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는 ‘느린 폭력‘이다

2023.09.07 11:17:22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9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인 금속이다. 수은(水銀)이라는 이름은 ‘물처럼 흐르는 은’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수은은 진사라고 하는 붉은빛 광물을 불태워서 얻어진다.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 수은이 알려져 있었고,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무덤 속에서도 발견되었다.

 

수은은 옛날부터 알려진 독성물질로서 특히 수은 증기는 매우 해롭다. 도교에서는 불로장수의 약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얼굴을 하얗게 만들기 위한 화장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도교(道敎)에 빠졌던 당나라의 황제들은 불로장수를 위해 단약(丹藥)을 먹었으나, 놀랍게도 황제 22명 중 6명이 아마도 수은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수은은 독성이 강하지만 체온계, 형광등, 수은전지, 농약, 의약품, 도금 등 산업 현장에서는 많이 사용되었던 금속이다. 수은이 환경에 유입되면 곡식, 과일, 물고기 등에 축적될 수 있다. 사람이 수은으로 오염된 음식물을 장기적으로 먹으면 신경계통에 장애를 일으키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1932년에 일본 남단 구마모도현의 어촌인 미나마타에 화학비료 공장이 건설되었다. 공장에서는 폐수를 미나마타만으로 흘려보냈다. 공장이 건설된 뒤 21년이 지난 1953년에 미나마타 주민들에게서 기이한 병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걸음이 이상해지고 손발이 마비되며, 시력장애를 일으키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이 병은 어민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졌다. 구마모도 대학의 의료진이 기병(奇病)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3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공장폐수에 포함된 수은화합물인 메틸수은이 원인임을 밝혀냈다.

 

메틸수은이 오랫동안 바다로 흘러들어 식물성 플랑크톤의 몸에 농축된다. 먹이사슬을 따라 메틸수은이 이동하여 물고기에 농축되고, 물고기를 오랫동안 먹은 어민들의 몸에 수은이 쌓인다. 메틸수은은 불용성이어서 체내에서 배설이 되지 않고, 주로 내장과 조직에 계속해서 농축된다. 20여 년 동안 수은에 오염된 물고기를 먹은 어민들에게서 수은중독 병이 나타난 것이다.

 

 

위 그림에서 물속 수은 농도는 0.0005ppm에 불과하여 전혀 해롭지 않다. 그러나 먹이사슬을 따라 수은이 농축되어 사람 몸에서 500ppm의 수은이 검출되었다. 수은 농도가 무려 100만 배나 농축되어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이러한 과학적인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회사 측 변호사의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질질 끌고, 보상을 둘러싼 난투극이 언론에 보도 되고, 환자들은 죽어가고 등등. 수은중독을 둘러싼 소동이 계속되었다.

 

수은중독병이 나타난 지 14년이 지난 1967년에 일본 정부는 마지못해 미나마타병을 공해병으로 인정하였다. 사망자 일 인당 400만 엔의 보상금을 주었다. 그렇지만 미나마타병 심사위원회에 수은중독을 호소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미나마타병이 알려진 지 43년이 지난 1996년에 최종 타협이 이루어졌다. 공식 환자 인정을 받지 못한 이른바 미인정 피해자 13,000여 명에게 일시금 260만 엔을 지급하는 대신 모든 소송과 보상을 마무리 짓는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보상금은 적었지만, 보상을 받을 사람들이 자꾸만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피해자 측의 양보로 최종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은 세계 첫 수은중독 공해병이라고 환경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다. 미나마타병이 나타난 지 70년이 지난 2023년 8월 24일에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하였다. 원전 폭발 사고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자국민들의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다면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러시아는 일본이 주변국과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오염수 방류를 비판했다. 유럽연합은 먼 나라의 일이니만큼 국제원자력기구의 결정을 지지하는 태도다.

 

미국 정부는 8월 25일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지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캐시 호컬 뉴욕주 주지사는 지난 8월 18일 허드슨강에 방사성 액체폐기물 방류를 금지하는 법안(Save the Hudson)에 서명했다. 폐쇄 작업 중인 인디언포인트 원전에서 나오는 냉각수를 허드슨강에 방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미국 환경단체는 원전 냉각수를 허드슨강에 방류하지 말고 최소 12년 이상 지상에 보관하도록 요구하였다. 냉각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의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만큼 더 나은 대안을 찾을 때까지 방류를 유보하자는 것이다. 나라 안과 밖의 정책이 어긋나 혼란스럽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정부 입장 그리고 야당과 환경단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8월 24일 대국민 담화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에 우리 바다가 오염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선동으로 수산업이 위협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야당 대표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면서 단식을 시작하였다. 환경운동연합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어민의 생존권을 위해, 무엇보다도 미래 세대를 위해 생명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일반 국민은 매우 혼란스럽다. 남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는가? 남해에서 양식한 생선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한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거쳐 우리나라 남해안에 도달하려면 앞으로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남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조사해 보면 당분간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국회의원은 노량진수산시장 수조의 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국내산 해산물을 사 먹는 연출을 할 필요가 없다. 남해의 물을 떠다가 방사능을 조사해 보면 거의 0에 가깝거나 ‘불검출’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문제인가? 필자는 농도와 농축을 구별하여 이해하자고 말하고 싶다. 현재의 삼중수소의 농도는 위험하지 않지만, 삼중수소와 여러 방사능물질이 바다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을 따라 농축되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농축 현상은 70년 전에 발생한 미나마타병 사건으로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최소한 30년 동안 계속해서 방류될 것이다. 방류된 방사능 오염물질은, ‘물질불멸’의 법칙에 따라, 없어지지 않고서 바닷물에 섞여서 남아있을 것이다. 생물농축은 30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 방사능물질이 플랑크톤과 물고기, 조개류 등에 농축되고 이런 해산물을 사람이 먹는다면 안심할 수가 있을까?

 

담배 한 개비를 피운다고 폐암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담배를 30년 피우면 폐암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진폐증이라는 병이 있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석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폐 조직에 자국이 생기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병이다. 진폐증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병이 아니다. 몇 년 동안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다 보면 생기는 병이다. 석탄가루가 오랫동안 폐에 농축되어 진폐증이 생긴다.

 

남극에서 사는 펭귄의 몸에서 DDT(지금은 사용 금지된 농약)가 검출되고,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의 몸에서 DDT가 검출되는 현상도 모두 오염물질이 농축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롭 닉슨 프린스턴대 교수는 “즉각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서서히 축적되는 환경재앙”을 ‘느린 폭력’이라고 이름 지었다.

 

검사 출신 대통령에게 느린 폭력을 막아달라고 청원하고 싶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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