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의 명예, 생전의 일배주(一杯酒)만도 못해

  • 등록 2025.06.17 1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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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3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가 <탐경가(探景歌)>에 나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야기를 하였다. 은(殷)나라의 왕자들로 백이는 형, 숙제는 동생인데, 부왕은 형이 아닌 동생에게 왕위를 넘기고자 하니, 형이 있는데, 동생이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형 또한 “동생에게 왕위를 결정한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니 그 결정은 어길 수 없다”라고 서로 양보하였다고 한다. 훗날, 나라가 망하자, 그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며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는 형제들이다. 충절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도연명의 귀거래사, 손흥공의 산수부(山水賦), 육처사, 소자첨, 강태공, 동방삭 등도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역대가(歷代歌)>라는 단가를 소개한다. 이 노래는 국가의 흥망(興亡), 성쇠(盛衰)와 관련하여 역대 임금과 성현들의 사적을 노래한 시가(詩歌)이다. 대표적으로 오세문(吳世文)이 엮은 <역대가>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의 진복창의 <역대가>, 국립 중앙도서관 소장의 <역대가>, 조선 후기 신재효(申在孝)가 엮은 <역대가>, 기타 작자나 연대 미상의 것도 있다.

 

특별히 단가로 불려 온 역대가는 《창악대강》의 저자, 박헌봉이 기존의 문헌을 참고하여 앞부분에서는 중국 태고 때부터 청나라까지를 노래한다. 뒷부분에서 우리나라 역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의 시작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천지광탕(天地廣蕩-하늘과 땅이 크게 변해서)하여 고금에 역려(逆旅-사람들이 살며 쉬는 곳)되고, 광음(光陰)은 거래(去來)하여 백대(百代)의 과객(過客)이라. 적적한 저 청산은 말이 없이 높아 있고, 왕왕(汪汪)한 벽강수(碧江水)는 무심히 흘러가니, 천고흥망사(千古興亡史)를 어디가 물어보리. 하수신후천재명은 이청련(李靑蓮)의 탄식이요. ‘불여안전일배주는 장사군(張使君)의 글귀로다.”

 

앞에 나온 ‘하수신후천재명(何須身後千載名)에서 이청련(李靑蓮)의 탄식이요”라는 대목이 재미있다. 이를 풀어 보면, “지금 잘 먹고, 멋지게 사는 것이 제일이지, 죽은 뒤에 이름이 여기저기 오른다고 해서 무슨 의미,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를 이청련의 탄식이라고 했는데, 이청련은 누구인가? 그가 바로 우리가 시성(詩聖)이라고 일컬어 온 이태백이다. 그의 아호가 청련(靑蓮)거사이기에 청련은 곧 이백, 이태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태백은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은 백(白)이고, 자는 태백(太白)이며, 아호가 청연 거사이다. 우리에겐 이태백으로 더더욱 알려진 시성(詩聖)이다. 이태백은 천성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흥이 나면 곧, 시(詩)를 쓰고, 시(詩)로 말을 했다는 사람이다. 또한 신선 같았던 그의 풍모와 재능을 아낀 이들은 그를 적선(謫仙), 또는 시선(詩仙)으로도 불렀다.

 

 

그 유명한 판소리 <춘향가> 시작 부분에도 이적선(李謫仙)이란 이름이 나오고 있어 소개해 보기로 한다.

 

“-기산 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 채석강 명월야(明月夜)의 이적선(謫

仙)도 놀고,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도 놀아있고-”라는 대목에서 채석강

달 밝은 밤, 술에 취해 놀던 이적선이 곧 이 태백이다.

 

적선이란 뜻은 하늘나라에서 벌을 받고 인간세상으로 쫓겨 내려온 선인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그는 뱃놀이하며 강 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 들어갔다가 죽었다고 전해 오는데, 그 사실 여부는 분명치 않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장, “불여안전일배주(不如眼前一杯酒)는 장사군의 글귀로다.”인데, 이는 무슨 뜻인가? 불여생전일배주(不如生前一杯酒)와 같은 의미, 곧 이 세상을 살아가며 돈과 명예, 높은 벼슬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살아생전의 한잔 술만 같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인생의 짧은 시간이 덧없음을 설파하고 있는 문장인데, 이 글을 쓴 사람이 바로 장사군(張使君)임을 밝혀주고 있다.

 

장사군은 오(吳)나라의 사람으로 이름은 한(翰)이다.

그에겐 이러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임금은 장사군이란 사람이 매우 정직하고 재주가 있음을 알고, 군사와 국방 분야를 맡아보던 대사마, 곧 병조판서 직의 높은 관직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높은 지위일수록 법규를 제대로 지켜야 하고, 어른 노릇, 상하관계, 등등 인간관계를 분명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 내지 못한 그는, “인생이란 자기 마음에 맞는 생활을 하며 살아야지, 뜻하지 않은 명예나 영화에 구구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며 벼슬을 내놓고 떠나갔다는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되어 그에게 물었다.

“ 어찌 일시의 기분만 차리고, 신후(身後), 곧 사후(死後)의 그대 이름은 생각하지 않는가?”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사후(死後)의 명예는 살아생전 일배주(一杯酒)만도 못 하다”

(다음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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