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客)의 마음 울리는 산촌(山村)의 쇠북소리

  • 등록 2025.06.03 11: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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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34] 객(客)의 마음 울리는 산촌(山村)의 쇠북소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충청도 양반 가문의 정춘풍(1834~1901?)에 의해 불리기 시작했다는 <소상팔경> 가운데, 제1경 소상야우(瀟湘夜雨)와 제2경 동정추월(洞庭秋月), 제3경 원포귀범(遠浦歸帆), 제4경 평사낙안(平沙落雁), 제5경 어촌석조(漁村夕照)에 관한 이야기는 앞에서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소상의 8경 가운데 제5경 어촌석조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격안(隔岸) 전촌(前村) 양삼가(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일고, 파노귀래(罷釣歸來)배를 매고 유교변(柳橋邊)에 술을 산 후, 애내성(欸乃聲)부르면서 흥을 겨워 비겼으니, 소림(疏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설워 울고, 벽파(碧波), 푸른 파도에 뛰는 고기, 비낀 별 맞아 노니, 어촌석조(漁村夕照), 이 아니냐.“

 

물가 언덕 마을 앞, 몇 집에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잡이를 중단하고 돌아와 술 마시고 애내성(뱃사공이 노를 저으며, 흥에 겨워 부르는 소리에 소림의 새들은 지는 해를 서러워하며 울고, 물고기들은 별을 맞아 놀고 있으니, 어촌의 지는 해의 아름다움이 이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저녁 무렵, 해지는 모습은 어느 지역에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 자체겠지만, 특히 강이나 바다 위로 떨어지는 석양의 모습은 물 위의 반사 작용으로 인해 더더욱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의 경관은 <강천모설(江天暮雪)>로, 곧 하늘로부터 강 위에 내리는 저녁 눈 내리는 모습이다. 본문의 내용이 곧, 아름다운 시(詩) 한편이다.

 

“천지 자욱하여 분분비비(紛紛霏霏) 나리는 양, 분접(粉蝶)이 다투는 듯, 유서(柳絮)전광(癲狂)한 듯, 위곡(委曲)한 늙은 가지 옥룡(玉龍)이 서리었고 기괴한 성낸 바위 염호 엎쳤는 듯, 강산이 변화하여 은세계를 이뤘으니, 이것이야말로 강천모설이 아니냐.”

 

위에서 분분비비는 어지러울 정도로 눈이 펄펄 내리는 모습이 마치, 나비가 다투는 모습 같기도 하고, 또는 버들강아지가 미친 듯 떨어지는 모습 같기도 한 것이다. 또한 굽은 늙은 소나무 가지에 흰 눈이 쌓여 마치, 용의 자태가 서리어 있기도 하고, 괴이하게 생긴 큰 바위 위에는 눈이 쌓여 마치, 흰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 같기도 한데, 이러한 모든 모습들이 눈에 덮여서 은세계(銀世界)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야말로 하늘로부터 강 위로 떨어져 내리는 저녁 눈의 모습, 곧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고 감탄하는 내용이다.

 

소상8경의 제7경관은 산시청람(山市晴嵐)이다. 비 개인 뒤, 남기(嵐氣)에 둘러싸인 산시(山市)의 정경을 표현한 말인데, 바로 아지랑이가 걷히며 서서히 날이 개는 봄날, 산촌(山村)의 한가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단가에 나오는 본문 부분이다.

 

 

“산천에 싸인 안개 무르녹아 빚어내니 청담한 새 얼굴은 가는 구름 속에 있고, 진천(지역 이름)에 고운 계집 깁비단 씻어 건 듯, 발 밖에 기음져서 취적적(翠滴滴-방울져 떨어지는 모습) 전비비(轉霏霏-눈이 내리는 모습)하니 산시청람을 구경하고“

 

마지막 제8경은 한사만종(寒寺晩鍾)이다. 이를 한사모종(寒寺暮鍾), 또는 연사만종(煙寺晩鍾)으로도 쓰는데, 모두 춥고 외로운 절간의 저녁 종소리로 해석된다. 또한 어떤 문서에는 이 부분을 황릉애연(黃陵哀然), 곧 <황릉의 슬픔으로 여김>으로도 바꿔 부르는 등, 전해 오는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참고로 황릉이란 소상강가에 있는 아황과 여영의 사당인데, 이들은 순(舜)임금의 부인으로 임금이 병사하였을 때, 이들도 소상강에 빠져 순절하였다고 해서 열녀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만리청산(萬里靑山)이요, 일편고성(一片孤城)이라.

달 떨어지자, 가마귀 까욱까욱, 서리 가득한 하늘에 난데없는 쇠북 소리,

객선에 뎅뎅 떨어지니 한사만종이 아니냐,”

 

위의 한사만종이란 산사(山寺)에서 늦은 시간에 치는 쇠북소리가 멀리 객선까지 은은하게 들려와 객의 마음을 울린다는 산촌의 운치를 나타내는 아련한 표현이다.

 

이제까지 소개한 노래, <소상팔경>을 단가로 만들어 부른 정춘풍은 그 자신이 양반 출신의 명창답게 당시 지식인들이나 양반 계층이 좋아할 수 있는 사설의 전개와 아니리, 특히 가락을 옮겨 가는 다양한 창법이나 시김새, 발림 등등을 새롭게 짜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 노래를 무대 위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게 되어 아쉬울 뿐이다. 소상의 8경이 지닌 특징을 자신만의 노래로 후세에 남겨 준, 정춘풍이야말로 실로 고마운 명창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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