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백묵(白墨), 흑판(黑板)... 이런 말을 무심코들 쓰시지요? 오늘은 이걸 한번 따져봅시다.
분필은 하양뿐 아니라 빨강 파랑 등 여러 가지 색이 있습니다. 이를 ‘빨간 백묵’, ‘파란 백묵’이라고 쓰자니 정말 어색합니다. ‘백묵’이란 말에 이미 빛깔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청묵', '홍묵' 하는 것도 우습고...
또, 요즘 교실 앞뒤의 칠판은 거의 다 초록색이지요? 이 또한 '흑판'이라고 하자니 안 맞고, 그렇다고 ‘녹판(綠板)’이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 우리가 칠판, 분필하던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흑판, 백묵으로 바뀌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사실 이런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들입니다. 흑판, 백묵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분필(粉筆)’과 ‘칠판(漆板)’이라고 썼습니다. 이는 각각 ‘가루로 만든 붓’, ‘칠을 한 판자’라는 뜻이니, 애당초 어떤 색이든 상관없습니다.(‘漆’은 원래 옻칠을 뜻하는 한자이지만, 굳이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로 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일본 사람들은 사물을 겉으로, 감각으로 받아들여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상이 조금 변화하자 표현 전체가 부정확해집니다. 이에 견주어 우리는 그 본질을 가지고 이름을 붙인 까닭에 겉모습이 웬만큼 변해도 그 내용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심지어 요즘 새로 나온 화이트보드 같은 것 또한 칠판이라고 쓴다 해도 큰 문제가 없지요.
이런 사소한 일로 거창하게 민족성까지 들먹이는 것은 물론 무리겠지만,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만 가지고 장난치는 일본 우익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대체로 본질보다는 외면(명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효곤/서울 둔촌고/ccamy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