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시 제목 <비:주류>는 가운데 쌍점(콜론)이 있지만, 비주류(非主流)로 읽힌다. 그런데 사진 속에 첩첩이 술 운반상자들이 등장하면서 주류가 ‘술의 종류를 뜻하는 주류(酒類)가 아닌가?’라고 고개가 갸웃해진다. 주류 앞에 비(非)가 서니, 이제는 다시 주류가 아니라는 의미로 바뀌다가 쌍점을 의식하는 순간 비(非)는 주류와 등가를 이루는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바뀐다. 프랑스의 예술학교(Haute école des arts du rhin)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마르세유와 대전에서 3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나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가 자신도 ‘비주류’다. 작업노트에는, 제일 먼저 ‘술 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술을 운반하기 쉽게 담아 둔 주류상자를 일컫는 주류 운반업계 현장의 말이다. 술 짝은, 마치 관용어로 쓰일 때의 짐짝을 연상시킨다. 방해되어서 덜어버리고 싶은 대상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작가에게 술 짝을 나르는 일은, 예술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병행해야만 하는 생업활동이기 때문이다. 김기훈의 <비:주류>는 ‘예술적 노동과 경제적 노동 사이의 균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계 여러 지역을 하나의 ‘현장’으로 넘나들며 사진기자(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신웅재가 지난 4년 동안의 행적을 묶어 사진전 <긍적적(Optimistic)>을 연다. <긍적적(Optimistic)>은 2020년부터 코로나 기간을 지나는 동안 서울의 거리들을 찍은 사진들이다. 장소는 모두 서울이지만, 서울이 주제는 아니다. 물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만 거리 사진일 뿐, 사진의 분류 범주로 ‘길거리사진(스트리트포토)’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사진가 스스로 ‘주제도 없고, 파편적인 이미지’라고 말한 대로, 어떤 목적성이나 사진과 사진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각각의 사진들은 스크럼을 짜듯이 서로 어깨를 겯고 하나의 분위기를 이룬다. 쓰레기 더미, 무너진 스티로폼 상자 무더기, 건물 틈새에 누워있는 입간판, 보도블록 위의 토사물 얼룩과 꽁초, 버려진 마스크 등 폐기된 것들이 폐기된 채로, 아파트와 행인 같은 평이한 풍경이 평이한 채로, 사진 속에서 새로운 문장을 쓰고 있다. 표현은 거칠고 어둡게 이어지면서, 잘리고 평이하고 쓰러지고 버려진 보잘것없는 것들이 현대사회, 서울, 팬데믹, 정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진 값어치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사진가들의 활동을 응원하고자 설립된 ‘온빛다큐멘터리’가 12년이 되었다. ‘온빛다큐멘터리’가 수여하는 온빛사진상은 국내 사진가들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사진상으로 성장하였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발전을 위한 사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다큐멘터리 사진 프로젝트의 공모와 전문가, 일반인의 심사를 거쳐 3개의 우수 작품을 뽑았다. ‘온빛다큐멘터리’ 사진상은 ‘온빛–후지필름상’과 ‘온빛–혜윰상’ 수상자 2명을 뽑아 작업 지원 목적으로 각각 500만 원과 카메라 장비 지원을 하며, ‘온빛신진사진가상’은 35살 이하 젊은 사진가 1명을 뽑아 200만 의 상금을 준다. 수상작은 서울, 광주, 대전, 대구 순회전시를 통해 소개한다. 이번에 선정된 ‘온빛다큐멘터리’ 수상작은 이두기의 ‘하나의 방, 두 개의 기억’, 최형락의 ‘배어든 전쟁’과 손승현의 ‘Homecoming : 타향, 고향, 귀향’이다. ‘하나의 방, 두 개의 기억’은 분단된 나라의 미국 주둔지에서 살아가는 두 여인의 질곡된 삶을 오랫동안 밀착하여 보여주었으며 ‘배어든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인 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송광사와 사진가 안홍범이 만났다’. 이 짧은 문장은,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가운데 하나인 송광사가 월간 《샘이깊은물》 사진부장을 지내던 때부터 이 땅의 서정과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사진가로 꼽혀온 안홍범에게 자신을 기록할 수 있도록 사문(寺門)을 열었다는 이야기다. 한 사진작가가 송광사의 일상과 사계절을 여러 해에 걸쳐 촬영하는 귀한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 결과로 <송광사 승경>을 얻었다. 