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4.02.22 11:10:45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0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번 글로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가 100회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독자의 편에 서서 쉽게 풀어 환경이야기를 써주신 이 교수님께 깊은 고마움을 드립니다. 2024년 2월 21일 현재 "지구온난화라는데 왜 겨울이 더 추워질까?" 편을  12,233 명의 독자가 읽었고, "생물대멸종의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편을 10,813명, "내가 발생시키는 탄소발자국 계산해볼까?" 편을 10,158명이 읽는 등 한 편에 1만여 명에 육박하는 독자들이 글을 읽었습니다. 유명 언론이 아닌 <우리문화신문>으로서는 작지 않은 반향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큰 호응을 기대합니다.(편집자 말)

 

2006년에 처음 발견된 가습기살균제(아래 살균제) 사고로 2024년 1월 31일까지 18년 동안에 피해 신고자 7,901명 가운데 1,847명이 죽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어린 아기였지만 어린 아기를 기르는 산모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이 사건은 사고라기보다는 참사라고 표현해야 마땅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사망자가 세월호 참사(304명 죽음)나 이태원 참사(159명 죽음) 때보다 훨씬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국민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2023년 12월에 출판된 작은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박진영 저, 민음사 펴냄)을 읽고서 필자는 살균제 사건의 실상을 알리고자 한다.

 

 

1994년 11월, 유공은 세계 첫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은 가습기 물통의 물에서 번식한 세균이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2년 동안의 연구 끝에 신제품을 만들었다. 가습기메이트는 출시된 뒤 1년 동안에 약 10만 개가 팔렸다. 1996년부터는 유공 말고도 옥시, 애경, LG생활건강 등이 유사한 신제품을 개발하여 팔았다. 2004년부터는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이 자사 상표(PB)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살균제는 출시된 뒤 2021년까지 약 1,000만 개가 팔렸다.

 

 

2006년 봄,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 병원에 급성 간질성 폐렴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 환자 15명이 무더기로 입원했다. 의료진은 처음에는 바이러스를 의심하였으나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자 질병관리본부(아래 질본)에 역학조사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폐 질환은 세계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원인 조사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환자가 나타난 지 5년이 지난 2011년에 병의 원인이 화학물질인 살균제로 밝혀졌다. 질본은 2011년 8월에 살균제의 사용과 출시를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행정 조치를 내렸다.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지 않고 자제를 권고한 것은 얼핏 보아 무책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담배의 유해성 논란, 석면의 유해성 논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물질의 건강 위해성은 과학적으로 100%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추후의 법정 공방에서 문제가 된다. 법원에서는 살균제에 의한 피해 증거가 과학적, 의학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지 않다면 그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죄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 기업에서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질본에서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동물흡입 독성 실험을 의뢰하였다. 3달에 걸친 실험 결과를 근거로 정부에서는 2011년 11월에 살균제 6종에 대한 수거 명령을 내렸다.

 

마트에서 살균제가 사라졌지만, 피해자에 대한 어떤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질본은 광범위한 피해 조사 업무는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환경부는 질본에서 처음에 맡아서 한 일이라면서 나서기를 꺼렸다. 자칫 잘못하면 이 사건은 묻혀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때 나선 것은 시민단체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대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소장: 최예용)는 문화예술계, 종교계, 보건의료계, 법조계, 환경단체, 학계의 인사들을 설득하여 “가습기살균제 인명 피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각계 사회 인사 모임”을 만들고 48명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국환경보건학회에서는 회원들의 성금을 모아서 피해 조사를 한 뒤, 2012년 5월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살균제 수거 명령을 내린 지 1년이 지난 2013년에, 질본은 민관 합동으로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사위원회 활동은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조사 범위와 방법에 대해서 위원들과 질본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비용이 드는 광범위한 피해 조사에 난감해하였다. 비용을 지출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걸림돌이었다.

 

민간 조사위원들은 강경책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가 추가 조사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전원 사퇴하겠다는 서한을 질본으로 보냈다. 다음 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세 단체가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태아와 아내를 함께 잃고 직장도 그만둔 피해자 안00 씨(부산 거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법적 근거가 없는데 조사위원회는 왜 구성했냐? 피해 신고는 왜 받았냐? 대한민국 정부에 몇천만 원이 없어서 수백 명이 죽고 다친 사건을 조사도 안 한단 말인가? 이게 나라냐?”고 기자회견장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위원 사퇴 사건이 있고서 한 달이 지나 질본에서는 살균제 폐 손상 의심 사례 조사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8개월 동안 피해 신고자에 대한 조사와 판정을 마쳤다. 첫 조사에서는 361명에 대해 피해 판정 결과를 4단계로 나누고 1, 2 단계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배상하기로 했다.

 

2013년 8월에 정부는 피해자에게 부담이 가장 큰 의료비를 선지원하고 이후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에서는 피해 지원을 위하여 111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기업 측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정부가 살균제를 폐질환의 원인으로 발표하자 살균제 제조회사에서는 거액의 연구비를 6개 연구소에 뿌려서 기업 측에 유리한 연구 결과를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살균제 제조회사인 옥시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김앤장은 “폐 손상의 원인은 봄철 황사나 꽃가루에 의한 것”이라는 황당한 의견서를 냈다. 분노한 시민사회 단체와 누리꾼들은 옥시 제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2016년 1월에 서울중앙지검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담수사팀을 구성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유공의 가습기메이트 출시 두 달 전, 유공 생물공학연구팀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는 “독성 시험을 수행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적혀있었다. 제품 출시를 재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유공 경영진은 추가 독성 조사 없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옥시는 서울대 조명행 교수와 호서대 유일재 교수에게 살균제의 독성 평가 연구를 의뢰하였다. 옥시는 서울대학 연구진에 2억 5천만 원을 주고 연구를 의뢰하였다. 용역 연구비 외에 회사 측에서는 조 교수에게 자문료 1,200만 원을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조 교수는 데이터를 고의로 조작하거나 빠뜨려서 연구 결과를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왜곡했다. 검찰은 두 교수를 구속하였고, 이들은 이후 ‘청부 과학자’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검찰 수사를 계기로 기업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4월 18일 롯데마트가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고, 다른 기업들의 사과 발표가 이어졌다. 2019년 7월에 검찰은 살균제를 만들고 판 기업들의 임직원 3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하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2021년 1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라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2024년 1월 11일, 서울고법 형사5부는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피고 기업인에게 최대 금고 4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들의 상고로 재판은 대법원으로 갔다. 대법원의 판결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유족들에 대한 배상은 어떻게 되었나? 2021년 정부의 중재로 기업과 피해자가 합의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022년 3월에, 조정위원회에서는 9개 기업이 피해 유족에게 2~5억 원(총 9,200억 원)을 배상하라는 조정안을 내었다. 그러나 9개 기업 가운데 옥시와 애경은 조정금액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여 조정 절차는 중단되었다. 조정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2022년 4월에 끝났다. 이후 배상 문제는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역사학자 스콧 놀스는 장기간 느리게 발생하는 재난을 ‘느린 재난’이라고 표현했다. 느린 재난은 분명한 폭력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느린 재난을 막을 제도적인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살균제 판매는 1994년에 시작되었는데 30년이 지난 2024년 현재까지도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진행 중이다. 느린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가습제살균제 참사를 조사하면서 네 명의 손자 손녀를 두고 있는 필자는 스스로 물었다. “만일에 우리 손자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봤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란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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