 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지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천간(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ㆍ을축ㆍ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경일'이란 지지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키지요.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합니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인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합니다. 또, 최남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2대에 걸친 안동권씨 집안의 삼년상 일지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박물관 소장유물 《신추록》 1‧2권을 국역한 ‘전통생활문화 자료집’ 6호를 펴냈다. 이번 자료집은 조선 후기 안동권씨 추밀공파 권일형(權一衡, 1700~1759) 일가의 상장례 과정을 기록한 책인 《신추록》 1‧2권을 번역한 결과물이다. 신추록은 부모의 제례를 뜻하는 ‘신종(愼終)’과 조상의 제사를 의미하는 ‘추원(追遠)’의 앞글자를 딴 신추, 곧 상장례를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이다. 《신추록》에는 권일형 손자 권복(權馥, 1769~1836)의 상장례와 부인 함양여씨의 합장, 그리고 권복의 아들인 권직(權溭, 1792~1859)과 부인 동래정씨의 상장례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권복의 장례 때는 먼저 작고한 부인 함양여씨와 합장하기 위해 여주에 있던 함양여씨의 묘소를 수로와 육로를 이용하여 양주로 옮기는 면례(緬禮, 이장)의 과정도 나타난다. 부조금뿐만 아니라 음식ㆍ땔감ㆍ인력까지 현물로 부조 《신추록》은 초상(初喪)부터 장례의 마지막인 길제(吉祭)까지의 절차를 비롯하여 제물 진설도와 축문, 각 절차에 필요한 도구와 비용, 조문객 명단과 부조(扶助) 내역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보리식혜) 먼저 먹세”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6월령 일부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한째 “소서(小暑)”지요. 이 무렵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몰려오는데 이때는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지고, 비가 많이 옵니다.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낸 20일 정도 지난 소서 무렵은 논매기, 피사리를 해주며,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해야 하는 일로 바쁠 때입니다. 조선시대 문신 신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만든 책인 《상촌집(象村集)》에 보면 소서 때 15일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초후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에는 귀뚜라미가 벽에서 울며, 말후에는 매가 먹이 잡는 연습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보리와 밀도 먹게 됩니다. 특히 이때의 시절음식은 밀가루 음식인데 밀이 제맛이 나는 때라 국수나 수제비를 즐겨 해 먹었지요. 채소류로는 호박, 생선류로는 민어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일요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째 절기인 ‘하지(夏至)’입니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농촌에서는 하지 무렵 모심기를 서두르는데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었기에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면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지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기우제”가 무려 3,122건이나 나올 정도입니다. 기우제의 유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산 위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산에서 불을 놓으면 타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같이 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며, 연기를 통해 천신에게 기원을 전한다고도 합니다. 또 신을 모독하거나 화나게 하여 강압적으로 비를 오게 하기도 합니다. 부정물은 개, 돼지의 피나 똥오줌이 주로 쓰이지요. 전라도 지방에서는 마을 여인네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빌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짚으로 용의 모양을 만들어 두들기거나 끌고 다니면서 비구름을 토하라고 강압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용서받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아홉째 망종입니다. 망종(芒種)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는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느라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할 만큼 한해 가운데 가장 바쁜 철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체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또 전남 지역에서는 이날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이라 하여 풋보리를 베어다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다음 날 먹는 곳도 있는데 허리 아픈 데가 좋아지며, 그해에 병이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지요. 특히 이때쯤에는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햇보리를 수확하면 보리를 맷돌에 갈아 보릿가루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은 차츰 녹음이 우거지고 철 맞춰 내린 비로 보리와 밀 등 밭곡식은 기름지게 자라나고 못자리도 날마다 푸르러지고 있으나 남의 쌀을 꿔다 먹고사는 우리 고향에 풍년이나 들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농촌에서는 명년 식량을 장만하고자 논갈이에 사람과 소가 더 한층 분주하고 더위도 이제부터 한고비로 치달을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5월 22일 기사에 보이는 이즈음 풍경입니다. 오늘은 ‘소만(小滿)’ 24절기 가운데 여덟째 절기로 '소만'에는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찬다는 뜻이 있습니다. 소만 때는 모든 들과 뫼가 푸르른데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가을’이라고 합니다. 또 이 무렵을 '보릿고개'라고 하는데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목숨을 지탱하던 때입니다. 입하와 소만 무렵에 있었던 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곡우(穀雨)다. 곡우란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속담이 전한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었다.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다. 볍씨를 담그면 항아리에 금줄을 쳐놓고 고사를 올린다. 이는 개구리나 새가 와서 모판을 망칠 우려가 있으므로, 볍씨 담근 날 밤에 밥을 해놓고 간단히 고사를 올리는 것이다. 또 이날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데 땅의 신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몸에 좋다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청명(淸明)이고, 오늘은 예전 명절처럼 지냈던 한식(寒食)이다. 청명과 한식은 하루 차이이거나 같은 날이어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간다. 옛날에는 한 해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 (中元,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지에 성묘를 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청명(淸明)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주는 데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장화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다고 한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개구리가 칩거 생활에서 풀려나며 파안대소하네 반기룡 시인의 “경칩”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이지요. 원래 이름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 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했었는데 뒤에 한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 BC 157~141)의 휘(諱, 곧 이름)에 '啓'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 이것을 피하려고 비슷한 뜻의 '驚(경)'으로 바꾸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겨울잠 자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지요.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때임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