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1887 ~ 1958) 선생은 당시 22살 이상만 입학 할 수 있는 성균관에 16살의 나이로 입학이 허용될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으며 신채호, 유인식, 변영만 등 독립운동가와 함께 수학하였습니다. 대한제국 말기 정부에서 황실특파유학생을 50명 모집하였는데 무려 700명이 지원하여 1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조소앙 선생은 일본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국치일을 맞게 되자 “오장(五臟)이 끊어지는 듯 통탄함”을 느껴 이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지요.
조소앙 선생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광복 후의 새로운 국가건설 방략을 제시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정립했으며 1919년 3ㆍ1만세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헌장기초위원, 심사위원, 임시의정원법기초위원, 초대 국무원비서장,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1940년 5월에는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지청천의 조선혁명당과 함께 3당 통합을 이루어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기도 했지요. 환국 후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나 6ㆍ25 한국 전쟁 때 북한으로 피랍되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1919년 4월 11일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독립운동의 깃발을 높이 든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