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죽은 게 아니라네

2024.02.14 11:20:23

악기로도 변신하지 못하고 가버리다니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3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서울 인사동 남쪽 초입에 있는 어느 건물 뒤 카페의 정원에 가니 거기 명물이었던 오래된 오동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뭇가지와 잎들이 다 말라버린 것을 보니 꽤 오래전에 쓰러진 모양이다. 지난해 5월 저녁에 그 나무 밑에 앉아서 맥주를 먹곤 했는데 몇 달 동안 가지 못한 사이에 쓰러진 것이다. 여주인 말로는 8월 큰비가 왔을 때 나무줄기와 가지, 잎에 물기가 잔뜩 많아지자,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진 듯하다고 한다. 쓰러지면서도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그 옆 다른 나무에도 피해를 주지 않아, 평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던 그대로 가면서도 멋지게 갔다고 귀띔해 준다.

 

 

인사동의 오동나무는 백 년이 넘었던 것 같다. 오동나무로서는 원체 컸기에 이 일대의 명물이었고,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겨울에는 그 가지들이 하늘로 뻗어간 기세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인사동을 누빈 시인 천상병 씨가 특별히 이 나무를 사랑해 당시 인사동 건달이라 불리던 전우익 씨(《혼자만 잘 살면 무엇하누》의 저자)와 자주 나무 밑에서 그 좋아하던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는 것이고, 1970년대 말인가 이 나무를 베내려 하자 전우익 씨가 그것을 막는다고 바지를 내리고(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인 우리의 백남준 씨도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그의 섹스 스캔달을 조롱하기 위해 바지를 내린 일을 기억할 것이다) 드러누웠고, 다른 예술가들도 함께 누웠다는 전설이 있는 데서 보듯 많은 문화예술인이 이 나무를 사랑하고 지켜왔다.

 

7년 전 이 공간을 발견한 카페 조선살롱의 대표 안주영 씨는 사업의 동업자가 이 오동나무를 베려고 했을 때 몸으로 한사코 막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살려놓은 이 나무는 그동안, 이 공간을 찾은 많은 문인 예술가에게 큰 위안이었다.

 

 

그렇지만 오동나무는 자라면 점점 속이 비어 오래 버틸 수가 없는 한계가 있다. 오동나무는 어릴 때는 1년에 1∼2.5 m씩 자라서 15m 높이까지 크는데 수명은 보통 70년 정도라고 하지만, 이 기둥의 굵기로 봐서는 100년 넘게 살아남아 인사동 일대의 역사를 말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얼마 전 바로 옆 터에서 발굴조사를 하다가 조선시대 초기의 활자들이 대거 나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원래 오동나무는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 현악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나무로 귀하게 여긴다. 이 오동은 주위에 다른 나무들이 없이 오로지 혼자 살아남아 문화예술인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지난여름에도 잎이 무성해 더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버린 것이란다.

 

 

노거수의 죽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90년 7월 17일 서울에 돌풍이 불었을 때 청와대 남서쪽 통의동에 서 있던 수백 년 된 백송이 쓰러진 일이다. 이 나무는 서울에서도 이름있는 노거수였기에 크게 뉴스가 되었고 필자는 당시 방송국 기자로서 가장 먼저 달려가 이 나무의 최후를 뉴스에 내기도 했다.

 

(예전 분류로) 천연기념물 4호였던 이 통의동 백송은, 흔히들 수령이 6백 년이 됐다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숙종 때에 누군가가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었다. 이 백송이 서 있던 자리는 원래 영조대왕이 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이다. 그러다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영조의 둘째 사위가 되면서 이 저택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추사도 이 집에서 있으면서 열 살쯤 전후에 할아버지와 양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해 종손이 된다.

 

이 통의동 백송은, 그러므로, 추사와 인연을 담고 있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빛이 나는 우정과 의리를 묘사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소나무처럼, 이 백송도 집주인이었던 추사의 강직함을 닮았던 모양이다. 1990년 쓰러지고 나서 나이테를 조사해 본 결과 1690년 때 심은 것으로 확인돼 넘어질 당시 나이가 300살이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일제에 우리나라가 강점당한 36년 동안에는 나이테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가뭄이 너무 심해도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덕이 모자란 탓, 심한 자연재해가 나도 최고지도자의 부덕을 탓하던 전통이 살아있는 한국이기에 이 통의동 백송이 쓰러진 것을 뉴스에서 본 당시 청와대의 주인(노태우 대통령)은 이 백송을 살려보라고 지시를 내렸단다. 그래서 전국의 나무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영양제 주사 등 나무를 살리기 위한 방안도 냈지만, 백송은 야속하게도(?) 삶을 마감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이 나무가 빨리 죽기를 바라면서 나무뿌리 주위에 농약을 묻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동네 주민인 홍귀옥 할머니가 손으로 그 농약을 파헤치려다가 피부가 타는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그 할머니도 지난해 비슷할 때 세상을 떠났다). 어쨌든 당시 그리 강한 바람도 아닌데 넘어간 것은, 나이가 많아 천수를 다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서울 시내 군데군데에 있는 노거수들이 평소에 사랑을 받다가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부러지고 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긴 하지만 이제 이런 노거수의 임종을 보는 것도 마치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듯 처연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으로 우리들은 아무리 해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옛말을 다시 실감한다.

 

 

오동나무의 일종인 벽오동은 예로부터 봉황이 날아들어 좋은 지도자를 모시고 나라의 평안을 상징하는 신목(神木)으로 대우를 받아왔다. 그동안 종로 일대에는 통의동의 백송과 헌법재판소 구내의 백송, 그리고 이곳의 오동나무 등 영목(靈木)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는데 통의동 백송에 이어 이 인사동 오동나무도 죽음으로써, 어쩌면 봉황이 날아들 터전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그것은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나라는 여전히 정쟁으로 지새고 나라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현실과 상통하는 것은 아닌가? 특히 오동나무의 경우 그것을 가야금이나 거문고로 만들면 그 소리가 천 년을 간다는데 오랜 세월을 이긴 이 나무가 그렇게 악기로도 변신하지 못하고 가버리다니 더 아쉬운 생각이 든다. ​​

 

다만 통의동의 백송은 그 터에 아들 나무들이 자라고 다시 거기서 다시 아들, 곧 손자목이 나와 잘 자라면서 할아버지의 위용을 이어주고 있는데 인사동의 오동나무도 아들 손자들이 생기고 자라서 이 터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오래된 나무들은 그 나라의 전통이자 맥이고, 이 땅의 기운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이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면 그 아들 손자들이 그 뒤를 이어주듯이 나무도 그런 대물림이 이어가면 모두의 명(命)이 길어지는 것일 터다. 그것으로 인사동 이 나무에 얽힌 역사와 인정과 사람들의 숨소리가 후손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인사동의 오동나무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인사동을 사랑했던 시인 천상병이 '나무'라는 시를 이렇게 남긴 것도 바로 이 오동나무를 보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죽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죽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죽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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