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소앙 선생이 활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일

  • 등록 2017.04.11 00:10:46
크게보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53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 조국의 상황을 생각하니 참으로 참담하고 우울하다. 독립국이 보호국이 되었다가 이제는 합병되는 신세로 변해버렸다. 이런 때 일본 유학생이라는 처지에 있으니 옛날이나 앞으로나 나처럼 조국의 비운을 당하는 자가 있을까?” 이는 일본유학시절 조소앙 선생이 쓴 동유략초(東遊略抄)에 나오는 글로 동유락초1904109일부터 19125월까지 조소앙 선생이 일본유학 시절의 일기입니다. 그는 일기에서 말합니다. “내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 것이 떨 끝만큼이라도 있었는가? 고개 숙이고 학교에 가는 것이 일과였다.”고 말입니다.

 

조소앙(1887 ~ 1958) 선생은 당시 22살 이상만 입학 할 수 있는 성균관에 16살의 나이로 입학이 허용될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으며 신채호, 유인식, 변영만 등 독립운동가와 함께 수학하였습니다. 대한제국 말기 정부에서 황실특파유학생을 50명 모집하였는데 무려 700명이 지원하여 14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조소앙 선생은 일본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국치일을 맞게 되자 오장(五臟)이 끊어지는 듯 통탄함을 느껴 이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지요.



 

조소앙 선생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광복 후의 새로운 국가건설 방략을 제시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정립했으며 191931만세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헌장기초위원, 심사위원, 임시의정원법기초위원, 초대 국무원비서장,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19405월에는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지청천의 조선혁명당과 함께 3당 통합을 이루어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기도 했지요. 환국 후 19505월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625 한국 전쟁 때 북한으로 피랍되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1919411일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독립운동의 깃발을 높이 든 날입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