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책, 왜 종이가 아닌 대나무에 글을 썼을까?

  • 등록 2016.05.18 08: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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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29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유세차(維歲次, 제문의 첫머리에 관행적으로 넣는 말) 을해년 6월 22일 갑자에 국왕은 머리를 조아리며 책문(冊文)을 올립니다. 시호를 ‘경혜(敬惠)’라 올리오니 삼가 바라건대, 작은 정성을 살피시어 아래로 내려오시어 이 아름다운 일을 역사에 기록하여 전해지도록 해주시고 왕실을 음덕(陰德)으로써 도와 경사가 이어지게 하소서. 재배하며 시책을 올립니다.“

위는 《영조실록》 영조 31년(1755년) 6월 22일 기록으로 영조임금이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仁嬪金氏)를 자신의 생모인 숙빈 최 씨와 격을 맞추어 경혜(敬惠)라는 두 글자 시호를 내리고 이를 죽책에 써서 기록했다는 내용입니다.

 

   
▲ <죽책(竹冊)>. 1759년, 대나무, 25.3×107.3cm, 국립고궁박물관 /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때 내린 글을 대나무에 새겻다.

죽책(竹冊)은 조선시대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책봉하고 존호(尊號)를 올릴 때 등에 그에 관한 글을 대쪽[竹片]에 새겨 엮은 문서를 말합니다. 죽책에 쓴 글을 죽책문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글을 종이에 썼지만 격식을 갖춰야 할 때는 이렇게 종이 대신으로 죽책에 썼지요. 그 글에는 대개 ‘포미권계(褒美勸戒) 곧 착한 일은 권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는 경계를 담게 됩니다. 왕세손을 책봉할 때에도 왕세자의 경우와 같이 죽책이 만들어지지요.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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