마당을 쓰는 스님들의 싸리 빗자루를 따라서 허공에 비질하는 배롱나무 꽃가지들, 돌계단을 내려오는 노스님의 털신을 가뿐히 받쳐주는 아침볕, 반들반들 닦여 하늘을 거울처럼 파랗게 담아낸 마루에서 좌선 중이거나 흰 꽃이 만개한 복숭아 고목 옆에서 뒷짐을 진 채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는 스님, 문턱을 넘는 스님들의 기척에 놀라 용마루에서 푸드득 날아오르는 새, 꽃과 눈, 안개와 별과 바람이 모두 <송광사 승경>에 담겼다. 승경(勝景)은 경치의 한 표현이다. 절경, 무한경과 마찬가지로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경치를 이를 때 쓰인다. ‘송광사’ 뒤에 이어지니, 언뜻 승경(僧景)인가도 싶은데, 맞다. 스님들이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텟미엣(Htet Myat). 미얀마 말로 ‘밝은 사람’라는 뜻의 이 이름은, 미얀마 한 작은 마을의 노인이 한국인 신진호에게 지어 준 이름이다. 십 년여 동안 해마다 수차례 미얀마를 방문해 그곳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을 사진에 담아온 사진가 신진호. KIST에서 뇌과학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신학도, 외교부 소속 국제구호단체 ‘타이니씨드’(tiny-seed.org)의 활동가 등 그를 가리키는 여러 수식어들에 이국의 이름 하나가 더해진 것이다. 웃을 때면 얼굴이 온전히 환해지는 그의 모습에서거나 혹은 그의 명민함에서, 노인이 영어로는 ‘똑똑한 사람(Bright Person)’이라 번역되는 그 이름 뜻을 빌었으리라. “과학자로서,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저에게 빛은 참 특별합니다. 빛의 이중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런 빛을 담는 도구로서의 카메라와 결과물로서의 사진이 또한 저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을 공부하던 학생시절, 이른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태양과 그 빛으로 인해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 초기에는 컬러 필름으로 하늘, 구름, 빛을 찍다가 자가 현상과 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라 전체를 면 단위로 여행할 수 있다는 건 <팔도여담> 프로젝트의 큰 보람이자, 어쩌면 인생의 행운이란 생각마저 든다.” <팔도여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사진가 윤길중의 말이다. <팔도여담>은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풍경과 사물, 사람살이의 오늘을 사진모임 ‘닷클럽’의 사진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기록해 후대에 전하는 프로젝트다. 2016년부터 해마다 한 지역을 정해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연말이면 전시와 책으로 선보여왔다. 첫해 ‘경북’을 시작으로 이듬해 ‘강원ㆍ제주’, 2018년 ‘전라북도’, 2019년 ‘충청북도’, 2020년 ‘대전ㆍ세종ㆍ충남’, 2021년 ‘광주〮ㆍ전남’을 작가의 말 그대로 ‘면 단위로’ 다니며 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팔도여담>의 올해 행보는 ‘부울경’이었다. ‘부울경(釜蔚慶)’은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지역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공동 목적을 위해 서로 연합하는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이 특별지방자치단체의 목적은, 3개 시도 간 생활권과 경제권을 서로 연결해 인구 천만 이상의 거대도시 곧 ‘메가시티’로 만드는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보자기에 (등을 담아) 수백 번 묶고, 풀 때마다 그들에게 이 빛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빌었다. 서글프고 아름다운 사진 속 풍경이 또한 보는 사람들을 위무하기를 바랐다.” 성산 일출봉, 섯알오름, 다랑쉬오름, 함덕해수욕장, 정방폭포.... 사진가 고현주는 등과 바구니와 색색의 보자기들을 들고, 제주의 여러 장소를 하나씩 찾아갔다. 모두가 4.3 당시 학살이 자행되었던, 70여 년 전 그날의 ‘현장’이었다. 그리고는 현장을 목격했을 늙은 폭낭(팽나무 사투리)의 가지에 등이 담긴 보자기를 매달았다. 오름의 능선에, 해안가 돌들 사이에, 물 위에, 그 장소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수만큼 보자기로 싼 등불을 놓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마음이 같은 여러 지인이 그녀를 도왔다. 이번 전시 <기억의 목소리 III>은 그때의 아름다운 제의의 기록이다. 풍경 위에 제구(祭具)처럼 점점이 등불들이 놓이자, 70여 년 전 현장의 기억이 환하게 되살아난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중첩되면서, 소리 없이 묻혀 있던 ‘기억의 목소리’들이 소리를 낸다. 2014년 제주의 거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인간의 모습을 담은 <중산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240년 전 연암 박지원이 ‘열하’를 향하던 당시에 연암의 손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호곡장(好哭場, 좋은 울음터)이니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 한 요동벌판의 광활함을 응당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기이하고 우뚝 솟아난 이 산의 형세를 무어라 형용키 어렵다’ 한 봉황산을 실물 대신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진가 박하선이 《열하일기》의 행로를 사진으로 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압록강 건너 만주 지역 일대와 요동벌판, 그리고 당시 연경이라 불렀던 북경 일대와 사신단인 연암 일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열하(지금의 승덕)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톺아가면서 기록한 것이다. 지금껏 여러 사진가가 시도했으나 성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는데, 오랜 두메 취재의 경험을 지닌데다 실체를 찾기 어려운 우리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를 사진으로 추적함으로써 ‘집념의 사진가’로 불리는 박하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접근이 어려워 한번도 제대로 기록된 적 없던 티베트고원의 장례의식을 담은 사진으로 2001년 월드프레스포토상(World Press Photo)을 받은 <천장(天葬)>의 사진가가 아닌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루] 한국 사진가는 올해 2월 일어난 우크라이나전쟁 ‘현장’에 갈 수 없었다. 국내 언론사 기자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것도, 개전 뒤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쟁은 그 어떤 국제뉴스보다 신속하게 보도해야 함에도 가장 중요한 시점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각국의 사진가들이 취재하고 소식을 세계에 알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 언론과 사진가는 현지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의 눈과 귀는 외국의 보도에 의지해야 했다. 이는 한국의 사진가가 외국의 사진가나 외신 기자보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 국가에 대한 취재 보도를 ‘허가제’로 통제하는 나라로서, ‘여권법 제17조’로 인해 아예 현장으로의 접근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권법 제17조 - 외교부장관은 천재지변ㆍ전쟁ㆍ내란ㆍ폭동ㆍ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危難狀況)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ㆍ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ㆍ체류를 금지할 수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예전에 통영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일러 ‘바닷게가 구슬을 안고 굴리는 형상’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를 펴놓고 보거나 항공 촬영된 사진을 보아도 그와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게와 같이 다리가 여럿 달린 물건이 구슬까지 안고 굴리는 것처럼 복잡하게 생겼다는 비유로 짐작된다. 앞바다에 뿌려진 섬들의 수만도 570개가 넘는 데다, 날씨 또한 항용 쾌청하여 수려한 경치가 가린 데 없이 또렷한 고장이다. 생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날씨 좋고 해륙의 물산이 풍부하여 일찍이 선사시대부터 사람의 발자취가 찍혔다.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역사의 음영까지 드리워졌으니, 삼도 수군 통제영에서 비롯된 이름이 ‘통영(統營)’이다. 연화, 사량, 매물, 비진, 두미 등의 수많은 섬과 윤이상,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등 예술인들, 오광대와 남해안별신굿, 칠기, 장, 소반 같은 공예품들이 모두 통영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드니, 단순히 인구 13만의 지방도시라는 말로는 다 품을 수 없는 깊이와 너비가 통영 안에 있다. 이쯤이면, ‘온빛다큐멘터리’가 그 첫 번째 지역 자료 전산화(아카이브)로 통영을 선택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